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이 1500원 선에 근접하면서 고환율 국면에 취약한 기업들의 외환 리스크 관리에 다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일부 기업이 은행과 맺은 FX 트리거(환율 조건부) 계약의 기준선이 1500원 안팎으로 설정돼 있어, 환율이 이를 넘길 경우 기업의 현금 유출 부담이 급격히 커질 수 있다는 우려다. 금융권에서는 과거 키코 사태와 같은 구조적 위기로 보기는 어렵다면서도, 고환율이 장기화할 경우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부실 위험이 확대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14일 서울외환시장에 따르면 지난 12일 원·달러 환율 야간 거래 종가는 1477.0원으로 올해 4월 8일(1479.0원) 이후 가장 높았다. 야간거래에선 장중 1479.9원까지 오르며 1500원에 더 다가섰다. 만약 1500원을 돌파하면 2008년 11월 이후 약 17년 만에 재진입하게 되는 것이다.
만약 환율이 1500원에 도달하면 국내 기업들은 손실 확대가 불가피하다. 기업이 은행과 맺은 환 헤지(위험분산) 계약상 손실을 막아주는 기준선(환율)이 1500원 전후로 설정돼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기업은 미래 환율 변동으로 발생할 손실 위험을 막기 위해 환 헤지 상품을 은행과 계약하는데, 시장 환율이 기준선을 넘으면 오히려 기업은 트리거(특정 조건)가 발동해 더 낮은 환율로 은행에 달러를 매각해야 하는 등 손실을 보게 된다. 일종의 ‘녹인(Knock-In)’인 것이다. 녹인은 미리 정해둔 한계를 벗어나 손실 구간에 진입하는 걸 말한다.
과거 이러한 환 헤지 상품 구조 때문에 기업이 대거 도산했던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2000년대 후반 발생했던 키코 사태다. 구체적인 통계는 없지만, 당시 키코 사태로 부실화된 기업 수만 수백여 개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도 대부분 은행은 FX 트리거 상품을 운용 중이다.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받은 금융감독원 자료에 따르면 국내 기업이 외국계 은행 두 곳과 맺은 FX 트리거 계약 잔액만 4480만 달러(약 662억원)에 달한다. 다른 은행까지 더하면 그 규모는 수천억원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금융권에선 현재를 과거 키코 사태와 동일 선상에 놓긴 어렵다고 본다. 키코 사태 때 FX 트리거 상품은 기준선을 넘으면 기업이 은행에 빌린 달러를 바로 청산해야 하고, 기업의 손실이 배가 되는 레버리지 구조였던 반면 현재 운영하는 FX 트리거 상품은 이런 구조가 없다는 이유다.
다만 상품 구조는 달라도 고환율에 따른 기업의 부실화는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손실 속도나 규모 차이일 뿐 환율이 높아질수록 리스크가 큰 건 자명하기 때문이다. 기준선을 넘으면 FX 트리거 계약상 기업은 낮은 환율에 달러를 은행에 팔며 현금 유출이 급증하고, 이는 곧 대출을 내준 은행의 부실로 전이될 수 있다.
전문가들은 기업마다 영향이 다를 수 있다며 신중론을 제기한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미 수출을 잘하고 있는 중소기업은 예전처럼 도산하거나 망할 가능성이 크지는 않다”면서도 “예를 들어 수입만 하는 기업은 환율이 올라 문제가 크게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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