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미성년' 김윤석 "감독 데뷔…주연작 개봉보다 딱 10배 떨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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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송희 기자
입력 2019-04-11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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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욕심도 많다. '믿고 보는 배우'라는 말도 모자라 '기대되는 충무로 신인 감독'이라는 수식어까지 꿰차려고 하다니 말이다.

영화 '타짜'(2006) '추격자'(2008) '전우치'(2009) '황해'(2010)를 지나 최신작 '1987'(2017) '암수살인'(2018)에 이르기까지. 배우 김윤석(51)은 언제나 빈틈없는 연기로 관객들에게 신뢰를 쌓아왔다. 그렇게 긴 시간 배우와 관객 간에 쌓아왔던 '믿음'은 오늘(11일)부로 산산조각 날 예정. 모든 건 영화 '미성년' 때문이다.

평온했던 일상을 뒤흔든 폭풍 같은 사건과 이를 마주한 두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 '미성년'은 김윤석의 첫 감독 연출작이다. 능수능란한 베테랑의 손길이 닿았다고는 믿을 수 없이 예민하고 기민한 감수성과 패기 넘치는 스타일링이 돋보이는 작품. 더 과장을 보태자면 '올해의 데뷔'라 부를 만하다.

영화 '미성년'으로 감독 데뷔한 김윤석.[사진=쇼박스 제공]


"물론 주연작 개봉도 떨리죠. 어떻게 긴장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그런데 제가 연출한 영화는 딱 10배 더 신경 쓰여요. 저는 물론이고 출연 배우들의 한마디 한마디에 귀가 쫑긋하더라고요."

영화 '미성년'의 시작점은 미완성된 창작 희곡이었다. 2014년 젊은 연극인들의 창작극 발표회에 참석한 김윤석은 정식극도 아닌 시연 무대를 보고 채 완성되지 못한 '미성년'에 마음을 빼앗기고 만다. "텅 빈 무대 위, 세트도 없고, 배우들도 간신히 대본만 외우는 수준"의 연극인데도 어찌나 매력적이고 신선하던지. '저 작품을 시나리오로 만들고 싶다'며 원작자를 만나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했다.

"사실 소재 면에서는 흔할 수 있어요. 그러나 이 소재를 풀어가는 과정이 신선하고 대담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어른들이 저지른 일을 아이들이 수습하는 모습도 우습기도, 씁쓸하기도 하고요. 항상 소재거리를 찾으려 애쓰는데 이렇게 가까운 곳에 이렇게 신선하고 재미있게 이야기를 풀 수 있었다니! 작가를 만나서 이야기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김윤석은 원작자인 이보람 작가와 만나 3년여간 시나리오 작업에 매달렸다. 철저히 '희곡'이었던 대본을 '시나리오'로 고치는 데 오랜 시간이 들었다. 장르적 메커니즘의 전환은 쉽지 않았다. "원작과 주제 면에서 달라지지 않기 위해" 이보람 작가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장면 구성에도 공을 들였다.

"희곡을 시나리오화하면서 '훼손하지 말자'고 여겼던 건, 원작이 가진 패기였어요. 그건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코미디 요소기도 하고요. 극 중 고등학생 주리(김혜준 분)와 윤아(박세진 분)가 '니 엄마가 우리 아빠 꼬셨어. 알고 있어?' '어떻게 몰라. 배가 부르는데'라고 툭툭 던지는데 '앗!'하면서 웃음이 터지는 거예요. 어른들이었다면 숨기려고 했을 텐데. 아이들이 콕콕 찌르는 게 매우 강렬하더라고요. 이런 결들은 시나리오에서도 잃지 말아야 한다고 여겼죠."

아무런 정보 없이 '미성년'을 관람한 관객들에게 "이 작품의 감독이 김윤석이에요"라고 알려준다면그들은 첫째 연출자가 '배우' 김윤석이라는 점과 둘째 '중년남성' 김윤석이 만들었다는 점에 놀랄 것이다. 그만큼 섬세하고 예민한 감수성과 촉각이 곤두서는 결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다.

영화 '미성년'으로 감독 데뷔한 김윤석.[사진=쇼박스 제공]


"다들 의외라고 하지요? 그런데 친한 동료, 감독 등 지인들은 '가장 너 같은 시나리오'라고 해요. 이렇게 섬세한 작품이 '저답다'고 강요하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될 일도 아니고요. 묵묵히 하다 보면 관객들도 알아주시겠죠. 연기할 때도 그랬듯이요."

가까운 지인들은 입을 모아 김윤석을 섬세하고 예민한 사람이라며 칭찬한다고 하지만, 영화 '미성년' 속 영주(염정아 분), 미희(김소진 분), 주리(김혜준 분), 윤아(박세진 분)까지 네 명의 여성들의 속내까지 속속들이 알기란 힘들었다. 그들의 미세한 감정, 눈짓, 사사로운 움직임 등까지 담아내기 위해 김윤석은 주변 '여성'에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

"저는 중년 남성이니까요. 그래도 작가도 젊은 여성이고 동료 배우, 현장 스태프들도 여성들이 많아서 자문할 수 있었죠. 그들에게 상의하는 것도 좋았어요. 신경 쓰고 주의해야 할 부분이 있기 마련이니까요. 제게도 의미 있는 작업이었어요."

