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기록영화 작가 하네다 스미코(羽田澄子)가 올해 100세를 맞이했다. 탄생 100년을 맞아 지난 6월 도쿄 시네마베라 시부야에서 '하네다 스미코 탄생 100년 기념-복지, 예술, 젠더를 통해 일본을 그리다'가 열려 대표작 13편이 상영됐다.
1926년 1월 3일 당시 일본이 조차하고 있던 다롄에서 태어난 그녀는 뤼순에서 소학교와 여학교를 마치고 1942년 도쿄의 자유학원에 진학했다. 자유학원은 일본 여성 기자의 선구자로 꼽히는 하니 모토코가 남편 요시카즈와 함께 1921년 세운 학교다. 뤼순에서 잡지 <부인지우> 독자 모임에 나가던 어머니가 하니의 책을 딸에게 건넨 것이 진학의 계기였다.
1945년 3월 졸업한 그녀는 동원돼 일하던 공장에 남으려 했으나, 하니 요시카즈가 만류해 다롄으로 돌아갔고 그곳에서 일본의 패전을 맞았다. 소련군이 들어오고 일본인 사회가 해체되는 가운데 유일하게 허용된 조직이 일본인노동조합이었다. 그녀는 열아홉에 이 조합의 직장 지부 조직책이 됐고, 1947년부터는 부인부장을 맡았다. 이 시기 그녀를 이끈 사람 가운데 사회주의 연구자 이시도 기요토모가 있었다.
하네다는 1948년 7월 일본으로 귀환했다. 영화계에 들어간 것은 자유학원 은사이자 하니 모토코의 딸인 교육자 하니 세쓰코의 권유 덕이었다. 1950년 이와나미영화제작소 창립과 함께 입사해 하니 세쓰코의 아들인 하니 스스무 등과 <이와나미 사진문고> 편집을 맡았다. 1953년 하니 스스무의 권유로 영화 제작으로 자리를 옮겨, 이듬해 그가 감독한 <교실의 아이들>에서 조감독을 맡았다.
이와나미영화에서 정년퇴직까지 30년을 보냈고, 평생 남긴 기록영화는 80편이 넘는다. 1958년 <고대의 미> 이후에는 병으로 10년 가까이 연출을 쉬다 1967년 <풍속화>로 복귀했다. 정년 후에는 남편인 프로듀서 구도 미쓰루가 이끄는 자유공방에서 작업을 이어갔다.
여성을 다룬 작업은 1957년 감독 데뷔작 <마을의 부인학급>부터 시작됐다. 농촌 여성들이 모여 글을 읽고 토론하는 학습 모임을 담은 이 작품은 하니 스스무의 다이렉트 시네마 기법을 받아들이면서 당시 교육영화의 틀과 타협한 결과물로 평가된다. 하네다는 뒷날 이 작품을 두고 "스물다섯에 영화를 통해 일본 농촌을 들여다봤을 때 나는 거기 들어갈 수 없는 '이방인'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안데르센과 그림 동화를 읽으며 식민지에서 자란 자신은 일본 문화의 전통과 무연했고, 다롄에서 돌아와서야 그 문화를 하나하나 처음 보고 놀랐다는 것이다.
<여자들의 증언-노동운동 속에서 선구적인 여성들>(1996)은 다롄에서 하네다를 이끌었던 이시도가 1982년 연 좌담회를 촬영한 작품이다. 다이쇼에서 쇼와 초기에 걸쳐 사회주의·노동운동에 뛰어들었던 야마우치 미나와 단노 세쓰, 후쿠나가 미사오, 나베야마 우타코, 오타케 히토코 다섯 사람이 참석했다. 촬영은 그해 끝났지만 작품이 완성된 것은 14년 뒤였다.
증언은 러일전쟁 이후 사회주의 운동이 시작되던 때부터 전쟁기에 이르기까지 걸쳐 있다. 가메이도 사건(1923년 간토대지진 직후 노동운동가 학살), 3·15 사건(1928년 공산당원 일제 검거), 전향과 천황제 문제, 조르게 사건(1941년 소련 첩보망 적발)이 차례로 나온다. 평등을 내건 운동 안에서 왜 여성은 가정부 취급을, 때로는 애인 취급을 받으며 활동의 중심에 서지 못했는가. 이시도가 던진 이 질문은 운동 조직 내부의 가부장제를 드러낸다.
<태초에 여성은 태양이었다-히라쓰카 라이초의 생애>(2001)는 일본 여성운동의 출발점을 다뤘다. 제목은 1911년 여성들이 만든 문예지 <세이토>에 히라쓰카 라이초가 쓴 창간사 문장에서 따왔다.
