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만간 건설사와 중소 건설사의 `퇴출 명단' 윤곽이 드러날 예정인 가운데 채권 은행을 대상으로 로비와 압력, 비방이 전방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채권 은행들은 업체의 로비와 상관없이 객관적인 잣대로 기업들을 평가한다는 방침이지만 퇴출에 대해서는 적지 않은 부담을 느끼고 있는 상황이다.
◇ 읍소.비방.반협박까지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채권은행들은 오는 16일까지 92개 건설사와 19개 조선사에 대한 신용위험 평가작업을 끝내기 위해 심사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 과정에서 건설, 조선사들은 퇴출 명단에서 빠지기 위해 은행들을 상대로 `홍보' `읍소' `타사 비방' 등의 방법을 모두 동원하고 있다.
신용위험 평가 결과 부실징후기업(C등급) 판정을 받은 기업은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절차를, 부실기업(D등급)은 퇴출 절차를 각각 밟아야 하기 때문이다.
건설·조선사들은 자신들이 어느 등급으로 분류될지 파악하느라 밤잠을 설치고 있다. 모 건설업체 임원은 "거래 은행에서 우리 업체는 별문제가 없다고 말해 안도했다"면서 "지금 B와 C등급의 경계, C와 D등급의 경계에 놓여 있는 건설사들은 안절부절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대다수 건설,조선사들은 자신들이 직접 평가한 신용위험 평가 결과를 들고 은행 담당자를 찾아가 회사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특히, 비 재무항목 평가 부문이 종합평점의 60%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이 부문의 점수를 높이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모 건설사 재무담당 부장은 "경기가 조금만 풀리면 파도를 넘어갈 수 있다"며 "자체적으로 구조조정을 하고 있고 지금까지 금융기관이 이해해줬으니 조금만 더 지원해달라고 하소연했다"고 전했다.
조선사 구명 운동에는 지방자치단체장까지 나서고 있다.
박준영 전라남도지사는 지난 11일 성명을 내고 "정부 전략산업으로 시작한 신생 중소형 조선사를 퇴출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박 지사는 이어 "2004년 정부 전략산업으로 선정돼 이제 막 시작한 중소 조선사를 퇴출시킨다면 앞으로 누가 정부정책을 믿고 투자하겠느냐"며 조선사 구조조정 에 대해 우려를 표시했다.
일부 업체들은 비방전도 불사하고 있다고 은행들은 전했다. 은행들로서는 일정비율을 퇴출시킬 수밖에 없는 만큼 경쟁기업들이 나쁜 점수를 받으면 자기 기업은 생존이 가능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 은행들 "기업 솎아내기 쉽지 않다"
은행들은 표면적으로는 원칙과 기준에 따라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판단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주거래 업체에 대해 C나 D등급을 매기는데는 난색을 표하고 있다.
C은행 관계자는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말처럼 주채권 은행이 거래 업체에 대해 퇴출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퇴출 결정을 할 경우 은행 수익에도 영향을 미칠 뿐아니라 `제대로된 심사없이 부실업체에 대출을 많이 해줬다'는 내부 비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농협은 주채권은행을 맡은 13개 건설사에 대한 중간 평가 결과 "생각보다 양호한 수준인 것으로 파악됐다"고 말했다. 국민, 신한은행도 "아직 최종 확정되지 않았지만 크게 문제가 있는 기업은 없는 것 같다"고 전했다.
우리은행은 "대형 건설사 12개 중에는 특별히 문제되는 기업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중소 건설사 18개 가운데 절반 이상은 괜찮을 것 같지만 C, D가 몇 개 나올지는 자세히 평가를 해봐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은행들은 주채권은행이 아닌 일부 여신이 있는 부채권 은행에서 이견을 낼 경우 채권조정위원회를 통해 퇴출 여부가 가려질 것으로 전망했다.
은행들은 또 돌발 변수가 많기 때문에 막판까지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또 다른 은행 관계자는 "대다수 은행이 중견 주택건설업체인 유림건설이 지난 8일 법원에 회생절차 개시신청을 내기 전날까지도 눈치를 채지 못했을 정도"라며 "더구나 시공능력 100위까지 건설사들은 상대적으로 큰 기업이다 보니 신중하게 평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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