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자민당과 공명당이 다카이치 사나에 신임 총재 체제하에서 갈등을 좁히지 못하고 1999년부터 이어져 온 연정을 끊게 됐다. 일본 정치사에 한 획으로 남을 '자민·공명 연립 붕괴'는 일본 정치권 내에서도 갑작스러 사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당장 다카이치 총재가 무사히 총리직에 오를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부터, 총리 자리에 앉더라도 정권이 오래 지속되지는 못할 것이라는 전망 등도 나오고 있다.
돌이켜보면 공명당이 자민당에 이별을 고하게 된 결정적인 장면이 있다. 지난 10일 있었던 양당 당수 회담보다 일주일가량 앞선 4일. 이날은 다카이치 후보가 라이벌 후보인 고이즈미 신지로 후보를 누르고 총재 선거에서 승리한 날이었다.
다카이치 신임 총재는 선거 승리 직후 국민민주당의 다마키 유이치로 대표와 비밀리에 회동했다. 일본 언론들은 이를 보도하며 자민당이 새로운 협력 정당을 찾고 있는 것으로 해석했다. 다카이치 총재는 '이미 잡아 놓은 물고기'인 공명당뿐 아니라 국민민주당과도 힘을 합해 여소야대 정국을 타개하고자 하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중의원(하원)과 참의원(상원) 선거에서 모두 패한 상황에서 다카이치 총재의 이 같은 계획은 납득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이 과정에서 공명당에 대한 배려를 충분히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함께 연립 여당을 구성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카이치 총재가 공명당의 사이토 데쓰오 대표를 만난 것은 이날(4일)이 처음이었다. 다카이치 총재는 의원 시절부터 공명당 측과 아무런 접촉을 가지지 않았던 것이다.
한편 일본 현지 언론들은 공명당이 26년 만에 자민당과 결별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자민당이 그동안 정치자금 문제 등에 대한 공명당의 위기감과 반발을 경시해 온 결과라고 지적하고 있다.
10일 회담에서 공명당은 연립 유지 조건으로 자민당에 기업·단체 헌금 규제 강화를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재는 즉답을 피하는 대신 "당으로 가져가 논의하겠다"며 "3일은 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공명당은 "검토의 시간은 충분히 줬다"며 양보하지 않았다.
요미우리신문은 "공명당이 자민당에 강경한 자세를 취한 것은 정치자금 문제에 대한 공명당 지지자들의 불만이 폭발 직전까지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요미우리는 또한 다카이치 총재가 당선 직후 발표한 자민당 집행부 인사에 정치자금 스캔들의 당사자인 하기우다 고이치 의원을 간사장 대행으로 기용하면서 공명당의 불만이 더욱 커졌다고 전했다.
마이니치신문도 공명당의 불만이 분출된 계기 중 하나가 "공명당을 경시한 인사"라며 하기우다의 간사장 대행 기용을 지적했다. 이밖에도 당 주요 간부 인사에 '다카이치 컬러'인 우파색이 강한 인물이 포함된 것도 공명당의 심기를 거슬렀다고 덧붙였다.
일본 언론의 한 기자는 이밖에도 "다카이치를 선거에서 지원한 아소 다로 전 총리와 공명당의 사이가 좋지 못한 점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아주경제에 말했다. 실제 2023년 당시 아소 부총재는 한 강연에서 연립 여당인 공명당 대표를 비롯한 간부들을 '암'이라고 지칭해 공명당의 반발을 산 바 있다. 공명당이 북한·중국 등 주변국의 미사일 기지 등을 직접 타격하는 '적기지 공격 능력(반격 능력)' 보유에 적극적이지 않았다는 점을 비판하면서 이러한 막말을 한 것이다.
여하튼 공명당의 연립 이탈로 다카이치 총재의 총리 선출도 장담할 수 없게 됐다. 다카이치 총재가 임시국회의 총리 지명 선거에서 무사히 총리로 선출된다 하더라도 국정 운영은 가시밭길이 될 전망이다. 가장 큰 타격은 앞으로 있을 선거에서 드러날 가능성이 크다. 자민당과 공명당 협력은 선거 협력을 기반으로 해 온 만큼, 자민당에는 뼈아픈 부분이다.
공명당은 종교 단체 '창가학회'를 지지기반으로 하고 있어, 이들이 전국 자민당 각 후보에게 1만~3만 표씩 몰아줬다. 대신 자민당은 일부 소선거구에 후보를 내지 않고 공명당 후보의 당선을 도왔다.
마이니치는 자민당과 공명당의 선거 협력이 사라짐에 따라 차기 중의원 선거에서 자민당 후보의 당락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를 계산해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2024년 지난 중의원 선거 당시 소선거구에서 당선된 132명 가운데 25~45명이 낙선 위기에 처할 것으로 추산됐다. 비례대표를 포함한 당선자 전체(191명)의 13~24%에 해당된다.
마이니치는 "자민당 내에는 공명당과의 결별로 자민당에서 멀어진 보수표를 되찾을 수 있다는 견해도 있지만, 차기 중의원 선거에서는 참정당 등이 후보를 늘릴 방침"이라며 정세가 유동적이라고 덧붙였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