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지도자 대해부> 류치바오, 언론자유와 사회통제 사이에 서다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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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3-05-01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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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 김근정 기자= "인민의 대변인인 언론매체 종사자라면 독자를 위해 쓰고 독자를 위해 보도하며 독자의 요구를 반영해 마땅히 충분한 흡입력과 파급력을 보유해야 한다."

"국내외 주요 뉴스를 확실히 보도하고 사상의 치우침 없이 대중들이 관심갖는 이슈를 집중적으로 실시간으로 보도해 여론형성에 있어 발언권을 장악해야 한다."

지난달 중국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와 국무원 산하 신화(新華)사를 방문한 중국 중앙선전부장 류치바오(劉奇葆)는 거듭 관영언론의 역할과 나아갈 길을 제시했다.

류치바오는 18차 당대회 이후 중앙정치국 위원이자 중앙서기처 서기 및 류윈산(劉雲山) 상무위원의 뒤를 이어 중앙 선전부장에 임명됐다. 류윈산 전 선전부장이 중앙서기처 제 1서기 겸 선전 담당 상무위원으로 영전하면서 향후 5년간 류윈산-류치바오가 중국 여론·언론을 이끌게 된다.

최근 미디어의 발달에 따라 정권을 공고히 하는데 여론을 얼마나 잘 이끌어가는냐가 중시되면서 류윈산-류치바오의 향후 행보에 국내외 관심이 더욱 집중됐다. 게다가 이변이 없는 한 류치바오가 5년 뒤 19차 당대회에서 상무위원에 진입할 가능성이 농후해 그가 중국 언론을 어떻게 통제하고 이끌어가는가가 중국의 언론의 미래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얼마 전 난팡저우모(南方周末)의 언론통제에 대한 반발이 파업으로 번지면서 언론의 자유와 역할에 대한 정의가 다시 한번 논란의 급물살을 탄 것 역시 류 부장에 대한 관심을 뜨겁게 달궜다. 다행히 당국이 기자들의 요구상황을 적절히 반영하고 언론통제를 완화하는 쪽으로 타협해 희망의 물꼬를 틔웠으나 이후 류치바오 선전부장의 의향에 따라 난팡저우모 상태를 비판한 환추스바오(環球時報)의 사설을 신징바오(新京報)에 강제게재를 요구했다는 사실이 폭로되기도 했다.

시진핑(習近平) 총서기와 같은 해인 1953년 1월 안후이(安徽)성 쑤쑹(宿松)현에서 태어난 류치바오는 안후이성사범대 역사학과 출신으로 안후이성에서 출세기반을 닦았다.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이 안후이성 출신이라는 점에서 유추해볼 수 있듯 공청단 안후이성 위원회 서기를 맡기도 한 류 부장은 그야말로 '후진타오 키즈'다. 당시 베이징 공청단 중앙 제 1서기를 맡았던 후진타오와 업무는 물론 개인적인 신뢰관계를 꾸준히 쌓았고 1985년 11월 베이징으로 상경해 9년간 공청당 중앙 업무를 수행해 리커창(李克强) 총리에 이어 공청단 내 서열 2위까지 올랐다.

이후 1993년 1년간 런민르바오 부편집장으로 일하면서 본격적인 선전·언론 전문가로의 커리어를 다지고 광시좡족(廣西壯族)자치구 서기, 쓰촨(四川)성 서기에 이어 작년 18차 당대회 때 중앙정치국 진입은 물론 당당히 중앙 선전부장에 올랐다.

그가 선전부장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계기로 쓰촨성 서기시절 발생했던 원촨(汶川) 대지진이 자주 언급된다. 당시 그는 즉각적인 구조와 대응을 주문하는 동시에 “언론기관은 여론을 올바르게 선도하라” 고 지시해 불안가득한 민심과 부실공사에 대한 비난의 화살을 적절히 통제했다고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작년 말 그의 입지가 위태로운 것이 아니냐는 추측도 나왔었다. 12월 리춘청(李春城) 쓰촨성 당 부서기가 청두(成都)공업투자그룹 관련 비리에 연루돼 낙마하면서 류 부장이 그의 후견인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심지어 일주일간 행적이 묘연해지고 방북 대표단 단장이 류 부장에서 리젠궈(李建國) 전국인민대표대회 부위원장으로 교체되면서 의혹이 증폭됐다.

하지만 1주일 뒤 공식석상에 출현해 항간의 의혹을 비웃듯 건재함을 과시했으며 아직까지도 그의 입지는 굳건하다.

18차 당대회 이후 후진타오 주석의 정치계 은퇴가 예고되고 상무위원 및 정치국위원 권력구도에서 상대적으로 공청단파가 밀렸다는 인상을 주고 있는 지금 19차 당대회때 류치바오, 왕양(汪洋) 전 광둥성 서기 및 리위안차오(李源潮) 전 중앙조직부장이 상무위원 진출에 성공할지 여부는 초미의 관심사다. 특히 류치바오가 향후 어떤 성과와 업적을 쌓아 중국의 목소리를 중국의 발전과 미래에 반영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주요 약력 ▲1953년1월 출생 ▲1972년 안후이성 선전부 이론연구실간부 ▲1983년 공청단 안후이성 서기 ▲1985년 공청단 중앙서기처 서기▲ 1993년 런민르바오 부편집장 ▲2000년 광시좡족자치구부서기 ▲2006년 광시좡족자치구 서기 ▲2007년 쓰촨성 서기 ▲2012년- 중앙정치국위원, 중앙서기처 서기 겸 중앙선전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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