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ABC 대한민국 리더에게 듣는다-신봉길 전 주인도대사] "인도는 생산기지이자 시장, 그리고 한국의 전략 파트너"

한국 외교의 지도가 바뀌고 있다. 과거 한국 외교는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이른바 ‘4강 외교’의 틀에서 움직였다. 분단국가라는 지정학적 현실, 한미동맹, 대중 경제의존, 한일관계의 역사문제, 러시아와의 북방외교가 한국 외교의 주요 좌표였다. 그러나 지금 국제질서는 그 틀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미·중 전략 경쟁은 장기화됐고, 공급망은 안보의 언어로 재편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전쟁은 세계를 다시 불확실성의 시대로 밀어 넣고 있다.
 

이 혼돈 속에서 인도가 새로운 외교·경제·전략의 축으로 떠오르고 있다. 인도는 세계 최대 인구 대국이자 빠르게 성장하는 경제 대국이다. 동시에 미국과 중국 어느 한쪽에 완전히 종속되지 않고 독자 외교노선을 유지하는 글로벌 사우스의 대표 국가다. 한국 기업에는 생산기지이자 거대한 소비시장이고, 한국 외교에는 미·중·일 사이에서 운신의 폭을 넓히는 전략적 지렛대다.


신봉길 전 주인도대사는 지금 한국 외교가 “4강 외교를 넘어 인도를 포함한 5강 외교로 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40년 가까이 외교 현장을 지킨 대표적 현장형 외교관이다. 주인도대사를 지냈고, 한·중·일 3국협력사무국 초대 사무총장도 맡았다. 현재는 한인도미래협회장으로 활동하며 한·인도 관계의 전략적 확장을 강조하고 있다.


신 전 대사는 인도를 단순한 ‘포스트 차이나’로만 보지 않는다. 인도는 중국을 대체할 수 있는 생산기지이면서도 중국과는 전혀 다른 정치·경제·외교 문법을 가진 독자적 문명국가다. 그는 “인도는 쉬운 나라가 아니다”라고 했다. 규제는 복잡하고, 주별 행정은 다르며, 인허가와 노동 문제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다음은 인도”라고 단언한다. 어렵기 때문에 더 준비해야 하고, 복잡하기 때문에 더 빨리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다음은 신봉길 전 대사와의 일문일답이다.
 

신봉길 전 주인도대사 사진아주ABC방송 화면캡쳐
신봉길 전 주인도대사 [사진=아주ABC방송 화면캡쳐]

“지금은 대혼란의 시대, 인도의 존재감이 커지고 있다”

- 40년 가까이 외교 현장을 지켜봤다. 지금의 국제질서를 어떻게 정의하나.

“지금 질서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무질서의 질서라고 할까, 저는 대혼란의 시대라고 말하고 싶다. 기본적으로 지금까지 국제질서를 유지해온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무너지는 과정에 있다. 새로운 질서는 아직 태동하지 않았고, 과거의 질서는 무너져 가고 있다. 이런 시대가 가장 위험한 시대다.

그동안 미국과 서방이 세계를 주도했다. 자유민주주의, 자유경제, 자유무역, 인권 같은 가치에 기반한 국제질서였다. 그 질서가 절정에 달했던 때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소련이 붕괴하던 시기였다고 본다. 프랜시스 후쿠야마 교수가 ‘역사의 종언’을 말했던 시기다.

그런데 그 질서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아랍의 봄, 난민과 이주민 문제, 그리고 트럼프 정부 이후 미국이 스스로 만들어온 질서를 흔드는 모습까지 이어졌다. 미국이 시작해서 미국으로 끝나가는 국제질서라고도 볼 수 있다.”


- 그런 변화 속에서 인도의 의미는 무엇인가.

