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서울 종묘 인근 재개발 사업을 둘러싼 서울시와 정부의 갈등이 정점으로 치닫는 양상이다. 국가유산청이 세계유산영향평가(HIA)를 의무화하는 법적 근거 마련에 박차를 가하면서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국가유산청은 18일 ‘세계유산의 보존·관리 및 활용에 관한 특별법(세계유산법)’ 시행령 일부 개정안을 재입법 예고했다. 국가유산청은 법제처 심사를 거쳐 이르면 개정안을 내년 3월 이내 공표한다는 방침이다. 유네스코가 강력히 권고해 온 세계유산영향평가의 대상과 절차를 국내법상에 구체적으로 명시하는 것이 골자다.
개정안에 따르면 앞으로 국토·도시 개발, 도로·도시철도 공사 등 세계유산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업은 사전에 영향평가를 받아야 한다. 특히 개발 부지 내에 세계유산지구가 포함될 경우 사업자는 ‘사전검토요청서’를 통해 건축물의 최고 높이와 유산과의 이격거리 등을 상세하게 제출할 의무도 발생한다. 사실상 종묘 앞 고층 개발 논란을 겨냥한 법적 장치인 셈이다.
서울시와 개발업계는 세운지구를 비롯한 서울 강북 일대 개발사업에 상당한 지장이 있을 것이라며 반발하는 상황이다. 이미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 심의와 건축 심의 등 촘촘한 국내 규제가 작동하고 있는 상황에서 세계유산영향평가를 의무화하는 것은 ‘행정 편의적인 중복 규제’라는 것이다.
서울시는 현재 종묘 앞 세운4구역 재개발과 관련해 유네스코의 세계유산영향평가 수행 및 개발 승인 중지 요청에 응하지 않고 있다. “국내법상 강제성이 없다”는 이유를 들어 개발 강행 태도를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세계유산법 시행령 개정안을 두고도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서울 내 사업이 38개 구역으로, 재개발·재건축 등 정비사업이 불가능해질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다만 세계유산영향평가에 대한 유네스코 등 국제기구의 최근 기조는 서울시 조치와 온도 차가 확연하다.
유네스코와 자문기구인 이코모스(ICOMOS) 등은 2022년 발간한 세계유산 영향평가 지침서에서 제안 사업이 세계유산과 탁월한 보편적 가치에 미치는 영향이 없다고 확신할 수 없다면 영향평가를 반드시 수행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올해 유네스코 동아시아 지역사무소가 발간한 정책보고서 역시 세계유산영향평가를 예방적 관리 도구로 활용하고, 관련 기준과 지침을 가입국의 법률 체계에 통합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아울러 영향평가가 개발과 보존의 대립이 아닌 지속가능한 발전의 도구라는 점에 대한 사회적 인식 제고가 필요하다고도 짚고 있다.
국제적으로 세계유산영향평가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관련 입법 및 제도화는 불가피하다는 것이 전문가들 다수의 의견이다. 특히 서울시의 ‘버티기’가 장기적으로는 득보다 실이 클 것이라고 지적한다. 서울시가 국제적 권고를 반복적으로 무시할 경우, 향후 한양도성이나 근대 유산 등 잠재적 세계유산 등재 심사에서 이코모스 등 자문기구가 ‘관리 의지 부재’를 이유로 부정적 의견을 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에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실무적인 조율을 통해 보존과 개발의 접점을 서둘러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강동진 경성대 도시계획학과 교수는 “시가 국제 기준을 미준수한다면 서울 한양도성 등의 세계유산 등재 심사에서 부정적 평가를 받을 소지가 높다”며 “세계유산영향평가는 국제사회에서 개발을 막는 것이 아닌 개발과 유산이 공존하는 방법을 찾기 위한 체계로 도입됐다. 이를 수용하고 보다 전향적인 시각에서 합의점을 찾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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