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침몰] 팽목항을 가득 채운 구슬픈 사연들 '살아만 돌아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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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4-04-20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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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 [진도=이형석 기자]

아주경제 김은하 기자 = 세월호가 침몰한 지 닷새가 지났지만 전남 진도군 임회면 팽목항은 여전히 전쟁터다. 아직도 바다 밑에 있는 실종자들을 기다리는 가족들이 시골 부두를 빽빽이 메웠다. 누구 하나 사연 없는 사람이 없다.

“자식도 없는 내 친구, 못 알아보면 어쩌나”

“내 새끼는 살아 있다”고 굳게 믿으면서도 혹시 몰라 DNA 검사에 응하는 부모의 마음을 어디에 비하겠는가마는 그마저도 쉽지 않은 사람이 있다.

팽목항에서 실종자 A씨를 기다리는 친구 B(46세)씨는 “A가 자식이 없는 데다 부모를 수소문하는 것도 막막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사고 당시 “구명조끼를 입었느냐”고 묻는 B씨의 말에도 “내가 문제가 아니다. 아이가 많아 구해야 한다”며 전화를 급히 끊은 A씨의 시신을 알아보지 못할까봐 친구는 눈앞이 막막하다.

“수협 통장, 아이 등록금으로 써”

승객들을 뒤로 하고 세월호를 탈출한 선장 이준석을 선두로 대부분의 선원이 달아나 공분을 사고 있지만 승객을 구조하려다 실종된 선원도 있다.

세월호 사무장 양(45)씨는 아내 안(43)씨와의 마지막 통화에서 “배가 많이 기울어져 있어. 수협 통장에 돈 있으니까 아이 등록금으로 써”라고 말했다. 안씨가 “지금 상황이 어떠냐”고 묻자, 양씨는 “지금 아이들 구하러 가야 해. 길게 통화 못 해, 끊어”라며 세월호와 운명을 같이 했다. 양씨의 희생은 승객을 버리고 살아남은 선원들 때문에 빛도 보지 못했다.

아내 안씨는 “남편은 탈출할 생각도 없이 아이들을 구하려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남편의 뒤안길이 억울할 것 같아 이를 달래주고 싶었다”며 사연을 공개한 이유를 밝혔다.

“하늘나라에선 백년해로…”

세월호는 백년해로를 약속한 20대 예비부부도 집어삼켰다. 이벤트 업체 종업원 김(28)씨와 승무원 정(28)씨는 4년 전부터 사귀다 올가을에 결혼식을 올리기로 약속한 사이였다. 두 사람은 세월호의 선사인 청해진해운 소속 여객선에 동승했다가 만났다. 정씨는 6년 전부터 세월호에서 서비스 업무를 맡아왔다. 김 씨는 주로 인천∼제주 항로를 오가는 다른 여객선인 오하나마호를 탔지만 이번엔 예비 신부 정 씨가 “심심한데 같이 타면 좋겠다”고 권해 세월호에 승선했다. 김씨와 정씨는 영혼결혼식을 올릴 예정이다.

빠듯한 사정 탓에 결혼식을 올리지 못하고 1년 전부터 살림을 차린 이(39)씨와 한(38)씨는 알뜰히 모은 돈으로 한 달 전 국산 경차 모닝을 구입해 그 차를 세월호에 싣고 뒤늦게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가다가 참변을 당했다. 두 사람 모두 첫 제주도 여행이었다. 이씨의 어머니는 “아들과 며느리가 같이 가자고 했으나 내가 식당 일로 바빠 둘만 보냈는데 이렇게 됐다”며 “안산에서 내가 일하는 광명의 식당까지 일부러 매상 올려 준다고 직원들을 데리고 올 만큼 착한 아들이었다”며 가슴을 쳤다.

“이 애는 내 딸이 아니에요”

목포에서 가족들을 찾아온 경기도 안산 단원고 2학년 여고생의 여린 시신은 다시 목포로 갔다가 안산으로 돌아와야 했다. 같은 반 친구의 체육복을 입고 있던 김(18)양의 신원을 해경이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채 체육복 소유자 가족에게 통보한 게 원인이었다. 목포에서 올라온 김양의 시신을 보자마자 체육복 주인의 가족은 한 눈에 자신의 딸이 아님을 알았다. 시신은 목포로 내려가야 했고 신원을 확인한 뒤 다시 안산으로 향해졌다. 꼬박 24시간을 헤맨 뒤에야 가족 품에 안겼다.

김양의 아버지는 “눈을 완전히 다 감지 못했더라. 어디 가서 하소연도 못하고…”라고 말하며 목포와 안산을 두 번 오가고서야 만난 딸에 대한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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