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대일 요구가 엔저 문제를 넘어 금융·재정정책으로까지 확대되면서 다카이치 사나에 정권이 최근 '탈(脫)리플레이션'을 잇달아 강조하고 나섰다. 리플레는 금융완화와 재정지출 등을 통해 물가와 경기를 끌어올리는 정책을 의미하는 것으로, 다카이치 정권은 리플레 정책과 선을 그으며 미국의 공세를 피하려 한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이 2일 분석했다.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은 지난달 1일(현지시간) 일본이 "리플레 정책을 중단해야 한다"면서 가타야마 사쓰키 재무상과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BOJ) 총재에게 엔저가 일본 내 인플레이션 압력을 높이고 있다는 인식을 전달했다. 일본 금융·재정정책의 전환을 요구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도 지난달 22일 미일 정상회담에서 다카이치 총리에게 엔화 약세에 대한 우려를 직접 전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당시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엔저로 인해 미국의 무역이 어렵다"는 말을 들었고, 자신은 원론적인 차원에서 "엔화 저평가는 문제"라고 답했다고 25일 밝혔다. 닛케이는 미일 정상이 정상회담에서 환율 수준을 논의한 것은 이례적이라고 평가했다.
다카이치 정권의 '책임 있는 적극재정'을 주도하고 있는 기우치 미노루 경제재정상도 지난달 25일 "금융을 계속 완화하고 재정도 기동적으로 운용하는 아베노믹스적인 리플레 정책의 국면은 끝났다"고 말했다. 닛케이는 기우치 경제재정상이 그동안 책임 있는 적극재정과 리플레 정책은 다르다고 설명하는 데 그쳤지만, 미일 정상회담 이후 한 발 더 나아갔다고 해석했다.
다만 다카이치 총리 자신은 미국의 문제 제기에 불만도 드러냈다. 닛케이에 따르면 다카이치 총리는 미일 정상회담을 마친 뒤 주변에 "왜 미국으로부터 우려를 들어야 하는가"라고 말했다. 전날인 1일 니혼TV 인터뷰에서도 "경제·재정 운영은 환율 유도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환율은 여러 요인에 따라 시장에서 결정되며, 일본 경제의 국제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엔화에 대한 신뢰 유지로도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미국, 대일 압박 지속 가능성
하지만 앞으로도 엔화 약세가 이어질 가능성이 있는 만큼 '탈리플레'를 강조하는 것만으로 미국의 요구가 잦아들지는 불투명하다고 닛케이는 짚었다. 미국은 과거에도 일본의 경제정책을 둘러싸고 말이 아니라 실제 정책 변화를 요구해왔기 때문이다.
미국의 대일 경제 압박은 1970년대 일본의 대미 수출이 크게 늘면서 시작됐다. 1985년에는 미국의 무역·경상수지 적자를 배경으로 주요 5개국(G5)이 달러 강세를 시정하기로 한 플라자합의가 이뤄졌고, 이후 엔·달러 환율이 급락(엔화 가치 급등)했다. 미국은 이후에도 일본에 내수 확대와 시장 개방을 요구했다.
트럼프 1기 행정부도 고율 관세를 지렛대로 일본에 대미 무역흑자 축소를 압박했고, 일본은 2020년 발효된 미일 무역협정에서 농산물 등의 관세를 낮췄다. 2기 행정부에서도 상호관세와 자동차 관세 등을 앞세워 일본에 대미 투자와 미국산 제품 구매를 요구했다.
최근에는 압박의 대상이 무역을 넘어 일본의 금융·재정정책으로 넓어지고 있다. 과거 미국이 일본에 내수 확대를 요구했던 것과 달리 지금은 인플레이션을 막고 국채시장에 미칠 악영향을 피하기 위해 금리 인상과 재정규율 확보를 촉구하고 있다는 것이 닛케이의 분석이다.
이토 모토시게 도쿄대 명예교수는 닛케이에 "일본의 금융정책은 실질금리 기준으로 보면 아직 긴축적이지 않다"며 앞으로도 엔저가 진행된다면 미일 간 논쟁이 더 거세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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