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 비무장지대(DMZ) 지뢰 폭발 사고를 놓고 정부 부처별 상황 인식과 대응 기조가 엇갈리고 있다. 군 당국은 북한의 책임 규명을 전면에 내세웠지만, 국가정보원은 북한 측 담화의 대응 수위를 낮게 평가했다. 통일부는 남북관계 관리와 평화공존 기조 유지에 무게를 두고 수위 조절에 고심하는 분위기다.
책임 소재와 위협 수위에 대한 판단이 기관마다 엇갈릴 경우 정부의 대응 방향이 불분명해지고 대외적으로도 혼선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 차원의 공통된 상황 인식과 대응 원칙을 정리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다.
1일 통일부에 따르면 유럽 출장에 나섰던 정동영 장관은 이날 오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조기 귀국했다. 정 장관은 당초 오는 5일까지 영국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 독일을 방문할 계획이었지만, 아일랜드 고위급 면담과 독일 통일 기념식 참석을 취소하고 귀국 일정을 나흘 앞당겼다.
유엔군사령부가 합동조사 결과를 토대로 정전협정 위반이 발생했다고 규정하고, 김여정 북한 노동당 총무부장도 전날 담화에서 실사격 시 보복까지 거론하는 등 군사적 긴장이 고조된 점도 조기 귀국 결정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통일부 당국자는 이날 귀국 배경에 대해 “군 당국의 현장조사 결과와 김여정 부장 담화로 상황이 빠르게 전개된 만큼, 평화공존 정책 기조에 따른 남북관계 상황 관리와 대응이 중요한 시기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정 장관의 조기 귀국은 김 부장 담화가 나온 뒤 현지에서 결정된 것으로 전해졌다.
정 장관은 귀국 후 관련 상황을 보고받고 관계부처와 후속 대응 방향을 논의할 전망이다. 다만 통일부는 북한의 책임을 전면에 세우기보다는 관계부처 협의를 통해 재발 방지책을 마련하고, 남북관계가 추가로 악화하지 않도록 상황을 관리하는 데 무게를 둘 것으로 보인다.
앞서 김 부장은 전날 공개된 담화에서 이번 사고를 2015년 목함지뢰 사건을 되풀이한 ‘자작극’으로 규정했다. 북한군은 군사분계선(MDL)을 넘은 적이 없고 국경 요새화 작업은 정당한 주권 행사라고 주장했다.
통일부는 김 부장 담화에 대해서도 “이번과 같은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관계부처와 필요한 조치를 강구하겠다”면서도 “한반도 평화공존 정책은 흔들림 없이 추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군은 책임 규명을, 통일부는 남북관계와 긴장 관리를 우선하는 만큼 이 같은 온도차는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앞서 정 장관은 귀국길에 올린 SNS 글에서도 “이번 사고가 한반도 평화를 향한 우리의 노력을 폄훼하거나 왜곡하는 빌미가 돼서는 안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번 사고를 정치적 다툼에 소모하기보다 비극의 재발을 막을 근본적인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15년 목함지뢰 사건 당시 정부는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하는 등 군사적 압박에 나서는 한편, 판문점 고위급 접촉을 통해 ‘8·25 합의’라는 출구를 마련했다. 반면 지금은 남북 군 통신선과 연락 채널이 모두 끊겨 북한에 정부의 의도를 직접 전달하거나 긴장을 관리할 수단이 마땅치 않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 내 상황 평가와 대응 수위마저 엇갈릴 경우, 대내외적으로 혼선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 내 대북정책 조율 부족이 공개적으로 드러난 전례도 있다. 지난 8월 정 장관이 남북미중 4자 대화와 ‘페이스메이커 플러스’ 구상을 제시하자 조현 외교부 장관은 “아직 조율되지 않은 방법”이라며 선을 그었다. 이재명 대통령도 업무보고에서 발표했다고 정부안으로 승인된 것은 아니라고 지적하면서 외교·안보 라인의 사전 조율 부족이 도마에 올랐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부의 대처가 국민 정서와 동떨어져 있다”고 비판하며, 정부가 이번 사건에 대한 보다 선명한 입장과 구체적인 대응책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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