김윤석이 감독 데뷔한 영화 '미성년' 스틸컷.[사진=쇼박스 제공]


하나부터 열까지 김윤석의 고민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하물며 그가 연기한 유부남 대원 역할마저도 그랬다. 아무도 모를 거라 여겼던 '불륜' 사실이 밝혀지자 아내와 딸은 물론 연인 미희와 윤아에게서도 도망치려고 하는 비겁한 대원 캐릭터는 "나쁜 놈이 분명하지만", 김윤석은 "극 중 영주, 미희, 주리, 윤아에 온전히 초점이 가도록 만들기 위해" 조금은 우습고, 조금은 허술한 인물로 구조를 바꾸어나갔다고. 대원에 대한 관객들의 분노가 커질수록 장르와 주인공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대원을 향한 분노가 영화의 장르, 캐릭터를 오염 시킬 거라고 생각했어요. '대원'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이 캐릭터는 '익명성'을 뜻해요. 불특정다수를 말하고 있는 셈이죠. 그래서 꼭 필요한 장면 외에는 옆모습, 뒷모습 등만 찍었고 대부분 포커스가 나가있죠. 연출적 선택에서 언제나 빠져나가있도록 만들었어요. 그러니 제가 맡아 연기할 수밖에 없는 캐릭터기도 했죠. 똑같이 캐스팅해놓고 옆모습, 뒷모습만 찍는데다가 항상 감정도 눌러라, 보여주지 말아라 한다니. 다른 배우가 (연기) 했으면 무릎을 꿇어도 시원치 않죠. '미안하다' '잘못했다' 외에는 할 말 없었을 캐릭터예요."

모든 포커스를 4명의 여자 주인공에게 맞추려고 한 만큼 영주를 비롯해 미희, 주리, 윤아 역의 캐스팅 역시 중요했을 터. 김윤석은 감독으로서 "너무도 만족스러운 캐스팅"이라고 자랑하기도 했다.

"'완벽한 타인' '스카이 캐슬' 시작 전 염정아 배우를 이미 영주 역으로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죠. 저는 '오래된 정원'이라는 작품 속 염정아씨의 연기를 매우 인상 깊게 봤거든요. '저 배우가 영주를 연기한다면 어떨까?' 가슴이 뛰었어요. 다행히 시나리오를 보낸 지 하루 만에 연락이 와줬고 함께하게 됐죠. 김소진씨도 그랬죠. 단역 시절부터 알고 지냈던 배우였는데 언제나 '중국 배우 장만옥 같은 매력이 있다'고 생각해왔어요. 미희의 모습을 잘 살릴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죠. 두 배우가 딱 자리를 잡아주고 우리 딸들 주리, 윤아는 오랜 오디션 끝에 낙점했어요. 두 달 가까이 오디션을 보면서 연기적인 기술이 아닌 캐릭터 그 자체가 되어가더라고요. 그 모습이 참 보기 좋았고 감동적이었죠."

영화 '미성년' 현장 사진 중, 김윤석 감독(왼쪽)과 배우 박세진.[사진=쇼박스 제공]


1시간가량의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알게 된 것은 그가 '무대'에 대한 엄청난 애정과 에너지를 품고 있다는 점이었다. 김윤석은 영화배우로서의 경험보다 연극배우, 연출로 무대에 올랐던 경험이 오늘날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무대에서 망치질도 하고 포스터도 붙이고 했던 경험이나 시나리오를 공동집필 했던 것들이 어디 가질 않더라고요. 제 안에 남아있었어요. 그것들이 큰 힘이 된 느낌이죠. 배우 생활을 오래 했기 때문에 연출적으로 도움이 된 점은 이해가 빠르다는 거? 단점은 글쎄요. 아마 제가 젊은 나이에 영화 연출을 한다고 했다면 걸림돌이 되었을 수도 있었을 거 같아요. 나에게 포커스를 맞추려고 한다거나. 이미 그런 시점은 다 지나온 거 같아요."

주연작보다 딱 10배 더 신경이 쓰인다는 김윤석에게 "데뷔를 앞둔 신인 감독으로서 관객들에게 '미성년'에 관한 짧은 소개"를 부탁했다. '미성년'을 관통하는 감독 김윤석의 키워드가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미성년'이라는 제목은 결국 '우리는 모두 미성년이다'라는 말의 줄임말이에요. 성년이 되기 위해서는 항상 노력해야 해요. 자칫 방심하는 순간 밑으로 떨어지고 마는 거예요. 이만큼, 올라오기 위해서 계속 계속 노력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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