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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화보]찬란한 천부(天府)문화, 신비한 고촉(古蜀)문명

김미령 기자입력 : 2017-09-30 07:36수정 : 2017-09-30 07:36
인민화보 천커(陳克) 기자=중국 남서쪽에 위치한 청두(成都)시는 평탄하고 드넓은 지형을 가졌다. 기원전 256년, 촉군태수(蜀郡太守)를 지낸 이빙(李冰) 부자(父子)가 민장(岷江) 백성들을 지휘해 완성한 두장옌(都江堰·도강언) 수리공사 덕에, 사방에서 흐르는 물줄기는 2000년 넘게 청두 평원을 촉촉히 적시며 이곳을 ‘천부지국(天府之國·토지가 비옥하고 자원이 풍부한 천혜의 땅)’으로 만들었다. 청두시 북서부에서 발굴된 3000년이 넘는 역사의 금사(金沙)유적은 고대 촉(蜀)나라의 찬란한 문명을 비추며 도시 문명의 기원을 열었다. 1700년이 넘는 역사의 ‘수향고진(水鄉古鎮·물의 고향)’ 황룡계고진(黃龍溪古鎮) 역시 촨시(川西·청두평원 일대)의 민간 풍습과 전통 음식인 ‘이건몐(一根面·면발을 길게 한 가닥으로 뽑아낸 면)’을 체험하기에 안성맞춤인 곳이다.
 

‘천 년을 이어온 수리시설’ 두장옌의 웅장한 모습 [사진=두장옌시 홍보처 제공]

실제 경관을 배경으로 매일 상연되는 대규모 야외공연인 ‘도해도강언(道解都江堰)’. 고대 두장옌에서 매년 이뤄지던 수리작업 재연과 함께 2000년 넘게 쓰촨성 주민들의 삶을 촉촉히 적시고 관광객들에게 화려한 경관을 선사하는 두장옌의 모습을 연출한다. [사진=인민화보 사도 타마코(佐渡多眞子) 기자 ]


두장옌, 세계 수리문화의 시초
청두 평원의 북서부에 위치한 두장옌시는 시내에서 약 60km 떨어진 청두시 관할의 현(縣)급 시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두장옌 수리시설이 바로 이곳에 위치해 있다. 물로 인해 생겨나고 흥성한 지역인 만큼 두장옌에 들어가면 휘몰아치는 강물을 통해 진정한 ‘물의 힘’을 가장 먼저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쓰촨(四川)성 중부의 민장 중류에 위치한 두장옌 수리시설은 전국시대 진(秦)나라의 촉군태수 이빙(BC 302~235년)과 그의 아들의 주도로 기원전 256년에서 251년에 걸쳐 축조됐다. 수리시설은 위쭈이(魚嘴·어취), 페이샤옌(飛沙堰·비사언), 그리고 바오핑커우(寶瓶口·보병구)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민장이 산록에서 평지로 나오는 곳의 강심(江心)에 위치한 위쭈이는 ‘물고기의 입’이라는 명칭을 그대로 닮았다. 위쭈이는 민강을 내강(内江)과 외강(外江)으로 분리하는 ‘장치’ 역할을 한다. 내강의 하상(河床)이 외강보다 낮기 때문에 갈수기가 되면 민강 강물의 60%가 내강으로 들어와 청두평원에 관개(灌溉)를 하고, 나머지 40%는 외강에서 갈라져 자연스레 흘러간다. 하지만 홍수기 때는 상황이 정반대가 된다. 외강의 하상이 내강보다 넓기 때문에 물의 60%는 자연스레 배출되고, 40%만이 내강으로 들어온다. 위쭈이는 지형을 이용해 봄과 겨울철 갈수기에는 필요한 물을 조달하고, 여름과 가을철 홍수기에는 범람 방지를 조화롭게 해결한다. 이 수리시설을 축조한 선조들의 지혜에 절로 감탄이 나오는 대목이다.
이뿐만 아니라 위쭈이는 상류에서 섞여 들어오는 모래자갈도 절묘하게 해소한다. 2200년도 전 고대 사람들은 이미 곡류 하천의 원리를 터득해 민장 상류에서 떠내려오는 모래자갈을 외강으로 자연스레 배출하고, 소량의 모래자갈만이 내강으로 들어오게 했다. 나머지 20% 가량의 모래자갈은 페이샤엔이라는 ‘제2의 시설’을 통해 계속 갈라져 흐르게 하여 제거했다. 내강의 수위가 과도하게 높아지면 물이 핑수이차오(平水槽·평수조)를 거친 뒤 페이샤옌을 넘어 외강으로 흘러 들어가게 했다. 이를 통해 바오핑커우에 들어오는 수량을 조절, 내강 관개구역의 수해를 방지했다. 또 페이샤옌에서 넘쳐 외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수류(水流)는 원심력으로 인해 진흙에서 거대한 돌까지 모두 페이샤옌에 남겨두고 물만 범람하게 된다. 이 때문에 바오핑커우 주변에 퇴적되는 진흙의 양은 현저히 줄어든다. 병의 입구 모양으로 생긴 바오핑커우는 민장의 물을 두장옌 관개구역으로 끌어들여 관개를 하는 역할을 한다. 내강은 바오핑커우를 거쳐 몇 개의 수류로 갈라진 뒤 청두평원으로 흘러 들어가 무려 70만ha에 달하는 논밭을 촉촉히 적신다.
이 같은 위쭈이, 페이샤옌, 바오핑커우의 유기적인 결합으로 논밭은 관개가 가능해졌고 수해도 줄어들었다. 가뭄이 심각했던 청두평원은 두장옌이 축조된 이후 2000년 간 한 번도 홍수로 인한 범람 없이 비옥한 ‘천부지국’의 지위를 누려 왔다.
두장옌에서는 수리시설 축조를 주도한 이빙 부자를 기념하기 위해 매년 ‘팡수이제(放水節·방수절)’ 축제가 열린다. 기록에 따르면 서기 978년에 처음 시작된 팡수이제는 이미 1000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매년 청명(淸明) 때가 되면 수백 명의 사람들이 ‘두장옌 공사 인부’로 변신해 고대 두장옌의 치수(治水) 광경을 재연하고, 오곡의 풍년과 나라의 평안을 기원한다.
 

