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차이나리포트> 한중문화를 바로 보는 ‘문화거울’

입력 : 2012-08-10 18:27
국립부경대학교 예동근 교수


문화거울

한중수교 20주년 기념일이 곧 다가온다. 각종 한중문화행사들이 열리고, 학술세미나가 이루어지면서 피할 수 없는 부분은 ‘비교‘부분이다. 사석에서도 ’우리 한국은 이런데, 중국은 어때?‘ 이런 비교로 인해 우리는 상호간에 이해를 증진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서로 큰 오해와 편견을 낳을수도 있다.
중국인과 한국인은 ‘빠르다’, ‘가깝다’ 는 정도를 인식하는데 있어 상당한 차이가 있다.
중국인들이 ‘곧, 도착해요’라고 말할 때 ‘곧’은 빠르면 5분, 길면 한 시간까지의 틈을 말하지만. 한국인들은 이를 ‘금방 즉시’의 의미로 2~3분, 혹은 5분 이내의 짧은 시간으로 받아들이는 듯하다. 중국인들에게 있어 200km-500km 거리, 차로 4-5시간 정도는 큰 부담이 없는 거리지만, 한국인이 느끼는 500km (대략 서울에서 부산의 거리)는 중국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먼 거리다.
우리는 이런 비교를 통해 중국인과 한국인의 시간과 공간에 대한 인식과 이해에 큰 차이가 있음을 발견한다. 문화에 대한 차이와 비교는 곧 이해를 증진하는 첩경이 될 수 있다. 같은 부분을 발견하면 기뻐하고 공감을 형성하면서 친해지는 경우도 많다. 한중 양국민은 같은 황인종인 점, 사자성어, 삼국지, 한국드라마 등을 통해 다양한 교감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문화’는 인간의 내면과 깊숙이 연결된 부분, 특히 ‘민족 자존심’이란 금기를 건드릴 때, 갈등양상으로 돌변할 수 있는 것이다. 문화와 정치부분은 잠시 접어놓더라도 생활영역의 소통에서도 큰 오해와 갈등을 일으키는 경우가 적지않다.

예컨대, 중국을 다녀 온 한국관광객 가운데 ‘관광지는 참 좋은데, 화장실이 더럽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한국을 다녀간 중국 관광객들은 ‘한국에서 제일 큰 저수지라고 하는데, 우리 마을 저수지보다 작더라‘ 라고 말한다. 즉 ’깨끗하다와 더럽다, 크다와 작다’에 주관적 가치판단이 추가되었을 때 상호간 오해를 줄 수 있다. 설사 상대방에 대해 편견을 가진게 아니고 아무런 악의적 감정이 없다고 해도 듣는 쪽에서 오해하게 되면 불필요한 마찰을 빚게 할 수 도 있다.
그럼 이런 편견은 어떻게 생겨 났으며 어떻게 이러한 생활영역의 문화적 편견을 최소화할 수 있을까? 필자가 볼 때, 이런 오해와 편견은 우선 중국인과 한국인이 자신을 보여 주는 문화거울이 다른데서 빚어진다. 문화충돌의 원인은 수천가지가 넘는다. 하지만 필자는 문화거울 이라는 개념으로 문제를 분석하고 싶다. 예컨대, 중국인과 한국인은 생활영역에서 ‘大, 空, 淨, 美’를 인식하는 방식이 다르다. 형상과 용기의 크기와 내용도 모두 다르다. 지금까지 비교문화는 대부분 ‘내용’에 집중되었다. 교류과정에서 대부분 시간을 ‘내용’설명에 할애하지만, 문화교류가 일어나는 환경, 문화교류주체의 사고방식까지 논의되는 경우는 매우 적었다. 이제 중국인과 한국인이 교류를 할 때, 서로의 ‘코드’에 대해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큰 거울, 작은 거울
중국은 영토면적, 인구에서 한국보다 큰 사이즈를 유지하였다. 국가비교, 그 국가의 사고방식을 고려할 때, 사이즈는 가장 핵심적인 비교대상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수천년의 역사를 통해 하나의 습관으로 내면에 깊게 스며있기에 잘 변하지 않는 부분이다. “사이즈”는 문화의 미적 측면에서 핵심가치가 아니다. 하지만 정치, 역사와 연결 될 때, 문화 심리적으로 상대방에 공포감, 자비감을 줄 수 있다. 역으로 ‘거대한 거울’에 담은 ‘像(거대한 건물, 수백만의 군대, 거대한 도시)’은 자민족 문화권의 코드에 별로 문제가 되지 않고 민족 긍지감을 갖게 하지만, 국경 넘어 작은 거울의 상에 익숙한 문화권에 전달 될 때 공포, 위협이란 부정적 오해와 편견을 낳게 할수 있는 것이다.

익숙하지 않음으로 인해 항상 ‘거대한 상’에 대해 긍정적 사고 보다 피해의식이 강할 때, 교류의 내용이 아무리 좋아도 접수과정에서 불편함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한중수교 20년을 맞아 상호간에 방문 교류가 증가함에 따라 거대한 상에 점차 익숙해 지는 한국인들도 많아졌다. 때로는 ‘중국모델’로 정의하면서 그 차이를 인정하는 경우도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한국은 미국, 일본, 러시아를 통해 중국의 거대한 거울에 비친 모습들과 비교하면서 섬세하게 점차적으로 익숙해져가는 양상이다. 또한 중국보다 더 빠른 속도로 서구문화권에 편입되면서 동서양의 틀에서 중국의 ‘거대한 상’을 재해석하는 문화과정을 겪고 있다.

