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이드의 좌절과 스타렉스의 기적, 필리핀 車시장 희망을 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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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3-11-18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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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현지 지역 도로에 정차해 있는 스타렉스.


아주경제 채명석ㆍ윤태구 기자 = 최근 필리핀 수도 마닐라를 비롯한 지역 곳곳의 도로에서는 한국 자동차가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일본 메이커가 점령하다 시피한 필리핀 자동차 시장에서 한국 차의 약진은 2000대 중반 이후 두드러졌다고 하는데, 지난해 말 기준 현지 시장 점유율은 17%까지 상승했다.


관련 업계와 필리핀 현지 주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러한 필리핀 시장에서의 성공은 커다란 좌절을 딛고 이뤄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한국 차가 필리핀 시장 진출을 시도한 것은 1980년대였다고 한다. 당시 김선홍 기아자동차 회장은 해외시장 확대 전략의 일환으로 필리핀을 포함한 동남아시아 시장 개척에 전력을 기울였다. 전략 차종은 베스트셀링 승용차였던 프라이드였다. 일본 업체의 배후 로비로 필리핀 정부는 기아차에게 쉽게 문을 열지 않았지만, 노력 끝에 1990년 필리핀 정부의 국민차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게 됐고, 프라이드의 첫 수출을 포함해 현지에 반제품조립(CKD) 공장을 세우기에 이른다.


프라이드저렴한 가격으로 대박 쳤지만

필리핀은 자동차 수입관세가 높기 때문에 과거는 물론 현재까지도 한국보다 자동차 가격이 비싸다. 기아차는 일본차에 비해 떨어지는 품질을 가격으로 승부하기 위해 현지 생산하는 프라이드에 1300cc급 엔진 대신 1100cc급 엔진을 얹어 가격을 700만원대로 판매했다. 이 전략이 적중해 프라이드는 엄청난 판매고를 올렸다고 한다. 특히 트렁크가 있는 프라이드베타는 필리핀 택시업체에게 가장 인기를 모은 모델이었다.


상승곡선을 그려나가던 프라이드에 문제점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첫 진출 후 2년여가 지난 다음 부터였다. 열대 국가인 필리핀에서는 자동차에 항상 에어컨을 켜놓아야 한다. 필리핀에서 판매된 프라이드는 기존 설계사양보다 배기량을 줄인 엔진을 탑재한 탓에 에어컨을 켠 채로 더운 날씨에 운행을 하다 보니 오버히트로 차가 멈춰 버리는 사고가 자주 발생했다. 소비자의 불만은 갈수록 커지면서 판매는 급락했고, 현지 시장에서의 외면에 유동성 위기에 처한 본사 사정까지 겹쳐 결국 기아차는 필리핀 시장에서 철수했다.


가격으로만 승부를 걸다보니 현지 시장 사정을 외면한 프라이드 베타는 한국차 이미지를 바닥으로 떨어뜨리는 결정적인 요인이 돼 다른 업체들의 제품 판매마저 어렵게 만들었다.


프라이드 베타 사태의 여운은 현재도 남아 있다. 마닐라 시내를 돌아다니는 택시에는 차 후문에 에어컨(Aircon)’이 씌여있는 데, 이는 자기 택시는 에어컨이 나온다는 것을 의미한다. 100% 기아차의 잘못이라고 할 순 없지만 엔진 사정 때문에 에어컨을 끄고 운행할 수 밖에 없었던 프라이드 베타 택시로 인해 다른 차종의 택시들까지 이미지가 나빠지자 택시 업체들이 고육지책으로 이런 표시를 하고 다닌다는 것이다.

 

필리핀 수도 마닐라 시내를 운용하는 택시에는 냉방이 된다는 뜻으로 후문에 'Aircon'이라는 표시를 하고 있다.

◆대가족 필리핀 국민 마음 사로잡은 스타렉스’, 없어서 못판다

한번 무너진 이미지를 다시 살리기 어려웠던 필리핀 시장에 물꼬를 튼 효자는 우연히 나타났다. 2000년대 중반, 현지에 진출한 한국인 무역상들이 승합차 스타렉스중고차를 수입했는데, 스타렉스를 목격한 필리핀 소비자들 사이에 입소문이 퍼지면서 수요가 늘어났다는 것이다. 전체 인구의 94%가 기독교도인 필리핀은 낙태가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다자녀 가족이 많다. 따라서 현지에서는 온 가족을 모두 태울 수 있는 대형 레저용 차량(RV) 수요가 크다.


스타렉스는 외형이 RV와 비슷한 데다가 9인승, 12인승에 15명까지 탈 수 있을 만큼 크고 넓어 주말에 온 가족과 성당을 갈 수 있고, 특히 인테리어가 필리핀 국민들의 마음을 완전 사로잡았다고 한다. 현재도 스타렉스는 한국에서는 중고물량을 댈 수 없을 만큼 나오는 즉시 팔리고 있고, 현대차도 한국에서 신차를 구입해 필리핀으로 되팔아 거액을 챙기는 업자들을 막기 위한 노력을 진행하고 있을 정도라고 한다.


스타렉스로 재점화된 한국차 판매 붐은 지속되고 있다. 도요타와 혼다 등 일본차들의 대규모 리콜 사태 때 현대차가 출시한 투싼의 판매가 크게 늘었고, 엘란트라(한국명 아반떼)도 인기 차종으로 분류되고 있다. 과거에 비해 월등히 나아진 품질에 디자인 경쟁력이 더해진 덕분이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아직까지 한국차의 필리핀 수입관세는 25%로 일본차의 15%보다 10%p 이상 차이가 나서 한국차 가격이 일본차에 비해 비싸지만 디자인에서 일본차보다 낫다는 소비자들의 인식이 늘면서 한국차 판매가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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