황룡계고진에는 청나라 전후에 지어진 수많은 촨시지역 전통 민가가 남아있다. 민가는 정교한 조각이 새겨진 격자창과 끝이 올라간 처마가 특징이다. [사진=인민화보 사도 타마코 기자 ]


과거와 현재를 잇는 금사유적
2001년 2월 8일, 두장옌시 서쪽 외곽의 쑤포(蘇坡·소파)향 진사(金沙·금사)촌에서 한 부동산개발업체의 굴착기 두 대가 한창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한 마을주민이 삽질을 하다 흙 속에서 상아(象牙)와 옥그릇 일부를 발견했다. 평범한 부동산 개발 과정에서 베일에 싸여 있던 고대 문명의 신비가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고고학자들은 잠정적으로 이곳을 약 3000년 전의 상주(商周)시기 고대 촉나라 문화 유적이라 결론짓고 ‘진사유적’이라 명명했다. 금사유적에서 출토된 수많은 휘황찬란한 기물(器物) 가운데 황금마스크가 고고학자들의 시선을 끌었다. 황금마스크는 앞서 쓰촨 광한(廣漢)지역의 삼성퇴(三星堆) 유적에서 출토된 청동상의 얼굴 형태와 유사했다. 삼성퇴에서 발견된 금빛 흙마스크와 마찬가지로 이곳의 황금마스크도 청동상의 얼굴에 씌워져 있었다. 연구가 진행되면서 고고학자와 역사학자들은 지금으로부터 4500년 전 청두평원의 고대 촉나라에 이미 찬란한 문명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보돈(寶墩)유적(청두시 신진(新津)현 신핑(新平)진에서 1995년 발굴)은 고대 촉나라 문명의 기원이고, 삼성퇴는 그 문명이 정점에 달했을 때의 유적이며, 금사유적은 삼성퇴 문명의 연장선이었다. 이들 유적은 고대 촉나라 문명의 발전과 맥락 파악에 중요한 근거가 되었다.
더욱 놀라운 점은 금사유적에서 양저(良諸)문명(저장(浙江)성 위항(余杭)구 양저진, 지금으로부터 5250-4150년 전)의 유물이 출토됐다는 사실이다. 이는 3000년도 더 전에 이 지역의 문명이 황허(黃河)·창장(長江) 유역과 관련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대 촉나라 문명은 스스로 발원했지만, 동시에 중원(中原)문화와도 광범위하게 교류하며 화하(華夏)문명의 중요한 일부분을 구성하고 있었다.
금사유적에서는 태양신조(太陽神鳥) 금장신구가 한 점 출토됐다. 지름 12cm에 달하고 뜨거운 태양과 12개의 이글대는 화염을 둘러싼 4마리의 큰 새가 날아오르는 모습의 이 금기(金器)는 고대 촉나라 사람들이 태양신조와 태양을 숭배하고 찬양했음을 말해준다. 정교하게 세공된 태양신조는 3000년 역사를 지닌 금사유적과 찬란한 고대 촉나라 문명의 상징일 뿐 아니라, 청두의 상징물이자 수호신으로서 청두시 어디에서나 만나 볼 수 있다.
 

