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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석규의 대몽골 시간여행-14] 영웅의 어린 시절은? ①

배석규 칼럼니스트입력 : 2017-08-08 14:10수정 : 2017-08-08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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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배석규 칼럼니스트]


이제 대몽골제국의 바탕을 만든 칭기스칸의 얘기를 시작해 보자.
특히 그의 탄생에서부터 고난의 어린 시절이 어땠는지 간추려서 살펴보자.

이 부분은 좀 지루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 생소한 인명(人名)과 지명(地名)때문에 짜증이 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 전개될 여러 이야기를 좀 더 쉽게 이해하기위해 거쳐 지나가야할 과정이라고 이해하면 편할 것 같다.

유목국가 몽골의 영웅 칭기스칸은 1162년에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곳은 다달솜(郡)의 델리운 볼닥이라는 곳이다. 솜은 우리의 군정도의 행정 단위다.

다달솜은 몽골 초원 동북쪽 끝 지금은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곳이다.
실제로 다달솜에서는 북쪽으로 러시아의 국수(國樹) 자작나무가 하얗게 줄지어 서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수도 울란바타르에서 그곳을 찾아가는 데 중간에 몇 곳을 거치기는 했어도 이틀이 더 걸릴 정도로 멀리 떨어져 있었다.
지금은 울란바타르에서 다달솜까지 관통 도로가 만들어져 하루면 갈 수 있는 여건이 됐다.
 

[사진 = 다달솜의 통나무집]

다달솜은 통상의 몽골 초원과는 달리 삼림과 초원이 섞여 있는 그런 지역이다. 가옥도 유목민 특유의 천막인 게르 보다 통나무집이 더 많이 눈에 띠었다.

칭기스칸이 태어난 델리운 볼닥은 완만한 능선 위쪽에 자리하고 있었다.
볼닥은 몽골에서 언덕을 가리키는 말이다. 언덕 위쪽에 칭기스칸의 탄생을 알리는 돌비석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사진 = 칭기스칸 탄생 기념비 델리운 볼닥 다달솜]

세계를 호령했던 영웅의 탄생지에 세워진 비석치고는 초라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래도 수많은 몽골인들의 마음이 이 돌비석에 모아져 있다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경건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 "물소 해 여기서 태어나시다."

[사진 = 칭기스칸 기념비 다달솜 소재]


높이 1.3미터 폭 1미터 정도의 비석에는 델리운 볼닥이라는 지명과 함께 "칭기스칸이 물소 해인 1162년 10월 16일 여기서 태어나시다."라는 글이 고대 몽골어인 몽골비칙으로 새겨져 있었다.
비석 뒤쪽으로는 능선을 따라 높이 3미터 전후의 소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다.
그 소나무들은 마치 칸을 호위하는 사는 당시 몽골의 병사들처럼 도열해 이곳을 찾람들을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앞쪽으로는 넓은 초원이 경사면을 따라 전개되다가 멀리 나무숲에 막히면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었다.
왼쪽으로는 비교적 울창한 송림이 능선을 따라 이어진다.

[사진 = 몽골 초원의 사행천]

그리고 그 아래쪽으로 다달솜이 평화스럽고 한가한 모습으로 펼쳐져 있었다. 그 뒤쪽으로는 흐르는 강이 바로 사행천(蛇行川:뱀처럼 굽은 강)인 발진강이었다.
비석은 주변의 풍경을 품에 안을 수 있는 중심의 자리에 서 있었다.
이런 자리를 지관들이 본다면 영웅이 태어날 명당자리라고 하지 않을까?

몽골비사는 이곳에서 테무진이 태어났을 때의 상황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예수게이 바아토르가 타타르의 테무진 우게, 코리 부카를 비롯한 타타르족을 약탈하고 돌아 온 바로 그때, 임신 중이던 호엘룬은 델리운 볼닥에서 칭기스칸을 낳았다. 오른손에 돌덩이 같은 핏덩이를 쥐고 태어난 아이에게 예수게이는 타타르족의 테무진 우게를 잡아 왔을 때 태어났다고 해서 테무진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사진 = 테무진의 탄생(1162) 몽골 공훈화가 만디르 작품]

첫 번째로 태어난 귀여운 자식에게 적장(敵將), 그것도 사로잡아 온 장수의 이름을 따서 이름을 테무진으로 지었다는 얘기는 우리의 정서로는 이해가 쉽지 않은 부분이다.
그러나 유목민은 예로부터 그러한 관습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 하나의 점(點)에서 시작된 태풍의 눈
테무진의 탄생! 그것은 결과적으로 보면 엄청난 폭풍우를 몰아올 태풍의 눈이 생긴 것이겠지만 그 순간은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평범한 한 인간의 탄생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도 한가롭고 어쩌면 권태롭기까지 한 몽골의 외진 곳 델리운 볼닥에서 테무진이 태어났을 때 그것은 수많은 점 가운데 하나의 점이 찍힌 것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후 전개되는 그의 미로 찾기와 같은 삶은 당시 많은 세계 사람들의 운명을 결정지은 것은 물론 현재를 사는 사람들의 정신세계에까지 영향을 준 거대한 폭풍을 준비하는 과정이었을 것이다.

▶ 7남매의 장남 테무진
호엘룬은 테무진을 낳은 이후 세 명의 아들과 한 명의 딸을 더 낳았다. 카사르, 카치온, 테무게, 테물렌이라 불리는 아이들이었다.

테무진을 낳은 지 1년 뒤 예수게이는 몽골비사에 코아크친이라고 기록된 여자를 데려왔고 이 여자는 벡테르, 베르구테이 등 두 명의 아이를 낳았다.
그러니까 테무진은 두 명의 이복동생을 합쳐서 모두 여섯 명의 동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테무진은 이 곳 델리운 볼닥에서 유년 시절을 보내면서 다른 몽골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어릴 때부터 말 타는 법과 활 쏘는 법을 배워 초원을 누비기도 하고 새를 잡으러 다니기도 했다.
또 겨울에는 오논강 위에서 얼음지치기를 하고 낚시도 하면서 비교적 평온한 시절을 보냈다.

▶ 10살 때 약혼, 15-16살 때 결혼이 관습
테무진의 나이 아홉 살이 됐을 때 예수게이는 테무진에게 아내를 얻어 주기로 했다.
몽골인들은 일찍 결혼하는 풍습이 있다. 혼인은 대개 씨족장이나 부모의 명에 의해서 결정된다.
10살을 전후해 결혼할 상대자를 골라 약혼을 하게 되고 6~7년 뒤에 결혼식을 올리는 순서로 진행되는 것이 보통이다.

물론 과거의 혼인 형태는 언급한 대로 철저한 족외혼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이러한 혼인은 특히 귀족들에게 그것을 통해 씨족간의 정치적인 연합을 이룸으로써 서로의 영향력을 높이고 가문의 위세를 끌어올리는 좋은 수단이 됐다.

한창 초원의 유력한 인물로 떠오르고 있던 예수게이가 큰아들의 결혼을 통해 자신의 야심을 이룰 수 있는 바탕을 더욱 굳건히 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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