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요한 시사평론가]
30년도 더 된 오래된 이야기인데, 까까머리 고등학교 시절에도 머리를 기를 수 있는 특권이 있는 친구들이 있었다. 당시 고등학교만 아니라 중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모두 학군단 편제로 된 ‘군사학교’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머리는 모두 까까머리였다. 84년 학원 자율화 조치 이후 일부에서 교복이 아닌 사복, 그리고 두발 자율화 이야기가 나왔지만, 그냥 시늉일 뿐이었다. 학교는 곧 군대였고, 선생도 군인이나 마찬가지였다. 학생들은 그저 병사일 뿐인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거의 ‘합법적’으로 머리를 기를 수 있다는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웠는데, 필자의 학교 그것도 같은 반에 그런 친구들이 몇몇 있었다. 바로 ‘백댄서’가 되겠다는 친구들이었다. 후에 들은 바로는 당시 KBS ‘젊음의 행진’이라는 쇼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짝꿍들’이라는 백댄서 소속이기 때문에 머리를 기를 수 있었다는데, 이것이 나중에 뻥~으로 밝혀져 체육 선생에게 모두 머리를 박박 깎기게 되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였다. 완고했던 그때 담임 선생님은 한마디 했다.
“이 딴따라 새끼들~ 나라 꼴이 어찌 되려고...”
그랬다. 그 시기는 ‘테레비’를 비롯해서 흘러나오는 음악은 그저 온갖 사랑 타령에 갇혀 개인의 감정조차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던 ‘군부독재’ 정권 시절이었다. 그렇게 나라 꼴을 걱정하던 선생에게 결코 전두환 학살 정권을 규탄하는 마음은 십 원어치도 없었을 것이다. 그저 규정되어 있는 시스템(학생은 공부를 해야만 하고, 사업가는 사업을 해야 하고, 정치인은 정치만 해야 한다는 당시의 공고한 논리)에서 조금이라도 엇나갈라치면 그게 꼴 보기 싫은 게다.
사실 지금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K팝 열풍을 보면, 막상 눈으로 보면서도 믿기지 않는 것이 중장년층의 솔직한 심정이다. 그때 착한 어린이들은 이담에 커서 훌륭한 의사가 되든지, 대통령이 되어야 했다. 특이하게도 필자는 “검사가 되겠다.”라고 이야기했단다. 왜 그랬는지 기억에 없다. 어머니에게 들었다. 그런 시절에 과감하게 ‘백댄서’가 되겠다는 꿈을 가졌던 친구들이 지금 생각하면 그저 대견하다.
당시에 딴따라가 되겠다고 하던 이들의 피에는 이미 조선시대 ‘광대’의 DNA가 흘렀다(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광대’는 남사당패를 포함한 유랑 예인 집단을 통칭하는 표현인데, 이들은 조선 후기 신분제 사회에서 가장 천대받는 계층이지만, 당시 민중과 서민층에게 큰 환영을 받으며 그들의 애환을 달래면서 민중들의 의식을 일깨우는 역할을 했다고 전해진다.
그렇다면 ‘광대’는 그냥 나왔겠는가? 아니다. 더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우리의 옛 모습이 가장 잘 나타난 자료가 바로 삼국지 위서 동이전이다. 여기에는 우리 한반도 일대에 나타난 고대 국가(중국인들은 “한(韓)은 세 종족이 있으니, 첫째는 마한, 둘째는 진한, 셋째는 변한이다.”라고 설명했다.)의 제천의식이나 풍속 등에 관해 자세한 기록이 나와 있다. 그들의 눈에 비친 3세기 우리 한인(韓人)의 모습은 "羣聚歌舞(군취가무)“ 즉 떼를 지어 노래하고 춤을 추며, ”飲酒晝夜無休(음주주야무휴)“ 즉 밤낮 쉬지 않고 술을 마신다, 이다. 떼를 지어 노래하고 춤을 추고 밤낮으로 쉬지 않고 술을 왜 마시는가? 우리 조상님들은 이렇게 제사를 지내면서(祭鬼神·제귀신) 놀았다. 집단으로 신이 들려서 밤낮으로 춤을 추면서 술을 마신다니, 역사적으로 맺힌 한(恨)을 이렇게 흥(興)으로 풀었다. K팝 팬들의 ‘떼창’은 이미 한반도 고대 국가에서도 행해지고 있었다. DNA는 그렇게 유전되었다.