“최근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라이시나 다이얼로그에 다녀왔다. 120개국에서 3000명 정도의 국제정치학자, 외교관, 전문가들이 모였다. 그 자리에서 인도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그 포럼에서 핀란드 대통령 알렉산더 스투브가 기조연설을 했다. 미국과 서방이 주도한 국제질서가 무너져 가고 있고, 앞으로의 국제질서는 인도가 주도하는 글로벌 사우스가 더 큰 역할을 할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글로벌 사우스라는 흐름은 과거 비동맹에서 출발했다고 볼 수 있다. 인도의 네루 수상 같은 사람들이 주도했던 비동맹운동의 핵심 이념은 평화공존이었다. 이제 어느 한 국가나 하나의 가치가 세계를 주도하는 질서에서 벗어나, 각자의 가치와 이념을 존중하면서 공존하는 다극화된 질서로 가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


“한국 외교, 이제 4강 넘어 인도 포함한 5강 외교로 가야 한다”

- 한국 외교의 현재 위치를 어떻게 보나.

“한국의 종합국력을 이야기할 때 세계 5위나 6위 정도로 평가하는 경우가 있다. GDP, 군사력, 인구, 문화 등을 종합해서 보는 것이다. 저는 한국이라는 나라의 위치가 이제 그 정도까지 왔다고 생각한다. 슈퍼파워는 아니지만 메이저 파워의 위치에 왔다.

그런데 외교는 아직 그 국력에 걸맞게 준비되지 못한 측면이 있다.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지정학적으로 한국이 이른바 4강에 둘러싸여 있어 운신의 폭이 좁았다는 점이다. 둘째는 그런 속에서 한국 외교가 거의 미국에 의존하는 대미외교 중심으로 운영돼 왔다는 점이다. 어떻게 보면 종속됐다고 할 수밖에 없는 외교를 해온 측면이 있다.”


- 그래서 인도가 중요하다는 뜻인가.

“그렇다. 인도 방문은 한두 마디로 말하면 5강 외교를 하러 가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 지역 외교는 압도적으로 4강 외교였다.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중심이었다. 그런데 이제 인도가 국제정치적으로 그만큼 중요한 나라가 됐다. 인도를 포함한 5강 외교라는 말이 필요하다.

또 하나는 경제적으로 보면 G3 외교를 하러 가는 의미도 있다. 인도는 경제적으로 빠르게 떠오르고 있다. 앞으로 세계 경제에서 더 큰 위치로 올라설 가능성이 크다. 그만큼 인도는 경제외교와 투자외교의 중요한 상대가 됐다.”


- 기존 4강 외교와 인도 외교는 어떻게 다른가.

“인도는 미국과 가깝지만 미국의 하위 파트너가 아니다. 중국과 경쟁하지만 중국과 완전히 단절하지도 않는다. 러시아와도 독자적인 관계를 유지한다. 이런 나라와 좋은 관계를 갖는다는 것은 한국 외교의 선택지를 넓히는 일이다.

인도와의 관계를 강화한다는 것은 글로벌 사우스와의 관계를 강화하는 것이기도 하다. 글로벌 사우스 범주에 들어가는 나라가 120개국 정도 된다고 본다. 국제정치에서 엄청난 역할을 할 수 있는 세력이다. 인도와 좋은 관계를 가지고 있으면 미·중·일 관계에서도 하나의 레버리지가 된다.”


“인도 순방은 한·인도 관계의 재발진이다”

- 이재명 대통령의 인도 방문은 어떤 의미가 있나.

“제가 문재인 정부 때 인도대사를 했다. 당시 한·인도 관계는 상당히 좋았다. 신남방정책을 통해 한국 정부가 인도에 공을 많이 들였고, 인도도 한국과의 관계를 강화하려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후 여러 정치적 이슈가 생기면서 양국 관계가 다소 얼어붙은 측면이 있었다. 적극적인 외교를 하기가 어려웠고, 한·인도 관계가 정치적으로는 저점을 지나가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속에서 한국 대통령이 인도를 방문한 것은 한·인도 관계를 다시 출발시키는 의미가 있다. 저는 그것을 ‘재발진’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차를 타고 가다가 다시 시동을 거는 것처럼 한·인도 관계를 재발전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


- 한·인도 관계는 역사적으로도 밀접하다. 인도도 알고 있나. 

