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심판을 맡았던 문형배 전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더불어민주당의 사법개혁안에 대해 공개적으로 우려를 표했다. “휴먼 에러가 있다면 휴먼을 고쳐야지 왜 시스템에 손을 대느냐”는 그의 발언은, 사법부 내부에서도 개혁의 방향을 둘러싼 깊은 고민이 존재함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문제 제기는 그대로 수용하기보다 한 단계 더 확장해 성찰할 필요가 있다. 사법의 위기를 개인의 윤리 문제로만 환원할 수 있는지, 아니면 그 오류를 반복 가능하게 만든 구조 역시 함께 점검해야 하는지가 핵심 질문이다.
사람과 시스템은 분리된 존재가 아니다. 개별 법관의 판단 오류가 반복되고, 특정 유형의 사건에서만 일관성이 흔들린다면 이는 단순한 도덕성의 문제가 아니라 책임을 묻고 교정하는 제도적 장치가 충분히 작동했는지를 묻게 한다. ‘사람을 고치자’는 주장만으로는 왜 같은 문제가 되풀이되는지 설명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사법개혁이 곧바로 대규모 구조 개편으로 직행해야 한다는 뜻도 아니다.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법원행정처 폐지와 같은 방안은 국민의 권리 구제 확대와 민주적 통제라는 명분을 지니고 있지만, 동시에 사법 판단이 정치적 이해관계에 노출될 위험도 안고 있다. 사법 독립은 견제의 부정이 아니라, 견제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다.
해외 사례는 이 긴장을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개혁의 성패를 가른다는 점을 보여준다. 미국과 독일은 사법 신뢰가 흔들릴 때마다 구조 자체를 흔들기보다, 판결 논리의 공개성 강화, 이해충돌 통제, 윤리 규범의 실효성 제고 등 사람과 제도를 함께 묶는 중간 장치를 통해 신뢰 회복을 시도해 왔다. 제도는 건드리지 않고 사람에게만 호소하지도, 사람을 건너뛰고 구조만 바꾸지도 않았다.
문 전 대행이 지적한 ‘관행 변경’ 문제도 같은 맥락에서 읽어야 한다. 쟁점은 관행을 바꾸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왜 그 변화가 특정 사건, 특정 인물에게서만 나타났느냐는 점이다. 관행 자체가 불공정했다면 바뀌는 것이 옳다. 그러나 그 변화가 선택적으로 적용될 경우, 국민이 보게 되는 것은 사법의 진화가 아니라 선별적 정의다.
사법개혁의 핵심은 선택이 아니라 설계다.
윤리 강화만으로는 부족하고, 구조 개편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다. 책임 있는 개인 판단을 전제로 하되, 그 판단이 반복적으로 검증되고 교정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함께 작동해야 한다. 이것이 독립과 견제, 자율과 통제를 동시에 살리는 길이다.
사법부는 스스로를 성역으로 만들 권리도, 정치의 파도에 그대로 떠밀릴 자유도 없다. 국민이 요구하는 것은 급진적 해체도, 무조건적 유지도 아니다. 신뢰가 어떻게 무너졌는지에 대한 정직한 진단과, 그 신뢰를 다시 쌓을 수 있는 현실적인 개혁이다.
사법개혁은 방향의 문제가 아니라 균형의 문제다.
그 균형을 놓치는 순간, 개혁은 정의를 강화하는 수단이 아니라 또 하나의 불신을 낳는 계기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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