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요한의 티키타카] '케데헌' 돌풍과 현실의 자괴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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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요한 시사평론가]


케데헌은 어디까지 갈까?
 
소위 ‘케데헌’이라 불리는 애니메이션이 그야말로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지난 6월 20일, 일본의 소니 픽처스 애니메이션이 제작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미국 애니메이션 영화 ‘K팝 데몬 헌터스’는 공개 이후 40개국 이상에서 넷플릭스 영화 차트 1위를 차지하며 흥행 돌풍을 이어가고 있다. 글을 쓰고 있는 30일 현재, 누적 시청 시간은 2억 2080만 시간이라는, 역대 넷플릭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영화 중 최다 시청 기록을 세웠다 한다.

 
새로운 역사를 쓰는 케이팝데몬헌터스 사진넷플릭스
새로운 역사를 쓰는 케이팝데몬헌터스 [사진=넷플릭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애니메이션의 OST는 주인공 헌트릭스가 부른 ‘골든’으로 빌보드 ‘핫 100 2위’를 기록하고, OST 8곡이 3주 연속 동시 진입하면서 글로벌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벌써 2026년 아카데미 주제가 수상을 점치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겨울왕국’ OST인 ‘렛 잇 고’의 기록을 이미 뛰어넘었으니 이 케데헌의 인기가 어디까지 갈 것인지 짐작도 가지 않는다. 전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가수들은 다들 노래를 따라 부르며 챌린지를 하고, 커버곡으로 삼았다.

 
민화 작호도鵲虎圖를 모티브로 딴 호랑이 더피와 까치 서씨 사진넷플릭스
민화 작호도(鵲虎圖)를 모티브로 딴 호랑이 더피와 까치 서씨 [사진=넷플릭스]

이렇게만 끝나면 그저 잘 만들어진 애니메이션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우리 한국 사람에게 케데헌이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것은 아주 세밀하게 고증된 현실 한국에 대한 묘사다. 영화에 등장하는 남산 타워는 이제 전 세계 K팝 팬들이 관광하러 오는 성지가 되었다. 극 중 등장하는 호랑이와 까치는 우리 민화 ‘작호도’에서 모티브로 딴 것이다. 도깨비나 저승사자와 같은 신화적 존재의 차용은 아주 기본일 정도이고, 라면, 호떡, 도토리묵, 깍두기, 나물, 쌈장까지 등장하니 이건 뭐 국뽕이 차올라 익사하기 직전이다. 남자 주인공 진우가 중얼거리며 걸어 나오는 장면 뒤에 잠깐 나타나는 큼지막한 ‘주차금지’라는 노란색 바닥 글씨와 빽빽하게 서 있는 길거리 자동차를 보면, ‘진짜 고증 잘했네...’ 라는 생각에 국뽕이 절로 돋는다.
 
케데헌의 국뽕과 현실의 비루함
 
케데헌에서 나타나는 한국의 모습은 우리가 그저 흔하게 접하던 곳이지만 하나같이 멋있고 환상적으로 비춰졌다. 남산 타워와 낙산공원 성곽, 북촌 한옥마을, 청담대교와 명동 등은 이른바 케이팝 팬들의 ‘성지순례’ 코스로 그 열풍이 국내외 팬들 사이에서 확산하고 있다.
 
케데헌의 세계관은 사실 익숙하다. 선과 악의 투쟁, 선이 자신들의 세상을 지키려는 방어막인 ‘혼문’, 세대와 세대를 이어 지키려는 가치, 그럼에도 끊임없이 위협하는 악의 무리... 아주 전형적인 세계관이다. 선과 악은 인류 역사를 통틀어 늘 존재해 왔고, 이 와중에 외부의 침략을 막는 굳건한 성곽은 백성의 안전을 지키는 최후의 방어막이었다. 그래서 만리장성이니 천리장성이니 세운 것이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남쪽으로는 왜구가, 북쪽으로는 오랑캐가 끊임없이 조선을 괴롭혔다. 이런 세계관이 케데헌의 면면에 흐른다.
 
문제는 케데헌은 판타지이지만, 케데헌의 고향 ‘코리아’는 그런 판타지의 세계와는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K팝 스타와 거의 완벽하다고 여겨지는 스토리는 존재하지만, 세상을 지키는 혼문은 존재한 적이 없었다. 어느 권력자는 임진왜란 때 백성들을 버리고 야반도주하다 백성들에게 돌팔매질 당했다. 그후 시간이 흘렀지만 1980년에는 권력에 눈이 먼 군인들은 자국의 국민을 학살하며 권력을 강탈했고, 심지어 2024년에 친위 쿠데타를 시도하려다 감옥에 간 전직 대통령의 처지는 현재진행형 코미디다. 현실은 매우 비루하다.
 