고색창연한 황룡계에는 물이 있어 한층 생명력과 활기가 넘친다.[사진=인민화보 사도 타마코 기자 ]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공개되는 ‘이건몐’ 제조과정은 많은 이들의 눈길을 끈다. [사진=인민화보 사도 타마코 기자 ]

‘위쭈이’ 는 전체 두장옌 수리시설에서 고대 사람들의 지혜와 슬기가 녹아들어 가장 오묘하게 설계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수천 년 동안 죽롱(竹籠)과 대나무 통으로 엮은 마차(榪搓) 보로 물길을 갈라오다 1970년대 철근 콘크리트로 대체됐다. [사진=두장옌시 홍보처 제공]


촨시(川西)문화의 정수 ‘황룡계고진’
황룡계고진은 청두시에서 남쪽으로 약 40km 떨어진 솽류(雙流)현 내에 있다. 무려 17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물의 고향으로 유명하다. 삼국시기 촉한(蜀漢)의 승상 제갈량이 이곳에 군대를 주둔시켰다고 전해진다. 이곳에는 촨시평원을 배경으로 각각의 시대에서 탄생한 다양한 풍격과 건축 양식이 집결되어 있어 촨시의 건축 문화를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황룡계고진은 영화계에서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지역이다. 중국의 유명 영화감독 셰진(謝晉)이 감독한 1986년작 <부용진(芙蓉鎮)>이 이곳을 배경으로 촬영됐다.
황룡계고진을 걷다 보면 청석판(青石板)이 깔린 작은 오솔길, 나무기둥과 청기와로 지어진 누각과 가옥, 정교한 조각이 새겨진 난간과 격차창, 길모퉁이의 찻집과 점포, 오래된 사당에서 피어오르는 푸른 연기 등을 통해 촨시 고진 특유의 순박하고 독특한 풍토와 인심을 느낄 수 있다. 고진에는 전장쓰(鎮江寺·진강사), 차오인쓰(潮音寺·조음사), 구룽쓰(古龍寺·고룡사) 등 3대 사당이 있어 매년 음력 6월 초아흐렛날과 9월 초아흐렛날 묘회(廟會)가 열릴 때면 떠들썩했던 마을의 옛 장터 풍경이 재현되곤 한다.
황룡계는 진장(錦江) 남쪽 기슭을 따라 지어졌다. 나중에 개보수를 하는 과정에서 독특한 ‘용(龍)’의 형태가 부각됐다. 시자이먼(西寨門·서채문)과 룽탄(龍潭·용담)광장으로 이뤄진 용머리, 전륭제(眞龍街·진룡가)를 흐르는 개천은 용의 몸통, 룽탄후(龍潭湖·용담호) 뒤쪽에서 굽이굽이 흘러 북쪽의 진장으로 흐르는 개천은 황룡의 꼬리를 이룬다. 용의 등 위에서 흐르는 개천은 구불구불대는 모양을 띠고 있고, 수류도 오르락내리락 재미난 모습을 하고 있다.
여름이 되면 이곳은 피서객들의 물놀이 장소로 탈바꿈한다. 물벼락을 맞으면 액운을 쫓고 행운을 불러온다는 말이 있기 때문에 피서객들은 서로를 향해 즐겁게 물총놀이를 한다. 쉴 새 없이 튀는 물방울 사이로 피서객들의 즐거운 얼굴이 어우러진다. 몸은 물에 젖어 시원하고 마음은 더 없이 가뿐하다.
황룡계고진에는 아직도 수많은 민간 풍습이 남아있다. ‘이건몐’은 송나라 때부터 이어져 온 현지의 유명한 전통 밀가루 음식이다. 평원에 위치한 황룡계는 땅이 기름지고 물이 풍부해 밀 수확량이 많은 곳이다. 매년 명절이 되거나 대소사를 치를 때면 사람들은 밀가루로 면을 뽑아 100% 수타 방식으로 음식을 만든다. 고진에는 이곳의 대표적인 관광상품인 이건몐을 맛보려는 사람들로 가게마다 북새통을 이룬다. 이건몐은 면발이 쫄깃하고 매끈하며 국물이 진하며, 먹고 나서도 입안에 쫄깃한 뒷맛이 남아있다. 이 때문인지 사람들은 “황룡계에 와서 이건몐을 맛보지 않으면 허탕친 것이나 마찬가지”라 말하기도 한다.
황룡계에는 예부터 화룡을 태우는 ‘소화룡(燒火龍)’이라는 풍습이 있다. 매년 정월 초이튿날 밤에서 정월대보름 위안샤오제(元宵節, 원소절) 사이에 열리는 풍성한 문화행사다. 이는 남송에서 유래해 지금까지 8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니고 있다. 옛 사람들은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라 독특한 특색을 지닌 ‘화룡등무(火龍燈舞)’도 만들어 냈다. 화룡등무는 황룡계에서 매년 한 차례 열리는 새해 행사의 ‘하이라이트’로 꼽힌다.

* 본 기사는 중국 국무원 산하 중국외문국 인민화보사가 제공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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