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사설 | 기본·원칙·상식] 내란 관련 고위직 퇴직금 논란…법의 빈틈, 신뢰의 균열

국가의 근간을 흔드는 ‘내란’ 혐의로 재판과 수사를 받는 고위 공직자들에게 퇴직금이 정상 지급됐다고 한다. 법 절차에 따른 행정 집행이라고는 하나 국민 정서와는 크게 어긋난 장면이다.

보도에 따르면 한덕수 전 국무총리를 비롯해 내란 중요임무 종사, 국가정보원법 위반, 위증 등 혐의로 기소되거나 수사를 받는 전직 고위직 인사들이 퇴직연금과 퇴직수당을 정상 수령했다. 공무원연금공단은 “지급 시점에 수사·재판 기록이 공식 확인되지 않으면 일단 지급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이후 형이 확정되면 환수 조치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현행 공무원연금법은 금고 이상 형이 확정되면 퇴직급여를 지급하지 않도록 규정한다. 수사나 재판이 진행 중일 경우 지급을 정지할 수 있는 조항도 있다. 문제는 ‘확정’과 ‘공식 확인’이라는 문턱이다. 행정은 문서로 움직이고, 법은 확정 판결로 귀결된다. 그러나 내란과 같은 반국가 범죄 혐의 사안은 일반 형사사건과는 차원이 다르다. 사안의 중대성과 공직의 책무를 감안할 때, 단순한 행정 절차 논리로만 접근하기엔 국민적 상식과 괴리가 있다.

고위 공직자가 국가 질서를 뒤흔든 혐의로 재판을 받는 상황에서 퇴직급여가 집행되는 모습은 공직 윤리와 책임성에 대한 의문을 낳는다. “나중에 환수하면 된다”는 해명은 행정적으로는 타당할지 몰라도 공적 책임의 무게를 가볍게 보이게 할 위험이 있다.

핵심은 제도의 정합성이다. 반국가 범죄나 헌정 질서 파괴 범죄와 같이 국가의 존립을 위협하는 범죄에 대해서는, 1심 유죄 선고 시점부터 일정 부분 지급을 유보하거나 신탁 형태로 보관하는 등 보다 엄격한 장치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무죄 추정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공적 책임에 상응하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방식이다.

공직은 특권이 아니라 책임이다. 특히 최고위직일수록 더 높은 윤리 기준을 적용받아야 한다. 법의 빈틈이 신뢰의 균열로 이어지지 않도록 제도를 점검하는 것이 입법부와 행정부의 몫이다.

이번 사안은 공직사회 전체의 책임성과 법 체계의 정교함을 묻는 사례다. 법은 형식만으로 서지 않는다. 국민의 상식 위에 설 때 비로소 권위를 얻는다. 지금 필요한 것은 기본과 원칙을 바로 세우는 냉정한 제도 보완이다.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를 받는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지난달 21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에 출석해 있다 사진서울중앙지법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를 받는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지난달 21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에 출석해 있다. [사진=서울중앙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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