또한 K팝 스타를 키워낸 코리아는 마치 흡혈귀처럼 자국의 구성원을 쥐어짰다. 노동자를 포함해 일터에서 일하다 재해로 숨지는 이가 하루 7명이란다. 노동자 산재 통계에 포함되지 않는 군인, 공무원, 선원, 농어업인 등을 포함했더니 이런 결과가 나왔다. 2025년 4월의 통계다.
 
케데헌 성공의 요인이 다양성의 존중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으지만, 우리 사회가 ‘내부의 이방인’인 이주 노동자들에게 어떤 만행을 저지르고 있는가? 실제 위험을 외주화시키며 이주 노동자를 착취하지만, 그들의 인격까지 모조리 황폐화하고 있지 않은가? 정말 비루한 현실 아닌가?

 
한국인은 마땅히 부끄러워야 한다 사진광주전남이주노동자네트워크
한국인은 마땅히 부끄러워야 한다 [사진=광주전남이주노동자네트워크]

스리랑카 국적의 31살 청년 A씨는 벽돌 더미와 함께 이렇게 비닐에 묶어 지게차로 옮겨졌다. 인권유린을 가한 한국인 가해자는 “피식 웃어서 그랬다” 고 진술했단다. A씨는 “당시 무엇이 잘못됐는지도 몰랐다”고 말한다. 그런데도 가해자 처벌을 원치 않는단다. 언론에 따르면 A씨는 향후 경찰·노동 당국의 조사를 받으러 가야 하는 것이 심적으로 힘들뿐더러 가해자를 대면하는 것이 번거로워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과연 ‘번거롭다’라는 표현을 스스로 했을까? 차라리 ‘여전히 무섭다’가 나은 표현일 것이다. 지난 30일, 이재명 대통령이 이 영상을 사례로 들면서 “용납할 수 없는 폭력”이라고 지적하니까 이곳저곳 언론사에서 블라블라 나불댔다. 평소에 이주 노동자에 신경도 안 쓰던 언론사들이다. 케데헌의 국뽕과 현실의 비루함은 여기서 충돌한다. 아마도 이주 노동자의 입장에서 ‘케데헌’은 ‘느그들만의 리그’라고 비웃을 것이다. 그리고 자기 나라의 K팝 팬 지인들에게 “꿈 깨라!”고 일갈할 것 같다.
 
케데헌과 ‘헬조선’ 사이에서
 
우리는 케데헌과 헬조선, 그 사이 어디쯤 서 있을까? 두 세계가 양립할 수 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기는 하지만, 우리가 계속 성장하고 있다는 믿음을 전제하고 그 위치를 찾아보자. 그리고 상처는 노래로 치유하자. 케데헌 OST 마지막 노래 ‘What it sounds like’ 가사 일부다.
 
I broke into a million pieces. And I can’t go back
But now I’m seeing all the beauty in the broken glass
The scars are part of me, darkness and harmomy
My voice is without the lies, this is what it sounds like
 
나는 산산이 조각났고,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어
하지만 깨진 유리 조각들 속에서도 그 안에 담긴 아름다움을 봐
이 상처는 나의 일부야, 어둠 그리고 조화야
거짓 없는 내 목소리, 여기에 울려 퍼져
 
이 노래 ‘What it sounds like’는 케데헌 마지막 부분에 HUNTR/X 멤버 루미와 조이, 그리고 미라가 다시 만나면서 부르는 노래이고, 어쩌면 한국 사회에 던지는 위로의 노래가 아닌가 싶다. 자기혐오와 인간관계 속에 깨진 상처를 그대로 인정하고, 인정받으면서 결국 새로운 미래를 이야기한다는 의미다. 우리가 처한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바꾸고, 대안을 만들자. 그래야 다음 페이지로 넘어갈 수 있다. 이것이 ‘헬조선’에서 ‘케데헌’으로 딱 한 발자국만 내딛자는 필자의 ‘의미화’다. 내가 그럴 수 있다면 내 옆의 동료도, 그 동료의 친구도 같이 내딛을 수 있다는 거다. 그래서 바뀔 수 있다면, 그것이 우리를 지키는 단단한 ‘혼문’이 될 것이다.



필자 주요이력 
- 前 정치컨설턴트
- 前 KBS 뉴스애널리스트
- 現 경제민주화 네트워크 자문위원
- 現 최요한콘텐츠제작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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