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대통령보다 걸음이 빠른 당대표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추진력과 결단력이 돋보이는 정치인이다. 한 번 약속한 일은 원칙에 따라 신속히 처리하는 성격은 지지층에게 큰 인기를 얻는 요인이다. 현재도 당대표실 안팎에서는 정 대표가 연말까지 개혁 입법을 마무리 하고 싶어 한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반면 이재명 대통령은 신중함을 바탕으로 국정을 이끌어가고 있다. 자신을 지지하지 않은 국민들까지 설득하며 통합의 정치를 실현하려는 만큼, 모든 발걸음이 납득 가능하고 합리적이려고 노력한다. 두 정치인의 속도 차이는 여기서 비롯된다.

정 대표의 추진력과 결단력은 그가 당의 일원으로 있을 때는 장점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집권여당의 대표는 대통령의 속도에 맞춰야 하는 자리다. 당은 개혁 과제에 있어 반걸음 앞서 나가야 대통령실의 부담을 덜 수 있다고 하지만, 되려 반걸음 빠른 속도가 협업을 어렵게 만들 수도 있다. 국민의 눈에는 그 미세한 엇박자가 불필요한 갈등으로 비칠 수 있다.

지난 4일 시정연설 이후 이 대통령과 정 대표는 우원식 의장과 예정에 없던 환담을 가졌다. 30여 분간 비공식으로 진행된 환담에서 어떤 논의가 오갔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이후 포착된 두 사람의 모습은 '당정 간 엇박자'를 그대로 보여주는 듯했다. 

환담을 마치고 국회 본청 로텐더홀 계단을 내려오던 순간이었다. 밝은 표정으로 이 대통령에게 말을 건네며 계단을 내려가던 정 대표는 자신이 이 대통령보다 앞서 있다는 걸 눈치채고는 뒤늦게 속도를 늦췄다. 계단을 내려온 후 이 대통령이 정 대표에게 먼저 악수를 건네며 좋은 그림으로 마무리됐지만, 대통령과 엇박자가 난 장면은 현 정치 시국에 대입돼 긴장감 있게 읽혔다.

최근 당 지도부가 재판중지법 추진 과정에서 "당정 간 혼선은 없었다"며 수습에 나섰지만, 혼란은 여전히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이유는 분명하다. 당 지도부의 개혁 드라이브가 대통령실의 속도보다 빨랐다는 점이 국민 눈에도 명확히 보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명청 갈등설'을 진화하기 위해 '베드캅–굿캅'이라는 진부한 역할극을 꺼내 들고 있지만, 무엇보다도 당과 대통령실이 국정 동반자로서 보폭을 맞추는 일이 필요해 보인다.
 
김지윤 기자
김지윤 정치사회부 기자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댓글0
0 / 300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