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칼럼] 예산은 줄고 제도는 남았다: 백년가게의 미래는 있는가?

  • 김선호 새천년카 대표

김선호 새천년카 대표 사진김선호 제공
김선호 새천년카 대표 [사진=김선호 제공]

2018년 도입된 백년가게 인증제도는 업력 30년 이상인 소상공인 점포를 대상으로 품질, 서비스, 지역사회 기여도 등을 종합 평가해 우수성을 공식 인증하는 제도다. 장기간 생존한 소상공인을 국가적 자산으로 인식하고 체계적으로 육성하겠다는 정부의 의지를 보여주는 정책적 장치다. 20여 년간 자동차 정비소를 운영한 필자는 업력은 미치지 못했지만 국민 추천을 거쳐 2020년 중소벤처기업부에서 백년가게 인증을 받았다.

그러나 도입 취지와 달리 백년가게 예산은 해를 거듭할수록 급격하게 축소됐다. 2018년 8억9000만원에서 출발한 예산은 2022년 76억9500만원까지 확대됐지만 2023년에는 22억9400만원으로 급감했고 2024년 4억2700만원, 2025년 역시 4억원대 초반 수준으로 사실상 동결됐다. 정점 대비 약 94% 삭감된 셈이다. 정책의 지속성과 제도의 신뢰성이 동시에 흔들린 결과다. 
 
예산 축소 영향은 현장에서 즉시 확인된다. 필자의 정비소를 방문한 고객이 인포데스크의 백년가게 인증 POP에 부착된 QR코드를 스캔했으나 ‘사이트에 연결할 수 없음’이라는 오류 메시지만 표시된다는 문제 제기를 했고, 관계 기관에 확인한 결과 지속적인 예산 삭감으로 서버 유지 자체가 어려워졌다는 답을 들었다. 인증제도의 기본적인 인프라조차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은 제도의 상징성과 실효성을 동시에 약화시키는 대표적 사례다.
 
창업 후 5년 생존률이 39.6%에 불과한 현실에서 소상공인이 30년 이상 사업을 지속한다는 것은 불확실한 시장 환경 속에서도 지속 가능한 경쟁력을 입증한 극소수의 생존 모델임을 의미한다. 이들은 단순한 영업체가 아니라 지역경제·고용·산업생태계를 떠받치는 ‘축적된 생산 자산’이며 정부가 전략적으로 보존하고 육성해야 할 국가적 기반이다.
 
따라서 백년가게 예산을 현실화하고 정책적 지원을 강화하는 것은 단순한 지출 확대가 아니라 국가경제의 구조적 안정성을 높이기 위한 투자에 가깝다. 특히 백년가게 인증이 형식적 제도로 전락하지 않도록 벤처기업 인증의 혜택 체계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인증 유효기간 동안 정부 지원사업 참여 시 가점 1점 부여, 종합소득세 50% 감면, 보증비율 상향(최대 95%), R&D 및 TIPS 성장 지원 연계, 고용장려금 지원, 장기근속자 장려금 지급 등 실질적 혜택 제공이 제도 활성화를 위한 필수 조건이다.
 
기술 혁신 창업 단계에서 벤처기업 인증을 통해 생존 역량을 확보하고, 이후 백년가게 인증과 연계된 혜택을 기반으로 성장해 45년 이상 지속 가능한 명문장수기업으로 발전하도록 돕는 것은 국가경제의 기초체력을 강화하는 장기적 로드맵과도 일치한다. 소상공인의 축적된 경험·기술·신뢰는 단기간에 대체할 수 없는 자산이며 이를 지속 가능한 산업 생태계로 연결하는 게 정부 정책의 핵심이 돼야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백년가게 육성을 위한 관심과 지원 예산을 지금이라도 확보하고, 대한민국 산업의 근간을 이루는 소상공인에 대한 지원을 국가 경제의 체질을 강화하는 전략적 정책으로 재정립해야 한다. 제도의 의지만큼이나 실행 능력이 뒷받침될 때 백년가게는 이름 그대로 국가의 백년대계에 기여하는 지속 가능한 경제 기반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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