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사설 | 기본·원칙·상식] 나라·도다이지 한·일 외교, 상징을 넘어 성과로 가야 한다

작년 11월 남아공에서 만난 한일 정상 사진연합뉴스
지난해 11월 남아공에서 만난 한일 정상 [사진=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오는 13~14일 일본 나라(奈良)에서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는다. 취임 후 첫 일본 방문이자, 중국과의 정상회담 직후 이뤄지는 일정이다. 중·일 갈등이 격화되는 국면에서 열리는 한·일 정상회담이라는 점에서 국제사회의 시선도 쏠린다.

회담 장소가 갖는 상징성은 분명하다. 나라는 일본의 고도이자 다카이치 총리의 정치적 기반이다. 정상회담을 수도가 아닌 ‘안방’으로 초청하는 방식은 친밀감과 특별 대우를 강조하는 외교적 제스처로 읽힌다. 외교사는 이런 사례로 가득하다. 문제는 상징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상징이 무엇을 향하고 있느냐다.

특히 일본 언론이 회담 장소로 거론하는 도다이지(東大寺)는 단순한 문화유산을 넘어선다. 도다이지의 건립과 대불 조성에 백제계 도래인(渡來人)들이 깊이 관여했다는 학계의 축적된 연구는 고대 한·일 교류와 협력의 실체를 상기시킨다. 일본이 ‘고대사’의 협력 서사를 무대로 선택했다면, 이는 최근 중국이 근현대사를 앞세워 한국을 자국의 역사·전략 프레임으로 끌어들이려는 공세에 대한 대응 메시지로도 해석될 수 있다.

실제로 중국은 한·중 정상회담에서 항일전쟁과 제2차 세계대전의 서사를 강조하며 ‘역사의 옳은 편’이라는 표현으로 압박을 가했다. 근현대사를 매개로 한 연대 제안은 한·미·일 3각 협력에 균열을 내려는 계산과 무관하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이 고대사의 협력 상징을 전면에 내세운 것은 역사 프레임을 둘러싼 외교적 주도권 경쟁의 한 장면이다.

이 대목에서 한국의 선택은 더욱 냉정해야 한다. 상징 외교에 휩쓸려 어느 한쪽의 역사 서사에 편입되는 것은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역사는 사실과 원칙의 영역이고, 외교는 현재와 미래의 이익을 다루는 영역이다. 두 영역을 연결하되, 서로를 흐리지 않는 균형 감각이 필요하다.

이번 회담에서 과거사 의제가 논의되는 것은 불가피하다. 조세이(長生) 탄광을 비롯한 사안에서 인도적 협력과 공동 조사를 모색하는 접근 자체는 의미가 있다. 다만 피해자 중심, 사실 규명, 책임의 명확화라는 원칙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 인도적 접근이 면죄부로 비쳐서는 더더욱 곤란하다.

경제·안보 환경도 엄중하다. 중국의 희토류 수출 통제는 한국에도 직접적인 파급을 미칠 수 있다. 한·일 협력은 선언에 머물러서는 안 되며, 구체적 대응으로 이어져야 한다. 공급망 안정, 통상 리스크 관리, 경제안보 협력의 범위와 일정이 공동 발표문에 담겨야 한다. 모호한 문구로는 불확실성을 줄일 수 없다.

정부에 분명히 주문한다. 상징은 충분하다. 이제는 성과로 답해야 한다. 과거사는 인도적 협력을 하되 원칙을 분명히 해야 한다. 경제안보 협력은 수치와 일정으로 제시해야 한다. 무엇보다 주변국의 역사 프레임 경쟁에 말려들지 말고, 한국의 국익을 중심에 둔 명확한 입장을 유지해야 한다.

나라와 도다이지가 던지는 메시지는 출발선에 불과하다. 이번 한·일 정상회담의 평가는 상징이 아니라 결과로 내려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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