전통 예능과 무용도 여러 편에서 다뤘다. <하야치네의 부>(1982)는 이와테현 두 마을에 중세의 형태로 전해지는 하야치네 가구라(신에게 바치는 춤)를 담았다. 가부키 배우 가타오카 니자에몬을 10시간 46분에 걸친 연작(1992~1994)으로 기록하기도 했다. 마사 그레이엄의 애제자로 꼽히는 현대무용가 아키코 칸다를 따라간 <아키코-어느 댄서의 초상>(1985)은 27년 뒤 <그리고 아키코는…>(2012)으로 이어졌다. 속편은 아키코가 폐암 치료를 받으면서도 무대에 서다 2011년 일흔다섯으로 숨지기까지를 담았다.
1986년부터 20년 동안은 고령사회와 복지를 소재로 일곱 편을 내놨다. 그중 <치매성 노인의 세계>(1986)와 <안심하고 늙기 위하여>(1990), <끝이 좋으면 다 좋다>(2006)는 노인 3부작으로 불린다. <치매성 노인의 세계>는 1983년 제약회사 의뢰로 만든 49분짜리 학술영화에서 출발했다. 구마모토의 의료시설에서 치매 환자들의 생활을 기록한 이 작품은 고정관념을 깨뜨렸다는 평가와 함께 6년 동안 30만 명 넘는 관객을 모았다. <안심하고 늙기 위하여>는 기후현 이케다정의 노인요양시설 '선빌리지 신세이엔'을 취재하면서 덴마크와 스웨덴, 호주의 사례를 함께 담아 그해 야마지 후미코 영화상 복지상을 받았다.
일곱 편 가운데 넷은 아키타현 다카스정의 복지 행정을 쫓은 연작(1997~2006)이다. 젊은 지자체장이 밀어붙인 노인복지시설 구상이 한 표 차로 통과되는 데서 시작해, 단체장이 바뀐 뒤 그 시설이 정쟁에 휘말려 망가지기까지를 따라갔다. 기록영화 네 편이 한 지자체의 행정을 움직인 드문 사례로 꼽힌다. 고령사회를 다루면서 책도 함께 냈는데, 치매 진단 척도를 만든 의사 하세가와 가즈오와 1984년 <고령화사회의 건강문제>를 펴냈고 영화 <안심하고 늙기 위하여>와 <끝이 좋으면 다 좋다>는 동명의 책으로도 나왔다.
80대에 접어든 하네다는 자신이 태어난 땅으로 돌아간다. <아아 만몽개척단>(2008)은 국책으로 만주에 보내진 일본인 이민의 최후를 쫓는다. 일본이 패전할 때까지 약 27만 명이 건너갔고 그중 8만 명가량이 돌아오지 못한 채 죽었다. 영화는 법정에서 청구가 기각되는 장면으로 시작해 중국인들이 세운 팡정(方正) 지구 일본인 공동묘지를 찾는 성묘단을 따라간다. 패전이 결정되자 먼저 열차로 빠져나간 것은 간부 군인과 그 가족이었고, 열차에 오르지 못한 민간인들은 걸어서 피난했다. 이 작품은 2008년 키네마 준보 문화영화 베스트텐 1위에 올랐다.
3년 뒤 <머나먼 고향 뤼순·다롄>(2011)에서 하네다는 자신의 고향을 찍었다. 뤼순은 중국의 주요 군항이라 중일 국교 회복 뒤에도 일본인 왕래가 어려웠고, 2009년 전면 개방된 뒤에야 그녀는 일본인 단체 여행에 끼어 당시 모습 그대로 남아 있는 옛집을 찾아갔다. 일본 국립영화아카이브는 이 작품을 제정 러시아의 자취가 남은 '그리운 고향'을 찾아간 여정인 동시에, 통치자의 교체가 남긴 복잡한 역사와 마주하고 발전한 현재의 중국을 목격하는 과정으로 설명한다.
1985년 시작돼 2012년 25회로 막을 내린 도쿄국제여성영화제에서는 집행위원을 맡았다. 첫해 상영작이 그녀의 <아키코-어느 댄서의 초상>(1985)이었고, 이후 작품 20편이 이 영화제에 걸렸다. 2008년에는 <아아 만몽개척단>이 개막작이었다.
그녀는 1982년 문부대신상(예술 분야 우수 업적), 1988년 자수포장(학술·예술 공로자에게 주는 일본 정부 포장), 1998년 가와키타상을 받았고 1999년에는 마이니치영화콩쿠르에 입상했다. 2016년 8월에는 도쿄국립근대미술관 필름센터가 '기록영화 작가 하네다 스미코'라는 제목으로 26편을 모은 특집을 열었다.
국내에서는 2021년 1~2월 시네마테크KOFA에서 열린 제9회 재팬 파운데이션 무비 페스티벌 '여성의 입장에서 여성을 그린다'에 <아키코-어느 댄서의 초상>과 <그리고 아키코는…>이 걸렸고, 8월 제23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여자들의 증언>을 상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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