'승부수 역풍' 국민투표에 발목 잡힌 유럽식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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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12-05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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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브렉시트 이끈 캐머런 이어 이탈리아 렌치도 사퇴

  • 정치 수단 전락·세대 분열 극대화는 단점 지적

[사진=연합/AP]


아주경제 문은주 기자 = 이탈리아 개헌 찬반 국민투표가 부결된 가운데, 유럽 지도자들이 국민투표를 남발하면서 유럽식 민주주의가 붕괴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영국·이탈리아, 국민투표 역풍에 총리 사퇴

이탈리아 언론 RAI 등 외신들은 5일 마테오 렌치 이탈리아 총리가 국민투표 결과를 수용하는 의미에서 사퇴 의사를 밝혔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정치 개혁을 골자로 한 개헌 찬반 국민투표의 출구조사에서 부결 가능성이 커지자 곧바로 패배를 인정한 것이다.

렌치 총리의 결단은 데이비드 캐머런 전 영국 총리와 판박이다. 캐머런 전 총리도 지난 6월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찬반 의견을 묻는 국민투표를 정치적 승부수로 던지면서 "실패하면 총리직을 내려놓겠다"고 공언했다가 임기를 채우지 못했다. 

유럽 내 국민투표에서 예상을 뒤집는 결과가 잇따라 나오자 '유럽식 민주주의'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투표 방식은 단시간 내 집중도를 높여 국민의 참여를 이끌어낸다는 점이 장점으로 꼽히지만 단점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일단 이윤 추구 목적에 따라 계층 분열을 촉발하는 것이 가장 큰 부작용으로 꼽힌다. 청년층과 노인층, 도시와 농촌 등 학력·연령별로 갈등의 골을 깊게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전문성을 요구하는 사안에 대해서는 피상적으로 접근하는 데 그칠 우려가 있다는 점도 단점이다. 

정치적인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비난도 나온다. 정치계에서 자체적인 결론을 도출하기 어려울 때 국민투표를 활용해 교묘하게 책임을 전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투표 방식 자체도 '찬성', '반대' 중 하나를 고르는 방식이어서 외려 자유로운 토론을 제한한다는 지적이다.

◆ 프랑스에서만 5건 예고...포퓰리즘 가속화 우려도

유럽에서는 치러지는 국민투표 횟수가 잦아지면서 포퓰리즘 가속화가 우려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제 연구 및 리서치 파리센터의 티에리 쇼팽 연구원은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국민투표는 국민의 목소리를 반영한다는 데 의미가 있지만 논쟁이 불거지면 선동되는 속도도 빨라지기 때문에 포퓰리즘에 의지할 가능성이 커진다"고 지적했다.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유럽 내에서 치러진 국민투표만 10여 건에 이른다. 지난 4월에는 네덜란드가 EU와 우크라이나의 경제 협력에 대한 찬반 국민투표를 치렀다. 6월에는 스위스에서 기본소득제 도입 여부를 묻는 찬반 국민투표를 실시했다가 부결됐다. 영국은 국민투표를 통해 EU 탈퇴를 확정했다. 

지난해 6월에는 아일랜드에서 동성결혼 찬반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해 과반 이상으로 찬성한다는 결과를 얻었다. 같은해 7월에는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가 제3차 구제금융 과정에서 국제 채권단의 협상안 수용 찬반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주도했다가 지지율이 반토막 났다.

유럽 국민투표 열풍은 내년에도 이어질 전망이다. 내년 4월과 5월 대선을 앞둔 프랑스에서 유력 대선 주자로 꼽히는 제1야당 공화당 후보인 프랑수아 피용 전 총리는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반(反)난민 정책, 공무원 감원 등을 포함해 국민투표를 5건 추진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는 EU의 난민 수용 정책 거부권에 대한 찬반 국민투표를 실시한다는 계획이다. 헝가리는 유럽연합(EU)의 난민 분산 배치 계획에 반대한 국가 중 하나다. 실제로 지금까지 EU가 배정한 난민 중 단 한 사람도 수용하지 않은 상태다. 

80년대 초까지만 해도 20건을 넘지 않았던 유럽 내 국민투표 방식은 90년대 초중반 50회를 넘긴 뒤 지금까지 평균 30~40회 이어지고 있다. 국민투표 횟수가 거듭되는 상황에서 포퓰리즘 영향이 늘어나면 EU 분열 속도도 빨라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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