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넘게 한 조직에 몸담았다는 사실은 이력의 무게이자, 그만큼의 책임을 동반한다. 회사의 성장과 정체, 성공과 시행착오를 모두 경험한 사람만이 이 자리에 설 수 있다. 이제 질문은 비판이 아니라 기대에 가깝다. 관리 경험을 넘어, 조직을 한 단계 끌어올릴 기업가정신을 보여줄 수 있느냐는 것이다.
· 조직을 지켜낸 ‘적응형 리더십’의 가치
박윤영 후보의 가장 큰 강점은 변화의 파고 속에서도 조직을 떠나지 않고 현장을 지켜왔다는 점이다. KT가 구조조정과 사업 재편, 기술 전환을 반복하던 시기에도 그는 내부에서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몸으로 익혔다.
박 후보가 이 질문에서 신뢰를 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경험은 단순한 이력이 아니라, 앞으로의 선택을 가능하게 하는 자산이다. 이제 이 자산을 다음 단계로 확장할 시점에 와 있다.
· 위기 관리 경험을 구조 개선으로 연결할 때
최근 KT가 겪은 보안 사고와 신뢰 저하, 신사업 추진 과정의 혼선은 단일 사건이라기보다 축적된 과제에 가깝다. 이 국면에서 중요한 것은 책임 공방이 아니라, 왜 같은 문제가 반복되는지를 구조적으로 점검하는 일이다.
위기를 관리해 온 경험이 많은 리더일수록, 이제는 그 경험을 구조 개선으로 연결할 수 있다. 관리의 축적은 전환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미국 통신사 버라이즌은 대규모 정보 유출 사고 이후 쉽지 않은 선택을 했다. 단기 실적 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보안 체계와 내부 통제 구조를 전면적으로 재설계했다. 사과는 짧았지만, 구조 개편은 길었다. 그 선택이 결국 신뢰 회복으로 이어졌다는 점은 통신 기업 경영에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공자는 “허물이 있으면 고치기를 꺼리지 말라(過而不改 是謂過矣)”고 말했다. 오늘날 이 말은 실패를 탓하라는 뜻이 아니라, 경험을 다음 단계의 설계로 바꾸라는 조언에 가깝다. 위기 관리의 경험은 그 자체로 전환의 재료가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 경험을 어떻게 제도와 구조로 남기느냐다.
· 내부 출신 CEO에게 기대되는 ‘구조를 바꾸는 리더십’
박윤영 후보에게 기대가 모이는 이유는 내부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 점이다. 조직의 강점과 한계, 관성과 가능성을 동시에 아는 사람만이 구조를 바꾸는 결정을 할 수 있다. 내부 출신 CEO의 장점은 현상 유지가 아니라, 현실적인 변화에 있다. 그 변화는 급격한 혁신보다, 되돌릴 수 없는 선택의 축적으로 이뤄진다.
독일 도이체텔레콤은 디지털 전환 과정에서 ‘빠른 확장’보다 ‘안정적 적용’을 선택해 왔다. 신기술을 도입하되, 고객 신뢰와 인프라 안정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단계적으로 추진했다. 단기 성과는 늦었지만, 장기 신뢰는 지켜냈다. 통신 기업에게 신뢰가 경쟁력이라는 점을 일관되게 보여준 사례다.
노자가 말한 “큰 일은 반드시 작은 데서 시작된다(大事必作於細)”는 말은, 오늘날 경영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구조 변화는 선언이 아니라 작은 선택에서 시작된다. 그 선택을 반복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조직을 가장 잘 아는 리더다. 이 점에서 박 후보에게 주어진 조건은 결코 불리하지 않다.
· AI 시대, 속도와 함께 책임을 설계하는 판단
AI는 KT에게 새로운 성장 기회이자, 동시에 새로운 기준을 요구한다. 통신사의 AI는 빠른 기술이기보다, 고객과 사회가 믿고 맡길 수 있는 기술이어야 한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속도를 높이는 결단보다, 속도를 조절하며 책임의 범위를 설계하는 판단이다. 이 판단이 조직의 기준으로 자리 잡을 때 기술은 신뢰로 이어진다.
로마 철학자 세네카는 “방향을 모르면 어떤 바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AI는 강한 바람이다. 방향이 분명할 때 그 바람은 추진력이 되지만, 그렇지 않으면 혼란을 키운다. 속도를 늦출 줄 아는 용기는 뒤처짐이 아니라, 장기 경쟁력을 위한 선택이다.
박윤영 후보의 도전은 KT가 다시 신뢰받는 공공 인프라 기업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그리고 기술 변화의 속도가 빨라진 시대에도 안정적으로 작동하는 조직을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한 시험이다. 이 시험은 비판이 아니라, 기대 속에서 치러지고 있다.
· 기업가정신은 구호가 아니다
불확실성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하고, 그 선택을 구조로 남기느냐의 문제다. 박윤영 후보가 쌓아온 적응형 리더십은 이제 구조를 바꾸는 기업가정신으로 확장될 수 있는 단계에 와 있다. KT의 다음 10년은, 그 전환이 어떻게 이뤄지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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