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이 비처럼 내리다…로랑 그라소 '미래의 기억들'

  • 고대의 화산분출·중세의 종말·지금의 기후위기 연상

  • 대표작 '오키드 섬', 자연과 인공 뒤섞여

전시 전경 사진헤레디움
로랑 그라소(Laurent Grasso) 개인전 '미래의 기억들(Memories of the Future)' 전시 전경 [사진=헤레디움]


네온 불꽃이 빗방울처럼 뚝뚝 떨어진다. 머나먼 고대의 화산 분출, 중세시대의 종말적 재앙, 혹은 매년 최고치 더위를 경신하는 오늘날의 기후위기를 연상시킨다.
 
16일 찾은 대전 헤레디움(HEREDIUM)의 로랑 그라소(Laurent Grasso) 개인전 '미래의 기억들(Memories of the Future)'은 과거, 현재, 미래로 이어지는 시간의 뒤엉킴을 통해 지금 이 순간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준다.
 
이번 전시에서는 로랑 그라소의 작품 20여점을 볼 수 있다. 전시장의 중심에는 자연과 인공이 뒤섞인 대만 란위섬(오키드 섬)에서 촬영된 영상 대표작 ‘오키드 섬(Orchid Island)’이 자리한다. 섬 주변은 땅으로 푹 가라앉은 묵직한 구름과 타오르는 불꽃 빗방울이 둘러싼다. 자연, 기후위기, 문명, 현실, 과거 등이 뒤엉켰다. 
 
Studies into the Past 사진헤레디움
Studies into the Past [사진=헤레디움]

 
‘오키드 섬(Orchid Island)’은 대만 란위섬에서 촬영한 영상에 그래픽 작업을 더한 작품이다. 열대 섬의 풍경 위를 떠다니는 검은 직사각형은 인공비를 내리는 듯, 섬 곳곳과 섬 주변 바다위를 돌아다니며 음침한 분위기를 풍긴다.
 
대만 남동쪽 해안에 있는 화산섬 오키드 섬은 대만의 일제강점기 때부터 민족학 연구 등을 이유로 일반의 출입을 금해,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한 곳이다. 하지만 1982년 섬 주민들과 논의 없이 원전을 위한 핵폐기물 처리 시설이 건립됐다. 자연과 인공, 전쟁, 정치, 기후 등 여러 이슈가 혼재된 장소다.
 
사진헤레디움
로랑 그라소(Laurent Grasso) 개인전 '미래의 기억들(Memories of the Future)' 전시 전경 [사진=헤레디움]

로랑 그라소는 최근 서면 인터뷰를 통해 "대만의 란위섬(Orchid Island)을 배경으로 한 이 작업에서는 정치적, 군사적, 생태적 위협이 프로젝트의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며 "정체불명의 검은 사각형이 하늘을 떠다니는 이미지는 불안의 실체 없는 형상을 상징한다"고 말했다. 이어 "장소는 언제나 어떤 보이지 않는 역사나 감정을 품고 있다"며 "저는 이러한 기운에 큰 주의를 기울인다"고 덧붙였다.
 
인공물 사진헤레디움
인공물(ARTIFICIALIS) [사진=헤레디움]

전시장 2층에서는 인공물(ARTIFICIALIS) 시리즈를 볼 수 있다. 후쿠시마 원전 사태를 통해 식물의 도상이 바뀌겠다는 상상에서 출발한 작품이다.
 
로랑 그라소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유포된 이미지에서 꽃의 영감을 받았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방사능 영향으로 꽃들이 변형됐다며 사진을 올린 사람들이 많았어요. 실제 사실 여부는 확인하기 어렵지만 그런 이미지들이 제게 깊은 인상을 남겼죠."
 
‘미래의 식물표본실(Future Herbarium)’도 이러한 시각이 반영됐다. “이 시리즈에는 하이브리드 종들, 즉 고전적 아름다움과 불안감을 동시에 품은 가상의 꽃들이 등장하죠. 미래적이고 변이된, 불안정한 생명체들이에요."
 
이번 전시는 내년 2월 22일까지 이어진다. 매주 월요일과 화요일은 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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