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씨네 리뷰] 자극 없어도, '여름 영화'로 충분하잖아…'악마가 이사왔다'

"낭만적이네요. 이 조명, 온도, 습도···." 한 예능 프로그램의 출연자가 남긴 말이다. 장소, 날씨, 몸 상태 등 하나하나가 모여 '분위기'를 만든다는 의미다. 영화도 마찬가지. 그날의 기분, 나의 경험이 영화의 '평가 기준'이 되기도 한다. 이처럼 '최씨네 리뷰'는 필자의 경험과 시각을 녹여 관객들에게 영화를 소개하는 코너다. 조금 더 편안하고 일상적으로 담아내고자 한다. <편집자 주>
 
영화 악마가 이사왔다 사진CJ ENM
영화 '악마가 이사왔다' [사진=CJ ENM]

'여름 영화' 하면 으레 떠올리는 이미지들이 있다. 막대한 제작비를 들인 블록버스터, 스타 배우와 스타 감독의 조합, 빠르고 강렬한 장르 영화들. 대체로 이런 작품들이 '여름 텐트폴 영화'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2019년 개봉한 영화 '엑시트'는 그 공식을 보기 좋게 뒤집은 작품이었다. 신인 이상근 감독과 배우 조정석, 임윤아의 의외의 조합은 익숙한 재난 장르 안에서 참신한 리듬을 만들어냈고, 입소문을 타며 942만 관객을 불러모았다.

6년 뒤, 이상근 감독은 또 한 번 자신만의 방식으로 여름을 맞이한다. 이번엔 '공포'와 '로맨스'의 껍데기를 두른 성장담 '악마가 이사왔다'가 그 주인공이다. 기이한 사랑과 우정, 성장을 무해한 세계에 녹여내며 '이상근표 여름 영화'를 완성한다.

백수 청년 길구(안보현 분)는 무미건조한 일상을 이어가던 중, 아랫집으로 이사 온 청순한 파티시에 선지(임윤아 분)에게 첫눈에 반한다. 그러나 다음 날 새벽, 엘리베이터 안에서 마주친 선지는 전날의 모습과는 다른 모습. 낮과 밤 같은 두 개의 인격으로 길구를 혼란스럽게 한다. 선지의 아버지 장수(성동일 분)는 길구에게 새벽이면 선지의 몸 안에 숨어있던 악마가 깨어난다는 집안의 비밀을 고백한다. 그는 길구에게 새벽마다 선지의 보호자 역할을 수행하는 알바를 부탁하고 길구와 선지는 기묘한 만남을 이어간다. 

'악마가 이사왔다'는 이상근 감독의 독특한 문법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익숙한 장르 문법에 자신의 결을 덧입히며 다시 한 번 '비틀기'의 미학을 보여준다. '엑시트'가 '평범한 청년의 탈출'을 경쾌하게 풀어냈다면, 이번에는 외면받던 두 사람이 서로를 통해 스스로를 받아들이는 과정을 따스한 시선으로 담아낸다. 감독은 여전히 특별하지 않은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삼고, 그들이 만들어내는 작은 변화에 따뜻한 조명을 비춘다.
영화 악마가 이사왔다 스틸컷 사진CJ ENM
영화 '악마가 이사왔다' 스틸컷 [사진=CJ ENM]

작품의 분위기를 설계한 촬영과 미술도 톤앤매너에 크게 기여한다. 김일연 촬영감독은 만화적인 설정을 시각적으로 풀어내기 위해 정면 샷과 평면적 구도, 인물의 표정 포착에 집중했고, 채경선 미술감독은 해와 달, 밤과 낮의 상징을 조화롭게 배치해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유려하게 넘나든다. 밝고 따뜻한 색감은 극장이라는 공간 안에서 이 기묘한 이야기를 더 가까이 불러들인다.

배우들의 활약도 인상 깊다. 임윤아는 '낮의 선지'와 '밤의 선지'라는 이중적 캐릭터를 자연스럽게 오가며, 자칫 과장될 수 있는 설정에 설득력을 불어넣는다. 무해한 백수 길구를 연기한 안보현은 특유의 능청과 안정감으로 극의 중심을 잡는다. 두 사람의 케미스트리는 과하지 않아서 더 따뜻하고 귀엽다. 거칠게 밀어붙이지 않아도 어느새 그들의 변화를 따라가게 된다.

악인도, 비극도, 불쾌함도 없다. '악마가 이사왔다'는 이번에도 '여름 영화'가 꼭 거칠고 자극적일 필요는 없다는 걸 증명해낸다. 무해한 이야기로도 충분히 재밌고, 감동적이며, 스펙터클할 수 있다는 점이 이 영화의 미덕이다. 13일 극장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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