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재생에너지 100% 자급 산업단지(RE100 산단)' 조성에 본격 착수하면서, 이를 떠받칠 핵심 인프라인 에너지저장장치(ESS)가 탄소중립 산업의 중심축으로 부상하고 있다. 특히 태양광·풍력 등 간헐성이 강한 재생에너지의 특성상 출력 불안정성을 보완할 ESS 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이에 따라 국내 배터리 산업과 부품 생태계 전반에도 새로운 성장 기회가 열릴 것으로 기대된다.
17일 산업계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10일 관계부처 합동 태스크포스를 출범시키고, 올해 안에 RE100 산단 조성 기본계획을 마련할 방침이다. RE100 산단은 태양광과 풍력 등 지역 재생에너지를 활용한 전력 자급 구조를 갖추고, ESS와 스마트그리드 기술을 핵심 인프라로 포함한다. 정부는 이 같은 구조를 통해 수도권에 집중된 전력 수요를 전북·전남 등 재생에너지 잠재력이 풍부한 지역으로 분산시키고, 지역 균형 발전과 산업지형 재편까지 함께 꾀할 계획이다.
ESS는 단순한 전력 저장 장치를 넘어, 재생에너지의 출력 변동을 완충하고 전력망 안정성을 확보하는 데 필수적이다. 피크 부하 조정과 수요 반응(DR) 기능도 가능해, 청정에너지 기반 전력 시스템을 지탱하는 핵심 장치로 자리잡고 있다. 한국에너지공단에 따르면 국내 ESS 시장은 2023년 기준 약 2.1GWh 규모로, 2026년까지 연평균 30% 이상의 성장세가 예상된다.
국내 배터리 업계도 이 같은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 중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충북 오창 공장에 전력구매계약(PPA)을 도입한 데 이어, 이를 폴란드·인도네시아 등 해외 거점으로 확대하고 있다. 2030년까지 전 세계 모든 사업장의 전력을 100% 재생에너지로 전환하겠다는 목표 아래, 협력사를 위한 탄소발자국 산정 가이드라인도 마련해 공급망 전반의 ESG 체계를 강화하고 있다.
삼성SDI 말레이시아 법인에서 독일 태양광 기업과의 PPA를 통해 약 30MW 규모의 태양광 발전소로부터 신재생에너지를 조달할 계획이다. 해당 설비는 내년부터 가동 예정이며, 연간 약 5만5000톤의 탄소 감축 효과가 기대된다. 삼성SDI는 2050년까지 전 사업장을 재생에너지 기반으로 전환한다는 중장기 전략도 추진 중이다.
SK이노베이션의 에너지 자회사인 SK E&S는 JB금융지주·이너젠과 손잡고 민간기업의 RE100 이행을 지원하는 금융상품도 출시했다. 전북은행과 광주은행이 선보인 'JB 그린비즈론(Green Biz Loan)'과 'RE100 솔라론(SOLAR-LOAN)'은 PPA 기반 담보 대출을 통해 태양광 발전 사업자들의 자금 조달 부담을 줄이고, 민간 주도의 태양광·ESS 시장 확대를 유도하고 있다.
업계 전문가들은 RE100 산단 조성이 국내 배터리 산업의 수요 다변화는 물론, 산업 외연 확장의 결정적 계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지금까지 전기차에 집중됐던 배터리 수요가 ESS 등 전력망 기반 에너지 인프라 영역으로 빠르게 확장될 것이란 분석이다.
이호근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RE100 산단은 단순한 탈탄소 전략을 넘어, 국가 산업 구조를 친환경 기반으로 전환하는 중대한 분기점"이라며 "ESS를 포함한 배터리 기반 에너지 인프라가 정부 정책 성공의 열쇠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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