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왜곡 '기황후', 이대로 괜찮은가

입력 : 2013-11-21 15:01

'기황후' 포스터[사진제공=MBC]

아주경제 이예지 기자 = "전문가의 고증을 거친 역사기록을 토대로 한 팩션(faction·fact+fiction) 드라마다. 역사 속 일부분을 발췌했지만, 이야기 대부분은 작가의 창작으로 만들어졌다."

'선덕여왕'이나 '대조영', '바람의 화원' 등 드라마의 역사왜곡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제작진의 해명은 같다. 드라마 속 설정은 대부분 허구이니 정색하고 문제 제기할 필요가 없다는 식이다. 지난 10월 28일 방송을 시작한 MBC 월화드라마 '기황후' 역시 마찬가지다.

'기황후'는 대원제국의 지배자로 군림한 고려 여인 기승냥의 사랑과 투쟁을 다룬다. 몽골의 초원에서부터 러시아와 동유럽까지 아우르는 거대 영토를 가진 대제국 원나라의 황후가 고려 출신 여인이라는 흥미로운 사실에서 출발한다. 기황후가 고려의 여인이라는 기본 설정을 빼면 나머지는 상상력의 산물이다. 사실과 허구가 결합된 팩션임을 감안하고도 역사왜곡 논란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달라도 너무 다른 등장인물의 성격 탓이다.

먼저 드라마 속 기황후(하지원)는 낯선 이국의 황실에서 고려의 자긍심을 지키며 운명적 사랑과 정치적 이상을 실현한 여인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고려사절요'는 "기황후와 기철 4형제가 갖은 횡포를 일삼고 경쟁적으로 악행을 일삼았다"고 적었다.

주진모가 연기하는 고려의 왕도 마찬가지다. 고려 28대 왕 충혜는 새어머니와 신하의 부인을 겁탈하는가 하면 눈물 흘리는 여자를 철퇴로 죽이는 등 악행과 패륜을 일삼은 폭군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작가는 카리스마 넘치는 국왕으로 그렸다. 논란이 가중되자 남주인공으로 충혜왕을 내세웠던 제작진은 방영 직전 '가상의 인물' 왕유로 변경했다.

역사적 사실과 사뭇 다른 남녀 주인공의 캐릭터에서 촉발된 '역사왜곡 드라마'라는 꼬리표를 안고 출발한 '기황후'. 방송 후에도 역사학자와 시청자, 제작진 사이에서는 '역사드라마의 주안점을 사실성에 둘 것인가, 오락성에 둘 것인가'를 놓고 빈번하게 의견 충돌을 벌이고 있다.

드라마의 인기는 시청자의 '욕'을 먹고 산다고 했던가. 논란에도 불구하고 '기황후'를 향한 시청자의 관심은 뜨겁다. 11.1%(시청률조사기관 닐슨코리아 기준), 두 자릿수 시청률로 출발하더니 지난 20일에는 자체 최고 시청률(16.9%)을 기록했다.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역사왜곡 논란으로 되레 시선몰이에 성공한 셈이다.

전문가들은 '기황후'를 향한 높은 관심에 우려를 표했다.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역사드라마는 시청자에게 혼란을 준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역사적 판단이 어려운 어린 시청자들이 드라마의 내용을 사실로 착각할 가능성을 염려했다.

대진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조수선 교수는 "드라마 속 인물의 성격이나 당시의 정치·사회적 배경이 역사적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시청자에게 인지시키는 과정이 필요하지만 간과되기 일쑤다. 실제 있었던 일이라고 생각해야 극 몰입도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미디어는 드라마의 허구성을 시청자가 충분히 판단할 수 있을 거라고 항변하며 인지 과정을 생략하는데, 이는 오히려 시청자를 폄하하는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이강한 교수는 최근 빈번히 일어나고 있는 드라마의 역사왜곡에 대해 "역사학자들에 의해 연구되지 않은 부분 중 재미있는 사실을 바탕으로 해서 사극을 만드는 것은 좋은 일"이라면서도 "사료에 남아있는 것과 현저히 대치된 묘사는 혼란을 줄 수 있다. 시청자의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는 자막으로라도 설명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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