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개국 450여개 중소기업들(이 중 360여개가 중국 기업이다)이 위치한 IFA 남문 앞 26-28홀에는 현지 도우미들의 세련된 웃음과 다양한 이벤트로 눈길을 끄는 글로벌 기업들의 전시장과는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매일 전시 시작 1시간 전부터 한국관 각 부스에는 직접 디스플레이를 하기 위해 중소기업 사장님과 영업사원의 손길이 분주하다. 점심이 되면 부스 또는 한국관 공용 창고에서 도시락으로 점심을 때우고, 오후 바이어를 만나기 위해 다시 기다림의 시간에 들어간다.
예전에 비해 우리 제품들은 이제 단순한 액세서리나 부품 단계를 넘어 중국계 기업과는 확연히 다른 기술력과 디자인으로 무장하고 최첨단의 톡톡튀는 아이디어 완제품으로 승부한다. 하지만 국가관의 위치를 IFA 전시장 후방부인 26홀 이후에 위치시키는 주최측 정책에 따라, 중국·홍콩 등의 저가 제품들과 함께 전시되는 불이익을 받고 있다. 한국관 운영자로서 이 부분이 가장 안타깝고 중소기업에는 죄송한 사항이다.
올해 한국관이 위치한 26홀C 안에서는 조금이라도 전시장 입구와 가까운 위치를 선점하기 위해 한국·중국·홍콩의 혈투가 벌어졌다. 내년에는 조금 더 대담하게 중국관과 홍콩관의 입구쪽 부분을 모두 배정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홍콩과 중국관 운영기관의 항의가 불을 보듯 뻔한지라 내년 1월까지 치열한 싸움이 지속될 것 같다.
IFA는 특허 괴물인 시스벨의 주력 무대로, 라이선싱 계약이 안 된 중소기업들의 전시품들을 세관 경찰들이 가압류해가기로 유명한 전시회다. 2008년에는 현대IT 모니터 20~30대가 모두 압수되기도 했고, 중국 기업들은 올해도 7~8개 업체들이 전시품을 압류당했다. 하지만 우리 중소기업들은 이제 라이선싱 계약도 거의 체결하고, 문제가 있는 경우 여러 개의 제품을 준비하거나 라이선싱이 없는 기술을 뺀 카탈로그나 제품을 전시하는 등 확연히 그 대응수준이 높아지고 있다. 올해는 1개의 제품도 피해 없이 무사히 전시를 마쳐 중국관 운영자가 그 비결을 물어보기도 했다.
한국관을 운영하면서 잠시 짬을 내어 글로벌 기업들의 전시장을 둘러보고 한국관으로 돌아온 첫 날 많은 생각이 들었다. 누가 와도 웃는 얼굴로 맞이하는 외국 기업, 삼성, LG 도우미들, 그런데 한국관에 돌아오면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무뚝뚝한 얼굴로 참관객을 맞이하는 기업들, 바이어가 아니면 돌아보지 않는 사장님들. 왜 이렇게 달라야 하는가, 이것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차이구나 생각하다 문득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들은 자랑하기 위해, 쇼를 위해 나왔으나 우리 사장님들은 생존을 위해 나와 있구나. 이분들을 도와드리고, 한국관을 KOREA라는 한류 브랜드 하에 세련되고 빛나게 보여야 하는 것이 내 임무라고 깨달았다. 부회장님을 모시고 IFA 주최측 대표이사와 면담하는 날, 메인홀에서부터 한국관을 안내할 것과 바이어 투어에 한국관을 포함시켜줄 것, 건물 외벽의 배너를 보강해주고, 전시 기간 중 특허 단속을 완화해줄 것 등을 요청했다.
전시 5일째 저녁, 한국관 27개사가 참여한 간담회가 독일 중심가 맥주집에서 열렸다. 매년 전자진흥회 부회장님, 업체 사장님들, 통역들 모두 모여 그동안의 고생을 서로 위로하고 회포를 푸는 자리다. 갑자기 60대 한국관 유일의 여사장님께서 앞으로 나서서 건배를 제의하셨다. "독일 한복판, 이 중심가에 한국 기업들이 메인홀을 차지했습니다. Korea 파이팅!!" 아직도 그분의 떨리는 목소리가 귓가에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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