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바보야 문제는…] ②‘현대판 매관매직’ 고정명부식 비례대표제, 너는 누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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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04-21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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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로 본 20대 총선 지형 [그래픽=김효곤 임이슬 기자]


아주경제 최신형·김혜란 기자 =제20대 국회의원 총선거(총선)가 여소야대(與小野大)로 끝났다. 16년 만에 여소야대, 20년 만에 3당 체제가 도래한 것이다. 핵심은 87년 체제의 균열이다. 4·13 총선을 통해 87년 체제의 부정적 유산인 1노3김(一盧三金) 지역주의에 균열이 생겼다. 대구·경북(TK)의 새누리당·호남의 더불어민주당·캐스팅보트(casting vote) 충청이 군웅 할거한 지역구도가 흔들리고 있다는 얘기다. 이제는 2018년 체제다. 미국의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돌풍의 주역인 ‘샌더스 열풍’에서 보듯, 구체제에 반기를 든 분노한 중도 무당파의 실체가 2018년 체제 안착의 시발점이다. 이에 본지는 각 당에 뿌리내린 87년 체제의 뿌리(1인 보스주의)를 도려내고 97년 체제(신자유주의)를 넘기 위한 제도적 방안을 모색한다. <편집자 주>

비례대표제는 양날의 칼이다. 직능대표제의 일종인 비례대표제는 각 정당이 득표한 비율에 따라 정당별로 의석을 배분하는 선거제도다. 직업 정치인 이외에 각 분야 전문가의 원내 진입을 통해 다양한 계층의 이익을 대변하자는 취지에서 도입했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전국구’라는 명칭으로 처음 도입된 이 제도는 2001년 헌법재판소에서 ‘정당투표 없는 비례대표제’가 위헌 결정을 받음에 따라 2004년 총선 때부터 1인2표제를 골자로 하는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로 탈바꿈했다. 다수대표제가 거대 양당에 유리한 제도라면, 비례대표제는 소수파 보호를 위한 헌법적 가치다. 

그러나 제도 도입 취지와 운용 실태의 갭은 컸다. 전문가와 소외 계층의 의회 진출은 간데없고 금품과 청탁을 고리로 한 ‘정치 줄 세우기’, ‘계파정치’의 온상으로 전락했다. 정당 내 특정 인사가 ‘비례대표 순번’을 정하는 전횡 때문이다. 20대 총선이 끝난 지 불과 6일 만인 지난 19일 검찰은 전남지사를 지낸 박준영(영암·무안·신안) 국민의당 당선자의 비례대표 공천 헌금 수수 의혹에 대한 수사를 개시했다. 

◆고정명부식, 부정부패 온상…현대판 매관매직

21일 정치학계와 헌법학계 등에 따르면 비례대표제는 크게 정당명부식과 단기 이양식(일종의 선호투표)으로 나뉜다. 정당명부식은 다시 폐쇄형인 고정명부식과 개방형인 가변명부식·자유명부식 등으로 구분한다. 의석 배분 결정은 최대잉여법(Largest remainder method)을 비롯해 동트(D'Hondt)식, 헤어/니이마이어(Hare/Niemeyer)식, 생트-라게식, 쿼터식 등 다양하다.

우리의 경우 ‘고정명부식 최대잉여법’을 쓴다. 정당명부식의 한 종류인 고정명부식은 각 정당이 자율적으로 정당 후보명부를 작성하는 방식이다. 의석수 배분이 가장 간단하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공천 때마다 특정 계파와 특정 인사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 필연적으로 계파 정치나 공천헌금 등이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다.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의 ‘셀프 공천’을 둘러싼 보이지 않는 손 논란도 이와 무관치 않다

앞서 1971년 5월6일 당시 신민당 당수 유진산이 5·25 총선 후보등록 3분 전 ‘전국구 1번’을 기습 등록한 이른바 ‘진산 파동’을 시작으로, 최근 비교적 최근인 18대 총선 당시 친박연대 비례대표 1번 양정례 전 의원의 공천헌금 30억원 전달, 19대 총선 당시 새누리당 비례대표로 입성한 현영희 전 의원의 공천로비 자금 등 한국 정치사의 비례대표제 흑역사는 적지 않았다.
 

국회 본청. 제20대 국회의원 총선거(총선)가 여소야대(與小野大)로 끝났다. 16년 만에 여소야대, 20년 만에 3당 체제가 도래한 것이다. 핵심은 87년 체제의 균열이다. 4·13 총선을 통해 87년 체제의 부정적 유산인 1노3김(一盧三金) 지역주의에 균열이 생겼다. 대구·경북(TK)의 새누리당·호남의 더불어민주당·캐스팅보트(casting vote) 충청이 군웅 할거한 지역구도가 흔들리고 있다는 얘기다. [아주경제 최신형 기자 tlsgud80@]


◆고정명부식, ‘직접선거’ 위반 소지 크다

더 큰 문제는 고정명부식이 국민의 선거 5대(보통·차등·비밀·자유) 원칙 중 하나인 ‘직접선거’에 반할 소지가 크다는 점이다. 간접선거의 반대 개념인 직접선거는 ‘유권자가 국민의 대표자를 직접 선출해야 한다’는 논리다. 

하지만 고정명부식의 경우 유권자의 정당 지도부가 비례대표 후보 명단과 순위를 일방적으로 결정, 유권자의 표심이 ‘과소 대표’될 수 있다. 예컨대 A유권자는 B정당의 비순위권 후보를 선호할 수 있지만, 당이 이미 순번을 고정해 개개인의 표가 지지 후보의 당선권만 근접하게 한다는 것이다.

손호철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날 본지와 전화통화에서 “표의 등가성을 생각하면, 비례대표를 늘려야 한다”면서도 “우리나라는 비례대표 선출 과정이 불투명해서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것 같다. 어떻게 하면 비례대표 선출 과정을 투명화할 것이냐가 핵심”이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법대 교수도 “고정명부식이 직접선거에 반할 수 있다는 것은 학계에서 이미 문제제기가 됐던 부분”이라며 “유권자 선호를 반영해 후보들의 순서를 조정하는 개방형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유권자가 정당이 제시한 명부에 있는 후보 중 특정 후보에게 개별 투표를 할 수 있는 선택권을 부여, 직접선거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룩셈부르크와 스위스, 일본 등이 이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전국 단위인 비례대표제를 권역별로 나눈 뒤 각 당의 당원과 시민 등이 참여해 순위를 조정하는 절충론도 있다. 손 교수는 “정의당과 같이 당원 투표로 하든가, 아니면 제3자적 심사 기구를 둬서 시민사회를 통해 하면 된다. (비례대표 공천이) 정파적 밥그릇 싸움이 되지 않도록 투명화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밖에 공천헌금 등 특별 당비 금지법 및 비례대표 공천자에 대한 인사청문회 등도 대안으로 꼽힌다.
 

박근혜 대통령 [사진=청와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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