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순정’ 도경수, 소년은 울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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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02-11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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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순정'에서 작은 섬 마을에 사는 수줍음 많은 소년 범실 역을 열연한 배우 도경수(엑소 디오)가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진행한 아주경제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

아주경제 최송희 기자 = 소년은 울지 않는다. 홀로 무대를 설 때도, 별빛처럼 쏟아지는 팬들의 야광봉을 지켜볼 때도. 기쁠 때도, 두려울 때도 소년은 결코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남 앞에서 우는 것이 영 서툴렀던 소년이었지만 어느 날 불쑥 찾아온 감정에 무너지듯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울컥 차오르는 감정”은 “아이템을 획득한 것처럼” 느닷없이 찾아왔고 소년에게 새로운 시야를, 감수성을 안겼다. “연기를 계속할 수 있는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어느 날, 불쑥 찾아온 바로 그 감정 때문에.

최근 영화 ‘순정’(감독 이은희·제작 ㈜주피터필름·제공 배급 리틀빅픽처스) 개봉 전 아주경제와 만난 배우 도경수(23)는 남들보다 기민한 감수성을 드러내곤 했다. 앳된 인상에 말간 얼굴과는 달리 감수성에서는 누구보다도 예민한 듯했다.

“올해 24살인데 극 중 범실이는 17살이잖아요. 그 나이의 순수함, 풋풋함을 연기하는 게 중요했어요. 연기하면서 자연스럽게 학창시절을 많이 떠올리려고 했어요. 그 나이의 나는 어땠지? 내가 17살이었다면 어땠을까. 스스로에게 많은 질문을 던졌던 것 같아요.”

영화 '순정'에서 작은 섬 마을에 사는 수줍음 많은 소년 범실 역을 열연한 배우 도경수(엑소 디오)가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진행한 아주경제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


영화 ‘순정’은 라디오 생방송 도중 DJ에게 도착한 23년 전 과거에서 온 편지를 통해 현재와 과거를 넘나드는 애틋한 첫사랑과 다섯 친구의 우정을 담은 감성드라마다. 극 중 도경수는 첫사랑 수옥(김소현 분)을 위해서라면 못할 것이 없는 순정남 범실 역을 맡았다.

“영화가 91년도를 배경으로 하고 있잖아요. 저 역시도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굉장히 좋아하지만 이해하기에 어려운 부분이 있더라고요. 제가 혼란스러워하는 걸 알고 감독님께서 ‘91년도라고 생각하지 말자’고 하시더라고요. 사랑과 우정은 현재와 91년도와 다를 게 없다고요. 저 역시도 인정하는 부분이었기 때문에 시대적 배경보다는 감정을 우선으로 연기했어요.”

사랑과 우정. ‘순정’이라는 영화 제목만큼이나 솔직하고 직설적인 감정이었다. 다소 투박했지만, 도경수에게 다가오는 무게감은 직접적이었고 묵직했다. 그는 이은희 감독의 제안대로 사랑과 우정 이라는 본질에 주목했고 ‘변함없는’ 감수성으로 접근하려고 했다.

“과거 저의 모습을 많이 떠올리려고 했지만 극 중 범실이와는 다른 점이 많았어요. 범실이는 남자다운 구석이 있잖아요(웃음). 전 사실 수줍음이 많았거든요. 활동적이지 않았고 나서지 않는 스타일이었어요. 사회생활을 하면서 성격이 많이 바뀌었지만, 범실이와는 반대였던 것 같아요.”

영화 '순정'에서 작은 섬 마을에 사는 수줍음 많은 소년 범실 역을 열연한 배우 도경수(엑소 디오)가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진행한 아주경제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


범실과 도경수의 거리감은 비단 성격뿐만은 아니었다. 그는 오래도록 가슴 앓았던 첫사랑에 대해서도 “다르다”고 설명했다. 행복하고 아름다운 첫사랑보다는 “슬픈 기억뿐”이라는 것이었다.

“사실 첫사랑의 의미를 잘 모르겠어요. 저의 첫사랑은 고등학교 3학년 때였던 것 같은데 행복한 기억보다는 슬프고 우울한 기억이 더 많았던 것 같아요. 물론 당시 행복한 추억도 많았겠죠. 하지만 그런 건 시간이 지나고 나면 기억이 잘 안 나는 것 같아요. 행복함도 슬픔도 다 추억이 되는데 저는 슬픈 감정이 더 와 닿았나 봐요. 뭐, 지금은 다 추억이지만요.”