“그렇다. 제가 인도대사로 있을 때 한국 역사는 인도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거의 한 줄도 없었다. 반면 일본과 중국은 각각 6페이지씩 들어가 있었다. 물론 중국과 일본은 인도와 역사적 관계가 더 깊었지만, 한국도 인도와 중요한 관계를 갖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한국 역사가 일본, 중국과 같은 분량으로 6페이지 실리게 됐다. 김수로왕과 허황후 이야기, 한국의 역사와 현재 위치가 소개됐다. 이것은 양국 관계에서 상징성이 큰 일이다.

모디 총리가 방한했을 때도 한국 국민의 10%는 우리 친척이라는 취지의 이야기를 했다. 김수로왕과 허황후의 후손이라는 상징을 강조한 것이다. 이런 역사적 상징은 외교에서 매우 중요하다. 인도는 문명적 자부심이 강한 나라다. 단순히 시장 규모만 보고 접근해서는 안 된다.”


“인도는 생산기지이자 시장, 그리고 전략 파트너다”

- 대사님은 인도를 생산기지이자 시장, 전략 파트너라고 설명했다. 어떤 뜻인가.

“생산기지와 시장이라는 것은 인도의 어마어마한 노동력과 거대한 인구가 받쳐주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이런 조건을 가진 나라는 사실상 인도밖에 없다.

전략적 파트너라는 것은 그만한 덩치와 두뇌가 있어야 가능하다. 인도는 한국이 새로운 프런티어로 생각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나라다. 그동안 한국에는 중국이 전략적 파트너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제 중국에서 나오는 상황이 되고 있다. 다음은 인도라고 볼 수 있다.”


- 한국 기업 입장에서 인도 시장은 왜 중요한가.

“현대자동차가 인도에서 기업공개를 했다. 주식 일부를 팔아 몇 조 원 규모의 자금을 조달했다. LG도 비슷한 흐름이 있다. 자기 기업의 일부 지분을 팔아 수조 원 규모의 돈을 모을 수 있는 시장이 지금 인도 말고 어디에 있겠나. 그 자체가 대단한 것이다.

인도는 단순히 물건을 만들어 수출하는 곳만이 아니다. 현지에서 생산하고, 현지에서 팔고, 현지 자본시장을 활용하고, 현지 기업과 기술 협력을 할 수 있는 나라다. 그래서 전략 파트너라고 하는 것이다.”


- 중국, 베트남과 비교하면 인도는 어떤 위치인가.

“한국 기업들은 오랫동안 중국을 바라봤고, 이후 베트남도 바라봤다. 그런데 이제 투자선 다변화가 필요하다. 중국은 여러 지정학적 리스크가 커졌고, 베트남은 중요한 생산기지이지만 규모의 한계가 있다. 인도는 다르다. 어렵지만 규모가 크고, 잠재력이 크고, 전략적 의미도 크다.

인도는 단순히 중국을 대체하는 나라가 아니다. 중국과는 다른 문법을 가진 나라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 기업과 정부가 인도를 제대로 이해하고 장기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지난달 21일 인도 뉴델리 주인도한국문화원에서 한국과 인도의 영화산업 주요 인사들을 만나 양국 영화산업 교류 활성화 방안을 논의하고 기념 촬영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지난달 21일 인도 뉴델리 주인도한국문화원에서 한국과 인도의 영화산업 주요 인사들을 만나 양국 영화산업 교류 활성화 방안을 논의하고 기념 촬영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포스트 차이나, 당장은 무리지만 중장기적으로는 맞다”

- 인도를 ‘포스트 차이나’라고 부르는 시각이 많다. 실제로 가능하다고 보나.

“중장기적으로는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인도의 인구, 잠재 GDP, 7~8%대 성장 가능성을 보면 포스트 차이나라는 표현이 가능하다. 세계에서 그런 성장 가능성을 가진 대규모 국가는 인도밖에 없다고 봐도 된다.

