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중동과 미국에서 거물급 인사의 부고가 잇따라 전해졌다. 한 사람은 셰이크 하마드 빈 칼리파 알사니 전 카타르 군주(에미르)이고, 다른 한 사람은 린지 그레이엄 전 미국 연방 상원의원이다. 두 사람 모두 최근 중동 정세와 깊은 관계가 있는 인물인 만큼 이들의 부고 또한 집중 조명을 받았다.
하마드 전 군주는 카타르를 세계 최대 액화천연가스(LNG) 강국 중 하나로 성장시킨 인물로, 외교 측면에서도 여타 중동 국가들과 다른 행보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 그는 미국 등 서방과 긴밀한 안보 협력을 유지하는 한편 이스라엘 및 이란과의 관계도 꾸준히 관리하며 중동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 힘썼고, 하마스와 탈레반 등 서방과 대립하는 세력과도 대화 창구를 열어두며 갈등을 중재하는 데 주력했다. 이 같은 외교 노선을 이어받은 카타르는 최근 미국과 이란의 무력 충돌 국면에서도 양국 간 중재를 맡으며 긴장 완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였고, 국제사회 역시 카타르의 중재 역할을 높이 평가했다.
물론 이 같은 중립 노선이 지난 2017년 중동 국가들의 카타르 단교 사태에 원인을 제공했다는 평가도 있지만, 그럼에도 중재와 외교에 의한 평화를 추구한 그는 중동의 소국인 카타르를 국제 외교 무대의 중심으로 올려놓는 데 혁혁한 역할을 했다.
반면 그레이엄 전 의원은 미국 정가를 대표하는 강경파 정치인이었다. 그는 강력한 군사력을 통한 억지력을 일관되게 주장했고, 이란과 러시아 및 북한 등 권위주의 정권들을 상대로 단호한 대응을 추구했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이란 공습을 촉구한 것으로 알려진 그의 철학은 협상보다 힘을 통한 평화였다.
하지만 작금의 중동 정세는 아직 이 두 인물이 꿈꾸던 세상 어느 쪽에도 도달하지 못했다. 미국 최대 해외 공군기지인 알우데이드 공군기지를 보유한 카타르는 이번 전쟁에서 이란의 보복 공격을 받으며 중재국도 전쟁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현실을 보여줬다.
미국 역시 군사력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기대가 현실과 다르다는 것을 경험하고 있다. 이란 정권이 곧 무너질 것이라는 낙관론 속에 전쟁을 시작했건만, 4개월 반이 지난 지금까지도 분쟁은 종식되지 않았고 오히려 전쟁 재개 위험 가능성이 높아진 상태다. 여기에 전쟁 발발 후 급등한 국제유가는 물가를 자극하며 미국 경제와 트럼프 행정부의 목줄을 죄고 있다. 강한 군사력이 전장을 장악할 수는 있어도 정치적 해법까지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결국 이번 중동 전쟁이 던지는 교훈은 비둘기파와 매파 가운데 어느 한쪽이 정답이라는 것이 아니다. 대화와 중재만으로는 침략과 도발을 막기 어렵고, 군사력만으로는 지속 가능한 평화를 만들 수 없다. 필요한 것은 상황에 따라 억지력과 협상을 유연하게 조합하는 실용주의적 외교다.
이 같은 교훈은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히 중국, 러시아와 일본 및 북한 등 주변에 강경파 정권이 득세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첨단산업과 한미동맹 등 경제·군사적 자산을 기반으로 한 확고한 안보를 유지하면서도 갈등을 조정하고 협력을 확대할 수 있는 외교적 공간도 넓혀야 한다. 미중 경쟁과 중동, 북핵 및 공급망 문제까지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상황에서 어느 때보다도 국익을 중심에 둔 균형 있는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비둘기와 매파를 상징했던 두 거물의 퇴장은 국제정치의 한 페이지가 지나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들이 남긴 큰 유산은 어느 한 노선의 승리가 아니라 힘과 대화, 원칙과 유연성을 함께 갖춘 외교만이 복합 위기의 시대를 헤쳐 나갈 수 있다는 사실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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