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일보] 참치를 잡던 기업이 배터리캔을 만들고 수산물을 운송하던 기업이 자동화 항만을 운영한다. 언뜻 보면 연관성 없어 보이는 산업들이 어떻게 하나의 기업에서 이어졌을까.
1969년 원양어선 한 척으로 출발한 동원그룹이 57년 만에 식품·포장재·물류·이차전지 소재를 아우르는 종합생활산업그룹으로 성장했다. 시대가 필요로 하는 시장을 먼저 개척하고 기존 사업에서 쌓은 기술과 역량을 새로운 산업으로 연결해온 결과다.
이 같은 '개척과 연결'의 DNA는 동원그룹을 연매출 10조원 규모의 기업으로 이끌고 있다. 사업지주사 동원산업의 지난해 연결 매출은 9조5837억원으로 전년 대비 7.2% 증가했으며 올해 상반기에도 매출 5조1020억원, 영업이익 2976억원을 기록했다. 참치캔으로 대표되던 식품사업을 넘어 식자재 유통·포장재·물류 등 기업간거래(B2B) 사업이 새로운 성장축으로 자리 잡고 있는 모습이다.
원양어업에서 참치캔·단백질 식품까지…영역 넓힌 동원
22일 업계에 따르면 동원산업은 1969년 김재철 창업주가 자본금 1000만원으로 설립했다. 같은 해 원양어선 '제31동원호'를 앞세워 인도양으로 향했고 1979년에는 헬리콥터를 활용한 선망어업에 진출하는 등 조업 기술을 고도화했다. 국내 연근해를 벗어나 새로운 어장과 어법을 개척한 것이 성장의 출발점이었다.1982년 출시한 '동원참치'는 수산업을 식품사업으로 확장한 전환점이었다. 잡은 참치를 보관과 조리가 편한 통조림으로 만들어 가정에 단백질 공급원을 제공했다. 이후 양반김·리챔·덴마크 등으로 제품군을 확장했고 2008년 미국 참치캔 브랜드 '스타키스트'를 인수해 해외 생산·판매 기반까지 확보했다. 국내 제품 수출에서 나아가 현지 브랜드와 유통망을 직접 운영하는 글로벌 식품기업으로 성장한 것이다.
최근에는 참치 중심에서 종합 단백질 식품으로 확장하고 있다. 동원F&B는 올해 6월 충북 진천에 1400억원을 투입한 제2사업장을 준공하고 어묵·맛살과 가정간편식(HMR) 생산 역량을 강화했다. 원양어업에서 시작한 단백질 공급이 소비 형태에 맞춘 가공식품으로 진화했다.
배터리캔·스마트 항만으로 확장…'체인 이노베이션' 전략
동원그룹의 종합 포장재 계열사인 동원시스템즈는 금속캔과 필름 등 포장재를 제조하다 알루미늄 양극박과 원통형 배터리캔 등 이차전지 소재로 영역을 확장했다. 2012년 대한은박지, 2014년 테크팩솔루션 인수로 확보한 금속 가공·포장 기술이 밑바탕이 됐다.올해 3월에는 코팅 양극박을 선보이는 한편 음료캔 제조에 활용하던 금속 가공 공법을 배터리캔 생산에 적용했다. 기존 식품 포장재 제조기술을 이차전지 부품으로 확대하며 새로운 성장동력 확보에 나선 것이다.
물류사업 역시 기존 역량을 기반으로 확장해왔다. 동원은 수산물 운송 과정에서 축적한 물류 역량을 바탕으로 2017년 동부익스프레스를 인수하며 육상운송과 항만물류사업을 강화했다. 이후 자동화 기술을 접목한 스마트 물류로 사업 영역을 넓혀 2024년 국내 최초 완전 자동화 컨테이너 터미널인 동원글로벌터미널부산(DGT)을 개장했다. DGT는 컨테이너 하역부터 이송·적치까지 자동화 설비를 활용해 물류 처리 효율성을 높인 것이 특징이다.
이 같은 확장은 기존 사업에서 축적한 기술과 역량을 새 산업에 적용하는 '체인 이노베이션(연쇄적 혁신)' 전략으로 설명된다. 동원그룹이 지난해 내건 슬로건 '필요에 답하다' 역시 소비자와 산업이 요구하는 영역에서 성장 기회를 찾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B2B가 이끄는 실적 성장…신사업 수익성이 다음 시험대
사업 다각화는 실적에도 반영됐다. 올해 상반기 동원시스템즈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15.5% 증가했고 동원로엑스도 신규 화주 확보와 운영 효율화에 힘입어 두 자릿수 이익 성장세를 보였다. 반면 동원F&B는 원가 부담 등의 영향으로 영업이익이 7.2% 감소했다. 소비자 식품사업에 더해 B2B가 실적을 뒷받침하는 구조가 뚜렷해지고 있는 양상이다.2022년 동원엔터프라이즈와의 합병으로 사업지주사로 전환한 동원산업은 계열사 간 투자와 사업 연계를 강화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동원F&B를 완전자회사로 편입해 식품사업 통합 운영 기반도 다졌다.
다만 사업 확장이 지속적인 수익성 개선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이차전지 소재는 고객사 품질 인증과 양산, 투자비 회수가 필요하고 자동화 항만은 안정적인 물동량과 설비 가동률 확보가 관건이기 때문이다.
내수 침체와 원재료 가격 부담 속에 기존 식품사업 경쟁력도 지켜야 한다. 여기에 수산사업의 국제 어업 규제와 유가 변동, 해외 식품사업의 현지 경쟁도 변수다. 사업이 늘수록 각기 다른 산업의 시장 변동에 대응하면서 계열사 간 시너지를 실제 수익으로 입증하는 일이 중요해지는 시점이다.
동원그룹은 원양어업을 시작으로 식품·포장재·물류·이차전지 소재까지 사업 영역을 확대하며 성장 기반을 다져왔다. 향후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기존 사업의 경쟁력을 유지하는 동시에 신사업의 수익성을 확보하고 계열사 간 시너지를 강화하는 것이 핵심 과제로 꼽힌다.
동원그룹 관계자는 "동원그룹의 핵심 경쟁력은 본업에서 혁신의 기회를 찾아 신사업으로 연결하는 '체인 이노베이션'에 있다"며 "앞으로도 수산·식품·포장재·물류 등 기존 사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축적된 기술과 역량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연결해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아주경제 2026년 10월 22일자 13면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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