다만 당장 중국과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인프라, 고속도로, 전철, 항만 같은 면에서 아직 중국과 차이가 크다. 제조업 경쟁력도 그렇다. 인도는 싼 노동력과 거대한 인구를 갖고 있지만, 중국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어마어마한 제조업 경쟁력을 갖추었다. 인도는 아직 그 단계까지는 아니다.

하지만 모디 총리의 강한 리더십 아래 인도는 경제발전을 국가 비전으로 삼고 있다. 그런 점에서 중장기적으로 포스트 차이나라고 말할 수 있다.”


- 한국 기업들은 인도를 어떻게 봐야 하나.

“중국처럼 보면 안 된다. 중국은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 아래 인프라를 빠르게 깔고 제조업 생태계를 집중적으로 키웠다. 인도는 민주주의와 연방제, 다양한 언어와 종교, 주별 차이를 가진 나라다. 의사결정은 느릴 수 있고, 규제는 복잡할 수 있다.

그러나 인도에는 거대한 내수시장, 영어 사용 인력, 소프트웨어 역량, 젊은 인구, 글로벌 사우스 대표성이라는 강점이 있다. 한국 기업들은 인도를 하나의 추상적 시장으로 보지 말고, 주와 도시, 산업별 생태계로 나누어 봐야 한다.”



“인도는 바뀌고 있다…공항과 거리에서 변화가 보인다”

- 인도를 자주 방문했다. 갈 때마다 변화가 느껴지나.

“느낀다. 최근 라이시나 다이얼로그 참석을 위해 뉴델리에 갔다. 공항에 도착하니 인디라 간디 국제공항이 예전보다 훨씬 깨끗해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공항에서 호텔까지 가는 길에도 쓰레기가 잘 보이지 않았다. 예전에는 조금 어수선한 면이 있었는데 그런 점이 달라졌다.

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 단계 올라선 측면도 있다고 본다. 또 인도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인도 도시들에서 소가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 예전에는 도로에서 소들이 어슬렁거리는 모습이 흔했다. 그런데 그런 장면이 줄어드는 것은 외부인이 보면 하나의 변곡점이다. 인도가 크게 바뀌고 있다는 신호다.”


- 그런 변화가 왜 중요한가.

“공항이 깨끗해지고, 도로가 정돈되고, 도시 풍경이 바뀌는 것은 단순한 미관 개선이 아니다. 국가의 행정 역량이 올라가고 있다는 뜻이다. 도시 중산층의 기준도 높아지고, 국제행사를 치르는 능력도 커졌다는 의미다.

인도는 과거의 이미지로만 볼 나라가 아니다. 복잡하고 느리고 지저분한 나라라는 고정관념으로는 지금의 인도를 읽을 수 없다. 인도는 지금 실제로 움직이고 있다.”



“인도는 쉬운 나라가 아니다…상당한 인내심이 필요하다”

- 한국 기업들이 인도에 많이 진출하고 있지만, 진입장벽과 리스크도 크다는 지적이 있다.

“맞다. 인도에는 진입장벽이 있다. 규제가 복잡하고 불확실하며 행정 시스템도 쉽지 않다. 인도는 연방국가다. 중앙정부 규제가 있고, 28개 주정부의 규제가 별도로 있다. 세금, 인허가, 노동규정이 주마다 차이가 있다. 한국이나 중국보다 훨씬 복잡하다.

그래서 상당한 인내심이 필요한 나라다. 금방 들어가서 금방 성과를 내기는 어렵다.”


- 어느 지역에 들어가느냐도 중요한가.

“그렇다. 지역도 중요하다. 주별로 입지 조건이 다르고, 리더십이나 행정 상황에 따라 앞서가는 주도 있고 뒤처지는 주도 있다. 우리 기업들이 이런 점을 잘 살펴야 한다.

인도는 하나의 시장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여러 시장이 합쳐진 나라에 가깝다. 주마다 정치 리더십이 다르고, 산업정책이 다르고, 토지와 노동 관련 규정도 다르다. 어느 주에 들어가느냐, 어떤 파트너를 만나느냐, 현지 행정과 어떻게 관계를 맺느냐가 성패를 가른다.”


