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가 필립 퍼키스(Philip Perkis)의 마지막 사진집이 세계적 예술기관에 영구 보존된다.
한국의 독립출판사 안목출판사는 2024년 출간한 사진집 '노탄(NŌTAN)'이 미국 로체스터공과대학교(Rochester Institute of Technology, 이하 RIT) 도서관 내 케리 그래픽 아트 컬렉션(Cary Graphic Arts Collection)에 희귀본으로 영구 소장됐다고 21일 밝혔다.
사진 교육과 북아트, 인쇄문화 연구 분야의 권위 기관인 RIT는 퍼키스의 '노탄'을 '예술과 출판의 귀중한 증거'로 공식 인정했다.
'노탄'은 1935년생 필립 퍼키스가 시력을 완전히 잃기 전까지 16개월간 매일 촬영하고 직접 인화한 흑백 사진 중 33장을 수록한 작품이다. 퍼키스는 2007년 한쪽 눈을 실명한 이후에도 암실 작업을 계속했으며, 2021년 말 양안 시력 악화로 인해 사진 작업을 중단했다. 그러나 제자이자 안목출판사 대표인 박태희가 그의 마지막 이야기를 기록하기 위한 인터뷰 프로젝트를 제안하면서 사진집 출간이 성사됐다.

사진집 제목 '노탄(NŌTAN)'은 일본의 전통 디자인 개념에서 유래했으며, 밝음과 어두움, 전경과 배경이 조화를 이루는 원리를 말한다. 퍼키스는 이를 통해 '무엇을 찍는가'보다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대한 탐구를 이어갔다.
책은 서문, 대화, 사진과 이야기들로 구성된다. 서문에서는 퍼키스가 이 책을 통해 전하고자 한 철학적 사유가 담겨 있고, '대화'는 퍼키스의 인터뷰에서 발췌한 단편적 문장들이 비선형적으로 배열되어 있다. 마지막 장 '사진과 이야기들'에는 사진과 함께 짧은 에세이 5편이 실려 있다.
퍼키스는 '예술은 삶과 분리된 것이 아니라 그것을 견디는 방식'이라는 신념으로 작업을 이어왔고, 이 책은 '사진이란 무엇인가', '삶을 예술로 바라보는 일은 가능한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RIT 측은 이번 소장에 대해 '단순히 한 예술가의 마지막 작업을 보존하는 것을 넘어, 시력 상실 직전까지 이어진 창작의지와 그 기록, 그리고 이를 엮어낸 편집적, 철학적 기여까지 모두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필립 퍼키스는 미국 보스턴 출신으로, 미 공군에서 복무 중 사진을 시작했다. 샌프란시스코 아트 인스티튜트에서 마이너 화이트, 안셀 애덤스 등에게 사진을 배웠고, 이후 프랫 인스티튜트에서 40여 년간 교수로 재직하며 교육자로도 활약했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The Sadness of Men'(2008), 'Mexico'(2019), 아내 시릴라와의 공저 'Octave'(2020) 등이 있으며, 2016년에는 다큐멘터리 '바라보기의 신비: 필립 퍼키스의 초상(Just to See a Mystery)'이 제작되기도 했다.
이번에 RIT에 소장된 '노탄(NŌTAN)'은 퍼키스의 마지막 시선을 담은 기록이자, 한 인간이 끝까지 예술로 삶을 붙든 여정을 증언하는 작업으로 남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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