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규직과 같은 날 퇴직한 기간제 근로자에게 성과급을 지급하지 않은 것은 차별이라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1부(부장판사 김준영)는 현대아이티씨가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차별시정 재심판정 취소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이번 판결은 기업이 노조와 단체협약을 근거로 성과급 지급 대상을 정했다 하더라도, 합리적 이유 없이 기간제 근로자를 배제한다면 차별에 해당한다는 점을 명확히 한 의미 있는 결정으로 평가된다.
현대아이티씨는 모회사 현대제철의 협력업체로, 2021년 9월 근로계약을 맺은 기간제 근로자들과 2022년 한 차례 계약을 갱신했다. 그러나 이들은 2022년 12월 31일 계약 만료로 퇴사했다. 이후 2023년 1월 18일 현대아이티씨와 교섭대표 노조가 체결한 임금협약에는 △2022년 12월 31일 정년퇴직한 정규직 근로자와 △협약 체결일 기준 1개월 이상 근무한 재직자에게 경영성과금과 격려금을 지급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로 인해 같은 날 퇴직한 정규직 근로자는 성과급을 받았지만, 기간제 근로자는 대상에서 제외됐다.
퇴직한 기간제 근로자들은 이를 차별이라며 충남지방노동위원회에 시정을 신청했고, 충남지노위는 이들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이어 중앙노동위원회 재심에서도 같은 결론이 나오자, 현대아이티씨는 법원에 재심판정 취소 소송을 제기했지만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단체협약 효력과 차별시정 청구권
이번 사건의 핵심 쟁점은 크게 두 가지였다. 퇴직한 기간제 근로자들이 차별시정을 청구할 수 있는지 여부, 성과급 지급 대상에서 기간제 근로자를 제외한 것이 합리적 사유가 있는지 여부였다.
현대아이티씨 측은 우선 근로자 신분이 없는 퇴직자에게 차별시정 청구권을 인정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단체협약 체결 시점(2023년 1월 18일)에는 이미 근로계약이 종료됐으므로, 그 이전에 퇴사한 기간제 근로자에게 소급해 성과급을 지급할 의무가 없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재판부는 “차별시정 신청 자격은 사용자가 차별적 처우를 한 시점에 근로자 신분이 있는지 여부에 한정되지 않는다”며 이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특히 기간제법은 상여금·성과급을 포함한 임금 전반에 차별금지 규정을 두고 있고,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에도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다. 즉, 기간제 근로자가 이미 퇴사했다 하더라도 근로계약 기간 중 정규직과 동등한 업무를 수행했다면 차별적 처우에 대한 시정을 요구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단체협약 한계와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
현대아이티씨는 또 다른 주장을 펼쳤다. 이번 성과급은 경영성과에 따른 일시적 금품이고, 특히 장기근속을 장려하는 목적이 있었으므로 정규직 중심의 지급이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교섭대표 노조와 체결한 단체협약이 근거이므로 법적 정당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판결문에 따르면 △현대아이티씨가 기간제 근로자와 정규직 근로자가 동일하거나 유사한 업무를 수행했다는 점을 부인하지 않았고, △단체협약 체결 과정에서 기간제 근로자는 노조 가입 자체가 배제돼 교섭 과정에 참여할 기회가 없었다는 점이 특히 문제로 지적됐다.
재판부는 “노조와의 합의는 사용자의 자율권을 존중하는 영역이지만, 합리적 이유 없이 기간제 근로자를 배제하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며 “특히 기간제 근로자들은 협약 체결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통로조차 없었으므로, 이들에게 성과급을 지급하지 않은 것은 합리적 이유 없는 차별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이번 판결은 단체협약의 효력이 노동관계 당사자 간 합의로 존중되더라도, 헌법과 법률이 보장하는 평등 원칙을 침해할 수 없다는 점을 확인한 것이다.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이 단체협약보다 상위 규범으로 작용한다는 법리적 의미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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