- 인도 진출 기업에 가장 필요한 태도는 무엇인가.

“장기전의 시각이다. 인도는 1~2년 안에 성과를 내기 어려울 수 있다. 협상하고, 기다리고, 조정하고, 현지화해야 하는 시장이다. 대신 한 번 신뢰를 얻고 브랜드를 세우면 장기적으로 큰 보상을 받을 수 있다. 삼성, LG, 현대차의 사례가 그것을 보여준다.”



“삼성·LG·현대차 이후 제2의 인도 투자 붐이 필요하다”

- 한·인도 경제협력에서 가장 기대하는 성과는 무엇인가.

“경제 면에서 제2의 투자 붐이 일어났으면 좋겠다. 제가 인도에 있을 때도 한국이 적극적으로 인도에 투자할 때라고 생각했다.

30년 전인 1990년대에는 인도 환경이 지금보다 훨씬 좋지 않았다. 인프라도 좋지 않았고 행정도 어려웠다. 그런데 그때 과감하게 들어간 기업들이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차였다. 초기에 어려움이 많았지만 지금은 인도에서 누구나 아는 이름이 됐다. 삼성, LG, 현대차는 인도에서 하우스홀드 네임이다. 모든 인도 사람이 아는 브랜드가 됐다.

그 이후 LS그룹이나 전선 분야 기업들도 들어갔지만, 대규모 투자에는 어느 정도 간격이 있었다. 이제는 두 번째 투자 붐이 필요하다.”


- 어떤 분야에서 제2의 투자 붐이 가능하다고 보나.

“조선, AI 데이터센터, 전자, 인프라 등에서 협력 가능성이 있다. 삼성전자가 인도 대기업 릴라이언스 그룹과 AI 대규모 센터 협력을 논의하는 흐름도 있고, 조선 분야 협력도 중요하다.

한국은 그동안 중국과 베트남을 바라봤지만 이제 투자선 다변화가 필요하다. 인도의 실체가 보이는 지금 머뭇거리지 말고 과감하게 투자해야 한다.”


- 정상외교가 기업 진출에 도움이 될 수 있나.

“물론이다. 대통령 방문에 기업인들이 동행하고, 협력회의가 열리고, 개별 기업들이 움직이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정상외교가 기업 진출의 큰 문을 열 수 있다. 다만 일회성 이벤트로 끝나면 안 된다. 조선, AI, 반도체, 자동차, 배터리, 전력망, 인프라, 방산, 문화콘텐츠 등 분야별 협력 로드맵이 뒤따라야 한다.”



“한·인도 조선 협력, 제2의 울산을 인도에 만들 수 있다”

- 한·인도 협력 분야 가운데 조선을 강조했다. 이유는 무엇인가.

“앞으로 한·인도 간에 중점적으로 논의될 분야 중 하나가 조선이다. HD현대 같은 기업이 인도 주정부와 협력하고 있다. 타밀나두주와 케랄라주 등과 조선업 관련 협력이 추진되고 있다.

타밀나두주에는 제2의 울산 조선소를 건설하겠다는 비전도 있다. 한국형 조선업을 인도에 이식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구상은 단순한 공장 수출이 아니다. 한국형 조선 생태계를 인도에 심는 일이다.”


- 조선 협력이 전략적으로도 의미가 있나.

“그렇다. 인도는 해양안보, 물류, 방산, 에너지 수송 측면에서 조선 역량이 필요하다.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조선 기술과 생산 노하우를 갖고 있다. 양국의 이해가 맞아떨어질 수 있다.

인도는 인도양을 중심으로 해양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중국의 해양 진출을 견제하고, 중동과 아프리카, 동남아를 잇는 해상 교통로를 관리해야 한다. 한국 조선업은 상선뿐 아니라 특수선, 친환경 선박, 해양플랜트, 스마트조선 기술에서도 강점이 있다. 인도 입장에서는 한국이 신뢰할 수 있는 기술 파트너가 될 수 있고, 한국 입장에서는 거대 시장과 전략 거점을 확보할 수 있다.”



