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난 이 게임 해봤는데"… 반복되는 부동산 실패 정책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아파트 단지. [사진=연합뉴스]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아파트 단지. [사진=연합뉴스]


“난 이 게임을 해봤어요.”

최근 화제가 된 드라마 ‘오징어 게임2’에서 주인공 성기훈이 외친 대사다. 부동산 대책이 발표될 때마다 국민들이 떠올리는 심정이 딱 이렇다. 과거 문재인 정부 시절 수십 차례의 대책이 나왔지만, 돌아온 결과는 집값 폭등이었다. 그래서 이번 정부 대책이 나올 때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문재인 시즌2”라는 비아냥이 쏟아진다. 정부의 말보다 집값이 더 오를 것이라는 냉소가 자리 잡은 것이다.

국민의 반응이 싸늘한 이유는 명확하다. 공급 계획은 늘 거창하지만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기 때문이다. 어디에, 어떻게, 언제 집을 지을지조차 구체성이 부족한데, 수십만 호 공급을 약속한다고 해서 신뢰가 생기지 않는다. 그러나 문제의 본질이 과연 공급 부족에만 있는지는 의문이 생긴다. 5000만 인구 모두가 서울에 살고 싶다고, 서울에 5000만 가구를 짓는 게 해결책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부동산 문제,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서울 부동산 폭등의 문제는 서울에 모든 주택 구매 수요가 쏠리는 구조에 있다. 교육, 일자리, 교통, 의료, 문화 인프라가 집중된 서울은 누구나 집을 갖고 싶어 하는 공간이다. 그 자체로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이를 왜곡·심화시킨 것은 그동안 손 놓고 있거나, 잘못된 처방을 내린 정부의 정책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똘똘한 한 채’ 우대 정책이다. 지방에 소형 아파트 한 채와 서울의 중저가 아파트 한 채를 가진 사람은 다주택자로 분류돼 높은 세금을 낸다. 반대로 서울 요지의 20억원이 넘는 고가 아파트를 한 채 보유한 사람은 오히려 세금 부담이 적다. 이 역설적인 구조는 국민들에게 “서울에 고가 아파트 한 채만 있으면 가장 유리하다”는 잘못된 메시지를 줬고, 결국 수요를 전국에서 서울로 몰리게 만든 주된 원인으로 작용했다.

한 채에 수억원을 호가하는 아파트에 지나치게 낮은 세금이 매겨지는 것도 서울 쏠림 현상을 부추겼다. 수천만원짜리 자동차도 연간 수십만원의 자동차세를 내는데, 20억원 안팎의 아파트 소유자가 부담하는 보유세는 300만원 안팎에 불과하다. 세금을 더 많이 내게 하는 것이 만병통치약일 수는 없지만, 다른 자산 보유 대비 지나치게 낮은 부동산 세금은 서울 아파트는 ‘보유만 해도 남는 장사’라는 인식을 더 굳어지게 만들었다.

혹자는 부동산 가격이 오르는 것에 정부가 왜 개입해야 하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하는 시장 법칙에 따라 가격이 결정될 터인데, 국민 경제 활동을 정부가 너무 제약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하지만 잘못된 정책에 따른 서울 부동산 가격 폭등은 사회 전체에 심각한 부작용을 가져올 수밖에 없어 마냥 두고 보기만은 어렵다.

몇 년, 아니 몇 달 새 수억원씩 치솟는 서울 아파트 가격은 노동의 가치와 근로 의욕을 꺾어 놓고 있다. 열심히 일해 돈을 수년간 모은 사람보다, 단 한 번의 부동산 투기로 몇 배, 아니 수십, 수백 배의 소득을 올리는 사회에서 어느 누가 열심히 일을 하려고 할까. 서울 부동산 불패 신화는 경제 전반의 활력과 공동체의 신뢰를 갉아먹는 독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정부가 진정으로 신뢰를 얻고 싶다면, 허황된 공급 청사진이 아니라 서울 수요 억제책을 내놓아야 한다. 세제의 형평성을 바로잡고, 똘똘한 한 채 같은 왜곡된 시그널을 없애야 한다. 더 나아가 지방 대도시의 교육·일자리·인프라를 키워 서울 독점 구조를 완화하지 않으면, 어떤 공급 대책이 나와도 국민적 신뢰를 받기 어렵다.

실현성 없는 공급대책, 의미가 퇴색된 다주택자 규제, 지지율이 떨어질까 손대지 못하는 세제안 가지고는 얽히고설킨 부동산 난제를 해결할 수 없다. ‘난 이 게임을 해봤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새로 들어선 정부는 ‘이번에는 그 게임과 달라요’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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