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책임의 예술이다. 권력을 쥔 자일수록 스스로를 더 엄격하게 심판해야 한다. 그런데 요즘 국민의힘에서 벌어지는 풍경은 정치가 아니라 계산이고, 리더십이 아니라 술수다. 장동혁 대표가 꺼내 든 '전당원 재신임 투표' 카드는 그 상징이다.
장 대표는 "누구라도 재신임을 요구하면 곧바로 전당원 투표에 나서겠다"고 했다. 그 결과 재신임을 받지 못하면 당대표는 물론 국회의원직까지 내려놓겠다고 했다. 얼핏 보면 비장해 보인다. 그러나 조금만 들여다보면 이 결단은 책임 정치가 아니라 정치적 협박에 가깝다. 나를 흔들려면 당신도 함께 죽을 각오를 하라는 말이기 때문이다.
정치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 지도자가 잘못을 인정하지 않을 때다. 당내 갈등의 본질은 이미 분명하다. 한동훈 전 대표 제명이라는 중대 결정, 그리고 그 과정에서 드러난 폐쇄성과 독단성이다. 이 사안에 대해 필요한 것은 절차가 아니라 판단의 오류에 대한 반성과 설명이었다. 그러나 장 대표는 반성 대신 투표를 들고 나왔다.
전당원 투표는 민주적 절차다. 문제는 언제, 어떤 맥락에서 사용되느냐다. 당원 구성이 자신에게 유리하다는 판단, 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이라는 계산, '지금 흔들리면 진다'는 공포의 프레임 등 이 모든 조건이 맞물린 상황에서의 전(全) 당원 투표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결과가 예정된 의식에 가깝다. 이미 답을 정해놓고 "당원이 결정했다"고 말하기 위한 장치다.
이 장면은 낯설지 않다. 우리는 비슷한 문법을 이미 경험했다. 윤석열은 모든 정치적 위기를 "국민이 선택했다”는 말로 버텼다. 비판은 배신이 되었고, 견제는 음모가 되었다. 제도와 절차는 책임을 피하는 방패로 전락했다. 장동혁의 전당원 투표 역시 같은 궤도 위에 있다. 국민 대신 당원, 국정 대신 당무일 뿐, 사고방식은 동일하다.
당 대표의 사퇴를 요구한 오세훈 서울시장의 발언은 그래서 중요하다. 오 시장은 "잘못을 반성해야 선거에서 이길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말은 도덕적 훈계가 아니다. 선거를 실제로 이겨본 정치인의 현실 인식이다. 중도와 무당층은 강성 지지층의 결집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반성과 변화의 신호가 있을 때 비로소 마음을 연다.
그러나 장동혁 지도부는 다른 길을 택했다. 강성 지지층 결집과 낮은 투표율에 기대는 전략이 그것이다. 이것은 선거 기술일 수는 있어도, 정당의 미래 전략은 아니다. 이렇게 가면 국민의힘은 당장은 버틸 수 있을지 몰라도, 다시 집권할 수 있는 보수의 길에서는 점점 멀어진다. 더 큰 문제는 책임의 공백이다. 만약 지방선거에서 패배한다면 누가 책임질 것인가. 공천 탓, 후보 탓, 지역 조직 탓이 난무할 것이다. 장동혁은 또다시 절차 뒤에 숨을 것이다. "당원이 선택했다"는 말은 그때도 면죄부로 쓰일 것이다. 이것이 반복될수록 정당은 학습하지 못하고, 실패는 누적될 뿐이다.
지금 국민의힘에 필요한 것은 전당원 투표가 아니다. 잘못된 판단을 인정하는 한마디, 책임을 지겠다는 명확한 태도, 그리고 확장할 수 있는 리더십이다. 그것이 없다면, 이번 사태가 '폭풍 속의 찻잔'으로 끝날 가능성은 낮다. 찻잔은 깨지지 않을지 몰라도, 그 안의 물은 이미 식어가고 있다.
정당은 지지층만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국민을 향해 열려 있을 때만 살아남는다. 그 간단한 진리를 외면하는 순간, 어떤 절차도 정치를 구해주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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