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든 과제든, 심지어 글쓰기 시험까지도 금지와 서약이 먼저였다.
그런데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서울대 동양화과는 AI로 그림을 완성하는 법을 가르치고, 연세대 국문과는 시를 쓸 때 자료 탐색과 문장 교정에 AI 활용을 허용한다. 금지에서 공존으로의 전환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변화가 공대가 아니라 인문·예술 계열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통번역, 문학, 미술처럼 ‘AI 때문에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는 경고를 가장 많이 들어온 분야들이다. 위기감이 컸던 곳이 오히려 현실을 외면하지 않았다.
서울대 동양화과 수업에서 학생들은 밑그림을 그리고, AI로 이미지를 확장할 수 있다. 대신 질문은 더 집요해진다. 왜 이 그림을 그리는가, 작품의 세계관은 어디서 왔는가. AI는 붓을 대신할 수는 있어도, 미감과 취향까지 대신해주지는 못한다.
문학도 마찬가지다. 연세대 국문과의 ‘시 쓰기’ 수업은 AI에게 시를 맡기지 않는다. 대신 심해를 배경으로 시를 쓴다면, 심해어의 생태를 조사하는 일은 AI에 맡긴다. 고통스러운 창작의 핵심은 인간이 책임지고, 반복적이고 방대한 준비 과정은 도구를 활용한다. 이는 타협이 아니라 역할 분담에 가깝다.
어문계열의 태도는 더 현실적이다. 이미 AI 번역은 일상이 됐다. 그래서 성균관대 중문과 수업의 핵심은 “AI 번역의 오류를 잡아내는 능력”이다. 초벌 번역은 기계가 한다. 대신 맥락을 읽고 문화적 뉘앙스를 살리는 일은 사람이 맡는다. 번역가의 역할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이동하고 있다.
이 장면들이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AI를 쓰느냐 마느냐는 더 이상 선택지가 아니다. 문제는 누가, 어디까지, 어떤 책임으로 쓰느냐다. 전면 금지는 가장 쉬운 관리 방식이지만, 동시에 가장 무책임한 교육이기도 하다. 학생들은 졸업과 동시에 AI가 기본 도구인 세계로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늦었지만 대학들이 이제라도 방향을 바꾼 것은 다행이다. 다만 한 가지 조건이 있다. AI 활용 교육은 ‘편리함’을 가르치는 데서 멈춰서는 안 된다. 의존하지 않는 법, 의심하는 법, 실패를 분별하는 법까지 함께 가르쳐야 한다. 서울대 가이드라인이 강조한 “비판 없는 수용을 경계하라”는 대목이 중요한 이유다.
AI는 창작의 적이 아니다. 오히려 창작을 더 어려운 질문으로 밀어붙이는 존재다.
대학이 해야 할 일은 학생들을 AI로부터 차단하는 것이 아니라,
AI와 함께 살아남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이번 변화는 그 출발선에 서 있다는 신호다.
다소 늦었지만, 방향은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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