중국인들의 마음속에도 점차 ‘작지만 강한 한국’이미지가 부단히 확장되면서 작은 것을 좋아하고, 친숙해져 가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중국이 세계 중심무대를 향해가고, 유럽의 강소국, 한국, 대만, 싱가포르 등 도시국가나 강소국 문화를 경험하면서 ‘작지만 행복한 국가’를 선호하는 주민들이 늘고 있다. 중국의 이민추세는 작은 거울의 상에 대하여 긍정적 이미지를 더 크게 강화할 수 있다.

투명한 거울, 희미한 거울
필자는 영화광이며 드라마광이다. 일반 중국인처럼 한국 드라마를 볼 때, 흥미롭고, 아기자기하고 섬세한 부분을 잘 표출하는 한국드라마에 공감을 나타낸다. 하지만 한국인들과 얼굴을 맞대고 교류할 때, 아직 어려운 부분이 많다. 이에반해 한국인들은 중국드라마를 보면서 대충 감은 잡을 수 있겠지만 구체적으로 무슨 얘기를 하는지 잘 모르는 부분이 더 많을 것으로 생각한다.
중국인들은 큰 거울에 익숙하여, 문화를 표현할 때 전체적 상에 집중하는 편이다. 큰 윤곽은 명확하게 나타나지만, 어떤 특징적 부위를 부각하여 섬세하게 표현하는 방식보다, 전체의 균형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에 비해 한국인들은 손 거울처럼 특징부분을 예리하고 섬세하게 포착하고 표현하는 부분적 상에 강하다.

한류가 중국에서 인기를 얻는 것을 문화거울로 분석하면, 개성의 시대에 특정 부분의 독특한 표현방식이 중국 전체적 상에 금상첨화로 연결되는 것이다. 하지만 중국드라마의 전체적 상은 희미한 방식으로 신비감, 거대함. 웅장함의 맛들을 표현할수 있다. 하지만 스토리는 항상 “무미건조”하다는 한계를 벗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드라마처럼 배경이 잘 나타나지 않은 상황에서, 한국인과 중국인간 언어를 매개로 한 교류는 간혹 상대에 대해 오해를 가져다줄수도 있다. 중국은 전체적 서술에 익숙하고, 한국인은 상황적 서술에 익숙한 편이다. 그래서 한국인의 눈에 비친 중국인은 조리 있게 얘기는 잘하는데 중점이 없는 사람들이고, 중국인의 눈에 비친 한국인은 참 표정도 좋고, 흥미롭지만 도대체 무슨 맥락인지, 이해가 안간다는 식이 된다. 그래서 함께 웃을 수 있는 타이밍을 잃어버리는 경우도 많다.

문화거울의 투명성을 추구하는 것은 비즈니스 관계에서 한국인은 ‘딱 부러지는 계약’과 ‘짧은 기간, 일회성 계약‘을 중시하는 것 같다. 중국은 다소의 모호성을 보이며, 그때그때 수정해 나가고 ’길게, 오래도록‘을 중시하며 ’장기간, 큰 계약‘에 방향성을 맞춰간다.
이런 투명성 추구를 국민과 정부의 관계에 비추어 볼 때, 한국인들은 명분을 중시하고, 눈앞의 시비를 따지면서 정치적 발전을 추구하는 편이고, 중국인들은 장강의 흐름을 역행하지 않을 정도라면 굳이 옳고 그름을 따지기 보다 장기적이고 더 큰 이익에 관심을 갖는다. 당장 자신에게 피해가 가지 않으면서, 이익을 더 많이 주는 행위에 관심을 갖는 것이다.

표준거울, 교류의 거울
한중 문화적 차이를 설명하면서 우리가 더 주의해야 할 부분은 교류의 생산성, 보편성에 관심을 가져야한다는 점이다. 글로벌화와 첨단화가 진전되면서 문자교류에서 영상교류의 시대로 넘어가고 있고, 페이스북, 구글, 원도우 등 통신 컴퓨터 시설이 보편화되면서 전 지구적 차원에서 표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여행의 일상화, 서구중심의 표준화 시스탬과 문화적 가치는 한-중교류에 있어 ‘거울 사이즈’의 표준화 작업이 필요한 시점임을 말해주고 있다. 한중수교 20년으로 우리는 상대와의 차이를 알게 되었고, 그것이 형성하는 편견과 오해를 가늠할 줄 아는 지혜도 얻게 됐다. 이는 곧 교류의 생산성을 추구하는 거울의 표준화 과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일방적으로 자신의 문화우월성만 강조하여서는 글로벌 무대에서 결코 성공할 수 없고 오히려 고립만 자초하게 될 뿐이다. 한류 드라마 한 편도 중국과 세계인의 문화와 사고를 고민하면서 제작해야 하고 공자학원의 세계화 역시 강요하는 방식이 아니라 문화의 상호적 작용을 인정하면서 밀고 나가야한다. 그래야 상대국에서, 또는 세계속에서 인정을 받을 것이고 인류사회의 문화적 보편성에서도 우월성을 갖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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