으레 소년들이 그렇듯 도경수 역시 때마다 다른 얼굴을 드러내곤 했다. 영화 ‘카트’를 지나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 ‘너를 기억해’에서도 순식간에 다른 얼굴, 다른 이면을 보여 왔다. 그것은 캐릭터만이 아니라 촬영현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순정’의 현장은 선배 연기자들과 호흡을 맞췄던 것과는 다른 또래들만의 ‘분위기’가 있었다.

“배우들이 다 또래다 보니 분위기가 특히 좋았던 것 같아요. 게다가 촬영장이 전남 고흥이니 우리끼리 친해질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매일 붙어 다니니까 말이에요. 밤새 수다 떠는 건 기본이고 바다 수영에 낚시에 정말 친구들처럼 가깝게 지냈죠. 일단 연기에 대해 가장 많은 이야기를 나눴던 것 같아요. 단순히 대사를 맞춰보는 것 말고 범실의 감정, 친구들의 감정이나 옷 스타일 같은 것들이요. 물론 개인적인 이야기도 많이 했죠. 연애나 사는 이야기 같은 것들도요.”

영화 '순정'에서 작은 섬 마을에 사는 수줍음 많은 소년 범실 역을 열연한 배우 도경수(엑소 디오)가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진행한 아주경제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


영화 ‘카트’의 태영,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의 강우, ‘너를 기억해’ 준영, 그리고 ‘순정’ 범실까지. 결코 울지 않는 도경수는 아이러니하게도 늘 울거나, 깊은 상처를 받은 캐릭터들을 연기했다.

“취향이라면 취향일 수도 있겠죠? 캐릭터들이 다 공통점이 있더라고요. 과거에 대한 아픔이나 슬픔을 가진 아이들이니까요. 그런 캐릭터들을 계속 맡으면서 새로운 캐릭터에 대한 갈증도 생겼어요. 완전한 악역이나 코믹한 캐릭터들이요. 물론 제 취향도 놓칠 수 없고요(웃음).”

평소 잘 울지 않는 도경수에게 주변 사람들은 “눈물도 없고 냉정하다”고 말하곤 했다. “기쁠 때는 그저 기뻐하고 슬플 때는 곧잘 참았던 것”이었는데 남들이 느끼기엔 그것이 냉정하게 느껴졌나 보다.

하지만 도경수는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를 연기하며 난생처음 감당할 수 없는 슬픔에 빠졌다. 생소하고 낯선 감정은 그를 마구 흔들어놓았고, 그를 배우의 길로 이끌었다. “연기의 시작점”이었던 감정의 발견처럼 그는 ‘순정’에서도 지금까지와는 다른 감정을 느꼈다.

“수옥이와 찍는 마지막 장면에서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을 느꼈어요. 그 장면을 세 번 촬영했는데요. 첫 번째 테이크에서 이상한 기분을 느꼈어요. 말도 안 되는 경험이었는데 고무줄을 당기는 듯한 느낌이었죠. 감독님께 말씀드리니 ‘감정이 올라오는 것 같다’면서 한 번 더 찍자고 하시더라고요. 두 번째로 찍었을 땐 (감정이) 끊어질 듯 팽창해있었어요. 목 뒤를 막 치면서 ‘못 찍을 것 같다’고 했는데 감독님이 한 번만 더 하자고 부탁하시더라고요. 세 번째로 연기했을 땐 정말 입도 굳고 말도 안 나오고…. 감정의 광기랄까요? 이상했어요. 몸이 안 움직이더라고요.”

영화 '순정'에서 작은 섬 마을에 사는 수줍음 많은 소년 범실 역을 열연한 배우 도경수(엑소 디오)가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진행한 아주경제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


도경수는 곧잘 ‘배움의 즐거움’에 대해 말하곤 했다. 낯선 감정의 발견이나 연기에 대한 몰입, 무대 위에서 느끼는 것들까지. 그는 끊임없이 배워가고 성장하는 중이었다. 최근 그가 찾고 있는 것은 ‘멋있는 남성’이라는 단어였다. 그의 이상향인 셈이었다.

“멋있는 남성이 되고 싶어요. 그게 뭔지 정확히는 저도 몰라요. 하지만 계속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배우를 떠나서, 가수를 떠나서 멋있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런 사람이 되려고 해요. 위트도 있어야 하고 연륜도 느껴져야겠죠?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많이 노력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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