문화는 민주주의와 함께 간다
대통령 직속 대중문화교류위원회 위원장 가수 박진영씨가 한중 정상회담 만찬장에서 시진핑 주석에게 북경에서 대규모 K팝 공연을 하자고 제안했고, 시진핑 주석은 이 제안에 호응해서 왕이 외교부장에게 즉각 지시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한국 언론은 드디어 한한령이 해제될 것이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한한령의 시작은 2016년 ‘사드 배치’에 대한 괘씸죄로 시작되었지만, 2021년을 기점으로 그 성격이 바뀌었다. 중국은 2021년 한국의 아이돌 선발 리얼리티쇼 ‘프로듀스 101’을 모방한 ‘청춘유니3’이 큰 인기를 끌었다. 문제는 그 프로그램 스폰서사 멍뉴유업이 우유 제품 뚜껑에 있는 큐알(QR)코드를 찍어 자신이 지지하는 가수에게 여러 번 투표할 수 있는 마케팅을 한 것인데, 팬덤들은 우유를 잔뜩 사고 큐알 코드만 찍고 나서 우유는 쏟아버린 것이었다. 무려 27만 병이라고 한다. 중국은 발칵 뒤집혔고 중국 당국은 경악했다. 강력한 팬덤의 영향력에 놀랐고, 그들의 행동력과 그 실천에 놀라고 만 것이었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라고 외치던 공산당은 팬덤들이 서로 단결하고 연대해서 어떤 실천적 행동을 단행하자 지레 겁먹었다. 혹시나 정치조직을 뛰어넘는 그들의 단결력이 중국 공산당 지도부에 대한 반기로 번지게 된다면, 도무지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여 필자는 박진영이 시진핑 주석에게 북경에서의 K팝 공연을 제안하고 시진핑이 왕이 외교부장에게 검토를 지시했다 하더라도, 흔쾌히 성사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본디 대중문화의 지속적 발전과 이를 통한 영향력의 확대는 실질적인 민주주의가 기능하는 체제에서나 가능하기 때문이다. 말로는 국민이 주인이고 체제가 민주주의라고 강변해도(중국의 공식 명칭은 무려 ‘중화 인민 공화국(中華人民共和國)’이다. 중국 인민들의 나라라는 뜻인데, 실제 그런가? 인민 해방군이 인민을 진압하는 국가 아니던가?) 실질적으로는 1인 독재이고, 독재체제인 곳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 곳에서 문화의 꽃이 피는 것을 기대하는 것은 우물에서 숭늉 찾는 것이다. 이런 점을 생각했을 때, 우리 대한민국에서 본격적인 K문화의 힘을 발휘하기 시작한 것이 김대중 정권 시절부터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딴따라 기질이 충만한 우리 한반도인들, 비록 허리가 잘려 온전히 그 기능을 다하지는 못하지만, 그런 상황 속에서도 K컬처의 무시무시한 힘을 전 세계에 널리 퍼뜨리고 있다. 이재명 정권이 ‘국가전략산업’으로 선택할 자격이 충분하다. 문화는 민주주의와 함께 간다. 우리 문화가 세계에 퍼져 나가는 길은 곧 민주주의 전파의 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바꿔보자
"모든 이론은 회색이며, 오직 영원한 것은 저 푸른 문화의 나무다."
필자 주요이력
- 前 정치컨설턴트
- 前 KBS 뉴스애널리스트
- 現 경제민주화 네트워크 자문위원
- 現 최요한콘텐츠제작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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