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AI·경영 융합 분야의 권위자인 강시철 박사와 국내 최대·최고의 공공병원인 서울의료원을 이끄는 이현석 원장이 함께 썼다. 30여 년간 인터넷과 사물인터넷, 인공지능의 산업 전환을 최전선에서 지켜본 전략가의 통찰과, 흉부외과 전문의이자 공공의료 경영자로서 병상과 응급실의 현실을 매일 마주하는 현장 리더의 경험이 한 권 안에서 만났다. 이론과 현장, 기술과 임상이라는 좀처럼 포개지기 어려운 두 세계가 처음으로 같은 언어로 이야기를 시작한 셈이다.
왜 지금, ‘병원 경영’에 AI인가
배경에는 한국 병원들이 처한 절박한 현실이 있다. 건강보험 수가의 제약과 고가 장비 투자, 전문 인력 확보 비용은 갈수록 수익 구조를 압박한다. 외래 대기 시간과 수술실 가동률, 재고와 행정 절차에 쌓인 비효율은 환자 불만을 키우고 병원 전체의 생산성을 갉아먹는다. 저자들은 경험과 직관에 의존해 온 전통적 경영 방식만으로는 이 복잡성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다고 진단한다. 책이 던지는 메시지는 단호하다. AI 병원 경영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막연한 장밋빛 전망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실패의 교훈에서 출발한다. 한때 의료 AI의 상징이던 IBM ‘닥터 왓슨’이 임상 현장에서 기대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한 까닭을, 저자들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AI가 발 디딜 ‘토양’, 곧 통합되고 정제된 데이터 체계의 부재에서 찾는다. 화려한 알고리즘보다 그것이 자랄 땅을 먼저 일구라는 조언은, 수많은 병원이 빠지기 쉬운 환상에 대한 현실적 처방이다.
숫자로 증명되는 변화의 현장
경영의 언어로도 성과는 또렷하다. 미국의 한 대형 병원은 AI 기반 수익 주기 관리로 청구 오류를 사전에 걸러내고 미수금 회수를 자동화해 수백만 달러의 순수익을 추가로 확보했다. 또 다른 대학병원은 시술과 약품, 재료에 이르는 진료 원가를 거의 실시간으로 추적해, 같은 수술이라도 의사와 재료에 따라 달라지는 비용 차이를 데이터로 드러냈다. 진료 행위 하나하나가 곧 경영의 데이터가 되는 시대를 책은 생생하게 보여 준다.
저자들이 미래의 핵심으로 지목하는 개념은 ‘디지털 트윈’이다. 기존 시스템을 갈아엎는 대신 그 위에 데이터를 연결하는 층을 얹어, 환자와 의사, 병상과 약물, 검사를 하나의 의미망으로 묶어 병원 전체를 디지털로 복제한다는 구상이다. 파편화된 솔루션의 한계를 넘어 병원이라는 복잡계를 통째로 조망하려는 이 발상은, AI 병원 경영이 도달할 다음 지평을 가리킨다.
공공의료의 시선이 더한 균형
이 책이 여느 기술서와 구별되는 또 하나의 지점은 공공병원 경영자의 시선이다. 예산 제약 탓에 중소기업 솔루션을 택할 수밖에 없는 공공병원이 개발사의 부도로 유지보수에 어려움을 겪는 현실, 보안과 데이터 교환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야 하는 딜레마처럼, 한국 의료 현장의 구체적 고민이 곳곳에 녹아 있다. 기술의 가능성을 노래하면서도 책임 소재와 알고리즘 편향, 환자 데이터의 보호라는 윤리적·법적 과제를 끝까지 놓지 않는 균형 감각은, 생명을 다루는 조직을 경영해 본 사람만이 지닐 수 있는 무게다.
『AI 병원 경영학』은 실시간 재정 모니터링부터 전략적 자원 배분, 운영 효율 극대화,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 정보 접근성 혁신, 예측적 분석, 환자 경험 최적화, 의료 품질과 안전, 인력 관리에 이르기까지 병원 경영의 핵심 영역을 빠짐없이 짚는다. 각 장은 전통적 문제를 진단하고, AI가 그것을 어떻게 푸는지 설명한 뒤, 실제 성과로 마무리되는 일관된 흐름을 따른다. 개념의 이해를 넘어 ‘무엇을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라는 실무자의 질문에 답하려는 설계다.
“AI는 병원이 복잡성을 다스리고 비효율을 걷어 내며, 미래를 예측해 먼저 움직이도록 돕는 가장 강력한 도구다. 우리가 묻고 싶은 것은 도입 여부가 아니라, 어떻게 사람과 데이터와 문화를 함께 바꿀 것인가이다.”
— 저자 강시철·이현석, 서문 중에서
저자들은 책을 이렇게 매듭짓는다. AI가 제시하는 기회를 포착하고 도전 과제를 현명하게 넘어설 때, 한국의 병원들이 미래 의료 환경에서 선도적 역할을 맡고 환자와 의료진 모두에게 더 큰 가치를 안길 수 있으리라는 기대다. 병원 경영의 길목에 선 모든 이에게, 이 책은 한 번은 반드시 펼쳐 보아야 할 지도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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