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중부의 찌는 듯한 여름 오후. 천위린(陳玉琳·12)은 바이올린을 턱 아래에 고정한 채 네 명의 반 친구들과 함께 "나와 나의 조국"을 능숙하게 연주했다. 허난(河南)성 주마뎬(駐馬店)시 췌산(確山)현 출신인 이 학생들은 9월 초 열릴 중국인민항일전쟁(1931~1945) 승리 80주년을 기념하는 학교 공연을 위해 연습 중이었다.
허난성 남부 구릉 지대에 위치한 췌산은 전쟁 시기 중국공산당의 주요 거점이었다. 당시 류사오치(劉少奇), 리셴녠(李先念), 왕전(王震), 장아이핑(張愛萍) 등 국가 지도자급 간부들과 장군들이 췌산에서 활동하며 항전했다. 수많은 당과 군 엘리트들이 이곳에서 훈련을 받았으며 중국공산당이 이끄는 신사군(新四軍) 부대 역시 이곳에서 진격해 침략군과 맞서 싸웠다.
지난 10년 동안 췌산은 지리적 제약으로 인한 여러 어려움을 극복하며 절대 빈곤에서 벗어나려 노력했다. 오늘날 이 지역은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변화를 만들어냈다. 현지 여러 공립학교가 무료로 바이올린 레슨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중국의 여러 도시에서도 보기 드문 일이다.
천위린은 2년 넘게 학교에서 바이올린 레슨에 참여했다. 70명이 넘는 반 친구들 역시 악기와 전문 교육을 무료로 받았다. 이러한 기회를 가능하게 한 배경에는 췌산에서 성장한 바이올린 제조업이 있다.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 바이올린 중 무려 90%가 중국에서 생산되며 이 중 중국 중고급 수공예 바이올린의 80%는 췌산에서 나온다.
오늘날 이 시골 마을에서는 매년 40만대가 넘는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더블베이스가 생산된다. 이는 중국 바이올린 총 생산량의 30% 이상을 차지한다. 대부분은 유럽, 북미 등지로 수출된다. 이러한 놀라운 수치는 해당 산업이 지역 경제뿐 아니라 췌산의 문화적 정체성까지 얼마나 깊이 변화시켰는지를 보여준다.
췌산 바이올린 산업단지의 학생 연습실 위층에서는 장인들이 줄지어 악기를 자르고 조각하고 사포질하고 광택을 내며 부지런히 작업하고 있다. "바이올린 하나를 완성하려면 10개가 넘는 핵심 단계를 거쳐야 합니다." 단지 대표 제조업체 중 하나인 하오윈(昊韻)악기회사 생산작업장 주임 장허시(蔣賀喜)의 말이다. "목재 선택부터 최종 조율까지 모두 수작업으로 이뤄지고 있죠."
장허시는 이 과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2001년 당시 18세였던 그는 베이징의 바이올린 제작 공장에서 일하기 위해 췌산을 떠났다. 더 나은 수입을 위한 선택이었다. 현지인들은 빠르게 기술을 익혔고 수년간의 고된 반복 작업 끝에 췌산 노동자들은 16세기 이탈리아에서 유래된 기술을 완벽히 터득했다. "한때 농기구를 쥐던 손이 이제는 세계적인 바이올린을 만들고 있습니다."
2015년 장허시는 현지 정부의 바이올린 산업 활성화 정책에 따라 숙련된 장인들이 모여든 췌산으로 귀향했다. 췌산현은 산업단지 조성을 위해 약 14㏊(헥타르)의 부지를 배정하고 공장 임대료 면제, 세금 감면, 허가 제도 간소화 등 투자 유치 지원책을 마련했다. 그 결과 소규모 작업공방에서 출발한 췌산은 현재 144개 제조업체와 작업장을 갖춘 산업 클러스터로 성장했으며 원자재 가공부터 조립 부품 생산까지 완벽한 공급망을 갖췄다.
장허시가 근무하는 하오윈악기회사에는 200명 이상의 직원이 있으며 대부분 인근 마을 출신이다. "신입 직원들은 생산 라인에 합류하기 전 3개월간의 교육을 받습니다." 궈신서(郭新社) 하오윈악기회사 사장은 "이러한 일자리는 전통 농업보다 훨씬 높은 급여를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췌산현의 현악기 총 생산액은 연간 약 6억 위안(약 1170억원)에 달한다.
현지 정부 관계자 장위샤(臧玉霞)는 췌산의 변화가 역사적 뿌리 위에서 가능했다고 설명한다. 그의 아버지(96)는 신사군 소속으로 1940년대 췌산에서 일본군과 싸웠다. 장위샤는 "당시 췌산 사람들은 총을 들고 항일 투쟁을 벌였지만 오늘날 우리는 바이올린으로 미래를 건설하고 있다"고 말했다.
췌산 바이올린 제조업의 성장은 단순한 제조업을 뛰어넘어 문화적 영역까지 영향력을 확장하고 있다. 거리는 방과 후 악기 케이스를 멘 아이들로 붐비고 지역 음악교실 앞 도로에는 바이올린 모양의 가로등이 늘어서 있다.
"자체 브랜드를 개발하고 맞춤형 프리미엄 악기를 제공하며 풍부한 음악적 배경을 가진 현악기 제작자를 양성하는 것이 췌산 바이올린 제작 산업의 미래입니다." 궈신서 사장의 말이다. 이러한 비전은 하오윈악기회사가 2023년 초 현지 정부와 함께 무료 바이올린 교육 프로그램을 시작하는 계기가 됐다. 회사는 천위린이 다니는 학교를 포함해 참여 학생들에게 무료 악기를 제공하고 있다.
학교는 현재 2학년부터 매주 바이올린 레슨을 제공하고 있으며 다음 학기부터는 1학년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장허시는 췌산에서 더 많은 아이들이 악기를 배우는 모습을 보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지난 8년간 그는 주말마다 아들의 바이올린 레슨을 위해 췌산 관할 지급(地級) 시인 주마뎬까지 차를 몰고 다녔다. 이제 15세가 된 그의 아들은 이미 중국 최고 명문 음대 중 하나인 중앙음악학원 바이올린 전공 시험에서 8급을 달성했다.
"저는 성인이 된 후 줄곧 바이올린을 다뤄왔지만 아직 음표 하나 제대로 연주하지 못합니다." 장허시는 "이 악기가 다음 세대에게 더 큰 의미가 되길 바랍니다. 단순한 생계 수단이 아니라 삶의 일부가 됐으면 합니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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