“인도와 가까워지는 것은 글로벌 사우스와 가까워지는 일”

- 인도를 글로벌 사우스의 대표 국가로 보는 이유는 무엇인가.

“인도는 글로벌 사우스의 대표 국가다. 글로벌 사우스는 과거 비동맹운동의 흐름과도 연결된다. 인도는 냉전 시기 네루 총리 이래 비동맹 외교를 주도했다. 지금도 미국과 중국 어느 한쪽에 완전히 종속되지 않는 독자 노선을 유지하고 있다.

글로벌 사우스에 속하는 나라가 120개국 정도라고 볼 수 있다. 국제정치에서 엄청난 역할을 할 수 있는 세력이다. 인도와의 관계를 강화한다는 것은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과의 관계를 강화하는 것이고, 미·중·일과의 관계에서도 하나의 레버리지가 된다.”


- 한국 외교에 어떤 의미가 있나.

“한국은 경제 규모와 기술력, 문화 영향력 면에서 이미 주요국 반열에 들어섰다. 그러나 외교적으로는 여전히 주변 4강에 묶여 있는 경우가 많았다. 글로벌 사우스와의 관계를 넓히면 한국은 국제무대에서 더 넓은 지지 기반을 가질 수 있다.

개발협력, 디지털 전환, 기후, 보건, 인프라, 교육, 방산, 문화콘텐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 공간이 열린다. 인도는 그 문을 여는 열쇠다.”



“가교국가가 되려면 신뢰와 힘이 있어야 한다”

- 한국 정부는 ‘가교국가’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인도는 그 구상에서 어떤 의미를 갖나.

“가교국가, 브리지 스테이트가 되려면 대상 국가들로부터 신뢰가 있어야 하고 힘이 있어야 한다. 단순히 중간에 서 있다고 가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양쪽이 모두 믿고 건널 수 있어야 하며, 스스로 버틸 힘도 있어야 한다.

한국은 미국과 동맹을 유지하면서도 중국과 경제 관계를 관리해야 한다. 일본과 협력하면서도 과거사 문제를 외면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인도는 한국이 외교적 균형을 잡는 데 중요한 추가 축이 된다.

인도는 미국과 협력하지만 미국의 하위 파트너가 아니고, 중국과 경쟁하지만 중국과 완전히 단절하지도 않는다. 이런 인도의 외교 방식은 한국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


- 인도와 협력하면 한국 외교의 선택지가 넓어진다는 뜻인가.

“그렇다. 한국이 인도와 가까워지면 미·중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는 외교 공간을 조금 더 넓힐 수 있다. 또한 글로벌 사우스와의 관계를 통해 국제기구와 다자무대에서 새로운 협력 기반을 만들 수 있다. 그래서 인도를 레버리지라고 표현한 것이다.”

“한국 외교의 원칙은 국익, 그 핵심은 평화”

- 미·중 경쟁, 공급망 재편, AI 기술혁신, 중동전쟁이 동시에 벌어지는 시대다. 한국 외교의 원칙은 무엇이어야 하나.

“원칙은 국익이다. 다만 국익이 무엇이냐는 어려운 문제가 있다. 주권, 영토 보전, 국민의 성장과 번영, 평화, 국가의 자존심 같은 것들이 국익이다. 누가 국익을 해석하느냐의 문제도 있다.

하지만 저는 우리 외교가 국익을 앞세우되 그 기반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평화라고 생각한다. 외교의 핵심은 어떻게 평화의 면을 넓혀가느냐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이나 이란 전쟁은 외교가 실패해서 일어난 전쟁이다.

특히 안락의자의 전사들, 영어로 ‘암체어 워리어’라고 하는 사람들이 문제다. 편안한 안락의자에 앉아서 강경론만 남발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국에도 그런 사람들이 많다. 대책 없이 강경론을 내세우고 그것이 애국인 줄 안다. 반대로 협력이나 대화를 말하면 유화론자라고 몰아세운다. 굉장히 위험한 이야기다. 저는 평화를 개념으로 한 국익을 말하고 싶다.”


