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아시안게임 여자 크리켓 8강 방글라데시-중국전은 경기장에 물이 고이면서 공 한 번 던져보지 못한 채 취소됐다. 세계랭킹 42위로 10위 방글라데시에 밀려 자동 탈락한 중국 대표팀 주장은 소식을 듣고 눈물을 흘렸다. 12년 만에 아시안게임에 복귀해 치른 이번 대회 첫 경기였다.
28~29일에는 일본 아이치현 고로기 체육공원에서 열릴 예정이던 남자부 8강 4경기 전부가 이틀 연속 비로 취소됐다. 이 경기장은 원래 야구장을 개조해 만든 곳으로, 배수 문제까지 겹쳐 그라운드가 쉽게 마르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예비일이 없어 인도·파키스탄·스리랑카·방글라데시는 랭킹만으로 4강에 올랐고, 아프가니스탄·홍콩·네팔·말레이시아는 조별리그를 통과하고도 8강에서 경기 한 번 없이 탈락했다.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2023년 개최) 남자 결승에서도 똑같은 방식으로 인도가 금메달을 가져갔다. 크리켓에서 날씨가 승부를 대신 정한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얘기다.
크리켓만의 일도 아니었다. 이번 대회 야구 규정 역시 "슈퍼라운드나 결승전이 우천으로 중단돼 완료할 수 없으면 남은 경기만이라도 진행해 우승팀을 가린다"고만 돼 있을 뿐 구체적 기준은 명시하지 않았다. 한국이 일본에 0-5로 진 뒤 중국과의 슈퍼라운드 2차전을 앞둔 지난 26일, 우천취소 시 슈퍼라운드 성적으로 은메달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가 국내에서 나왔지만 조직위는 구체적 기준을 공식 통보하지 않은 상태였다. 다행히 경기는 예정대로 열렸고, 한국은 27일 일본을 3-1로 꺾고 5회 연속 금메달을 땄다.
다른 국제대회들은 이런 상황에 다르게 대응해왔다. 크리켓 자체 최고 권위 대회인 월드컵조차 남은 오버 수로 목표 점수를 다시 계산하는 '더크워스-루이스-스턴' 방식을 쓰고, 토너먼트 단계엔 예비일도 둔다. 2019년 럭비월드컵은 태풍으로 경기가 취소되자 사전 공지된 대로 무승부 처리했다. 올해 2월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스키점프도 폭설로 경기가 중단되자, 랭킹이 아니라 그때까지 뛴 라운드의 실제 점수로 메달을 갈랐다.
개막을 열흘 앞둔 9월 8일, 나고야에는 시간당 104.5mm의 비가 쏟아졌다. 1890년 관측을 시작한 이래 가장 많은 시간당 강수량이었다. 그런데도 크리켓과 야구 일정에는 예비일이 없었다.
문제는 크리켓·야구의 예비일 부재만이 아니었다. 이번 아시안게임은 선수촌을 새로 짓지 않고 버스 배차마저 거듭 꼬이는 등 곳곳에서 총체적인 부실 운영 논란에 휩싸였다.
다음 달 1일 열리는 남자 크리켓 준결승에서는 인도-스리랑카, 파키스탄-방글라데시가 맞붙는다. 10월 3일 결승전이 비로 열리지 못할 경우, 두 팀에 공동 금메달이 수여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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