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과거 친분을 언급하며 조건부 북·미 대화 가능성을 시사했다. 우리 정부에 대해서는 '적대적 두 국가론'을 앞세워 선을 그으며 대미·대남 메시지에 온도 차를 뚜렷이 드러냈다. 오는 10월 말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있는 가운데 이를 계기로 북·미 정상 간 만남이 성사될지 주목된다.
22일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김정은 위원장은 전날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3차 회의 연설에서 "개인적으로는 현 미국 대통령 트럼프에 대한 좋은 추억을 가지고 있다"며 "미국이 허황한 비핵화 집념을 털어버리고 현실을 인정한 데 기초해 우리와 진정한 평화 공존을 바란다면 우리도 미국과 마주 서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동시에 그는 "핵을 포기시키고 무장해제시킨 다음 미국이 무슨 일을 하는가에 대해서는 세상이 이미 잘 알고 있다"며 "우리는 절대로 핵을 내려놓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미국이 북한에 대해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한다면 대화가 가능하다는 조건을 분명히 한 셈이다.
김 위원장이 직접 '비핵화 포기'를 북·미 대화를 위한 선결 조건으로 언급하며 대화 용의를 전한 것은 트럼프 2기 출범 이후 처음이다. 특히 다음 달 APEC 정상회의 참석차 트럼프 대통령 방한이 예정된 만큼 상황에 따라 북·미 간 회동 가능성도 제기된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연내에 김 위원장을 만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의) APEC 방한을 앞둔 시점에서 (이 같은 내용이) 나온 것은 '깜짝 정상회담' 가능성을 열어두는 신호"라고 분석했다.
반면 김 위원장은 남한을 향해선 한층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그는 "(남한은) 모든 분야가 미국화된 반신불수의 기형체, 식민지 속국이며 철저히 이질화된 타국"이라고 비난하며 "정치, 국방을 외세에 맡긴 나라와 통일할 생각이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또 우리 정부가 최근 제시한 '중단-축소-비핵화' 3단계 비핵화론에 대해서도 "전임자들의 숙제장에서 옮겨 베껴온 복사판"이라며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정부는 이에 대해 원칙적 대응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통일부는 "정부는 긴 안목을 갖고 긴장 완화와 신뢰 회복을 통해 남북 간 적대성 해소와 평화적 관계 발전을 추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외교부 역시 "한·미는 향후 북·미 대화를 포함해 대북정책 전반에 관해 긴밀한 소통과 공조를 지속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