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 귀국문제로 이중적 거래했던 한·미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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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04-17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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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 강정숙 기자 = 미국이 1980년대 신군부 정권의 탄압을 피해 망명한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을 보호하는 척하면서 물밑으로 한국 정부와 김 전 대통령의 귀국시기 등을 놓고 거래를 시도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17일 외교부가 공개한 김 전 대통령 귀국 관련 외교문서를 보면, 당시 전두환 정권은 내란음모죄를 뒤집어씌워 수감시킨 김 전 대통령을 '신병치료'를 들어 1982년 말 석방한 뒤 미국으로 보냈다가, 망명 2년여만인 1985년 2·12 총선을 앞두고 귀국하려 하자 귀국시 재수감하겠다고 압박했다.

우리 정부가 김 전 대통령의 귀국에 대처하기 위해 수차례 미측과 물밑 조율에 나서는 과정에서 미국의 이중적인 태도는 드러났다.

김 전 대통령의 귀국 움직임이 포착된 1985년 1월4일, 폴 월포위츠 당시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류병현 당시 주미 한국대사에 "김(김대중)이 귀국 후 재수감되면 미국 정부는 의회로부터의 대단히 거센 압력과 언론의 성화를 면치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김의 선거 전 귀국이 현재의 한국 내 정치발전, 민주발전에 저해요인이 될 것"이라며 김 전 대통령의 귀국 연기와 유럽여행 허가를 맞바꾸자고 한국 정부에 제안한다.

미국 정부가 자국에서 망명 중인 김 전 대통령을 전두환 정권의 탄압으로부터 보호하는 것보다 자국 의회와 여론의 반발 등을 의식하는데 급급했다는 비판이 가능한 대목이다.

한국 정부도 김 전 대통령의 귀국이 총선에 미칠 영향을 우려했고, 귀국을 선거 이후로 연기하도록 종용할 방안을 미측과 긴밀히 협의한 것으로 나타났다.

리처드 워커 당시 주한 미국대사와 노신영 당시 안기부장 사이에서는 미국이 김 전 대통령의 귀국 연기를 설득하고 한국은 사면 조치를 취하는 방안이 논의된다.

미측은 이번에는 워커 대사를 이원경 외교장관에게 보내 미 정부가 김 전 대통령의 귀국연기를 설득한다면 한국 정부도 김을 사면하는 방안을 고려하라고 또다시 제안한다.

여기서 워커 대사는 "만약에 김이 이러한 제의(사면받는 대신 총선 이후 귀국하라는 제의)를 거부하는 경우 미국 정부로서는 동 내용을 그대로 공개해 김이 불리한 처지에 놓이게 될 것"이고 "사면을 해주는 경우에도 김의 정치활동 규제는 계속 받도록 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제안 이유를 노골적으로 설명했다.

미국 정부의 이중적인 모습은 김 전 대통령이 그해 2월8일 귀국을 강행한 이후에도 포착됐다.

당시 김 전 대통령은 그의 신변을 우려하는 27명의 해외 인사들과 함께 입국했는데, 이 과정에서 일부 미국인들이 폭행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미 국무성은 즉각 성명문을 통해 "미국인들이 한국의 보안요원들로부터 상당한 폭력(considerable force)를 당했다"는 사실을 밝히며 공식적으로 한국 정부에 항의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엥겔 당시 주한미대사관 1등서기관이 같은날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우리 외교부 미주국장을 만난 자리에서 "김은 매우 간교한 인물"이라는 미주국장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이라며 이번 일로 한·미가 어색해지지 않도록 하자는 데 동의한다.

또한 김 전 대통령의 귀국 사흘 만에 이뤄진 워커 미대사와 한국 외교부 장관간의 대화에서도 워커 대사는 당시 폭행사건에 대해 "이번 일은 과격 선동가들이 김과 짜고 한국 정부를 궁지에 빠뜨리려고 하는 것"이라고 평가하는 이중성을 보이기도 했다.

외교부는 이 같은 내용 등을 포함한 총 1602권, 25만여 쪽에 이르는 외교문서를 생산된 지 30년 만에 공개했다.

이번에 공개된 문서에서는 또 1985년 당시 전두환 정권이 대통령 간선제 등을 골자로 한 5공화국 헌법에 대한 개헌 요구가 거세지자 미국의 레이건 행정부에 호헌에 대한 공개 지지 표명을 요구했다 거절당한 사실도 밝혀졌다.  이 문서에 따르면 전두환 정권은 1985년 4월 24∼29일 전 전 대통령의 방미를 앞두고 한미 정상회담 후 언론 발표 과정에서 당시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한국 정부의 호헌에 대한 공개 지지 표명을 해줄 것을 미국 측에 집요하게 요청했다.

이 같은 한국 정부의 요청은 당시 한국에서 대통령 직선제 개헌에 대한 요구가 거세진 시점에 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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