“출세보다 스토리 있는 외교관이 돼야 한다”

- 후배 외교관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제가 일선에서 거의 40년 있었다. 한국외교협회 회장을 하면서 은퇴한 많은 원로 외교관들도 보고 있다. 후배들에게 한마디 하라면, 출세를 나침반으로 삼지 말고 스토리 있는 외교관이 되라고 말하고 싶다.

스토리 있는 외교관이 되려면 자기 나름의 나침반이 있어야 한다. 출세를 나침반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실력을 갖추고 자기 나름의 방향을 가져야 한다. 주류에 거슬러 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나중에 일선에서 물러났을 때 ‘나는 우리 외교를 위해 무엇을 했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그때그때 출세, 보직만 좇아 살다 보면 공직을 떠날 때 굉장히 허무하다. 은퇴해서도 자기 자긍심과 자존심이 있어야 한다.”

 

신봉길 전 대사의 인도론은 단순한 시장 분석이 아니다. 그것은 한국 외교의 다음 방향에 대한 제안이다. 한국은 더 이상 작은 나라가 아니다. 문화는 세계로 뻗었고, 기업은 글로벌 공급망의 핵심에 들어갔고, 방산과 조선, 반도체, 배터리, 자동차, 콘텐츠 산업은 세계 시장에서 존재감을 갖고 있다. 그러나 외교의 사고는 여전히 4강 중심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인도는 이 틀을 바꾸게 하는 나라다. 인도와 협력한다는 것은 한국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만 머물지 않겠다는 뜻이다. 글로벌 사우스와 연결되고, 인도양과 남아시아로 외교 공간을 넓히며, 미래 성장시장에 먼저 들어가겠다는 뜻이다. 인도는 한국에 생산기지이고 시장이며, 기술과 산업의 파트너이고, 국제정치의 지렛대다.

물론 인도는 어렵다. 규제는 복잡하고 행정은 느릴 수 있다. 주마다 조건이 다르고, 문화적 차이도 크다. 그러나 쉬운 시장에는 이미 모두가 들어가 있다. 어려운 시장일수록 먼저 들어가 오래 버틴 기업과 국가가 기회를 가져간다. 30년 전 삼성, LG, 현대차가 그랬듯이 지금 한국은 다시 한 번 인도 앞에서 결단해야 한다.

신 전 대사의 결론은 분명하다. 한국 외교는 4강 외교를 넘어 5강 외교로 가야 한다. 한국 경제는 중국과 베트남 다음의 성장축으로 인도를 봐야 한다. 한국 기업은 인도를 단순한 생산기지나 소비시장으로만 보지 말고 전략 파트너로 접근해야 한다. 한국 정부는 인도와의 협력을 정상외교 이벤트가 아니라 국가전략의 한 축으로 삼아야 한다.

인도는 먼 나라가 아니다. 한국 외교와 경제의 다음 시험대다. 그 시험대에 얼마나 빨리, 얼마나 깊이, 얼마나 끈질기게 올라서느냐가 앞으로 10년 한국의 외교 지평과 기업 성장의 폭을 가를 것이다.

[신봉길 전 주 인도대사] 신봉길 전 주인도대사는 40년 가까이 외교 현장을 지켜온 대표적 현장형 외교관이다. 주인도대사를 지냈고, 한·중·일 3국협력사무국 초대 사무총장을 맡아 동북아 다자협력의 제도화에도 참여했다. 현재는 한인도미래협회장으로 활동하며 한국 외교가 기존의 미·중·일·러 중심 4강 외교를 넘어 인도를 포함한 ‘5강 외교’로 확장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는 인도를 생산기지이자 거대한 소비시장, 나아가 글로벌 사우스와 연결되는 전략 파트너로 본다. 한국 외교의 원칙으로는 국익을 들되, 그 핵심 개념은 평화라고 말한다. 후배 외교관들에게는 출세보다 “스토리 있는 외교관”이 되라고 조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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