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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화보]‘백년의 계승’...궁중 연 제작자 류빈

입력 : 2017-06-22 16:21수정 : 2017-06-22 16:21

류빈이 맹종죽으로 연 뼈대를 만들고 있다.[사진=인민화보 자오징(趙晶) 기자 ]


인민화보 위안취안(袁全) 기자 =중국 전통 연(鳶)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4대 계승자 류빈(劉賓)은 아버지의 간절한 바람을 짊어지고 있다. 백 년의 역사를 지닌 연의 제작방식을 잇고 발전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15년 전, 25세의 류빈은 가업의 중책을 물려받는 것이 썩 달갑지 않았다. 미술 디자인을 전공해놓고 다른 동기들처럼 디자인이나 영상 제작·애니메이션 관련 일에 종사하는 것이 아니라 수작업으로 연을 만드는 장인이 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15년간 연 제작 사업을 해온 그에게 가장 큰 난관은 ‘속세의 편견’이었다. 많은 사람들의 눈에 비친 연은 그저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에 불과했다. “요즘 사람들은 밥을 먹거나 할리우드의 3D 블록버스터를 보는 데는 기꺼이 200위안(약 3만원)을 쓰지만 연에는 그 만큼의 돈을 쓰지 않는다.” 이 같은 ‘편견’을 없애기 위해 류빈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쏟아 붓고 있다.

수 대를 이어온 ‘연 사랑’
류빈의 증조부는 청(淸) 말기 자금성(紫禁城)에서 채찰(彩紮)을 하던 장인으로 황실의 등롱과 부채, 연 등을 제작했다. 이 중에서 증조부는 특히 연 만들기를 좋아했으며, 궁중 연을 만드는 데 탁월한 실력을 자랑했다.
류빈의 조부와 부친은 선대의 연 제작 기법을 계승했다. 2003년 류빈은 조부, 부친과 함께 가족 연 브랜드 ‘산스자이(三石齋)’를 만들었다. ‘산스자이’에는 조손(祖孫) 3대를 초석으로 베이징 궁중 연 제작기법을 반석처럼 단단히 발전시켜 나간다는 뜻이 담겨 있다.
베이징 연의 대표적 유파(流派)인 산스자이 연은 ‘정(精)·세(細)·아(雅)’를 설계 이념으로 강조하며 지난 백 년간 그 맥을 이어오고 있다. ‘정·세·아’는 류빈의 조부 류후이런(劉匯仁)이 제작한 연의 주요 특징을 반영한다.
‘정’은 재료 선정의 엄격함을 말한다. 먼저 연에 사용되는 모든 맹종죽(竹)은 어두운 곳에서 3년간 말린 뒤에야 사용할 수 있다. 또한 견(絹)은 남부지역에서 생산된 비단을 사용해야 하고, 색 또한 전통에 맞게 배치해야 한다.
‘세’는 공예에 대한 연구를 가리킨다. 전통적 제작 공정을 엄격하게 따르고 공예미(工藝美)를 추구해야 한다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아’는 화면의 청아함·정갈함과 함께 문화적으로도 풍부한 함의를 담아야 하며, 도안 설계에 있어서도 빈틈 없이 신중해야 함을 뜻한다. “장인 한 사람이 하나의 연을 만들기 위해서는 도안 설계부터 완성 후 연을 날릴 때까지 보통 20여 일의 시간이 걸린다.” 류빈의 말이다.
류빈은 유년시절부터 조부와 함께 생활하며 조부의 ‘연 사랑’을 지켜보았다. 류후이런의 8명의 손자 중 류빈은 연 제작에 유독 남다른 관심을 보였고, 그런 손자에게 할아버지는 특별히 그림과 구조 방면의 능력을 심어줌과 동시에 연 제작의 모든 기법을 가르쳐주었다. 10살이 되던 해, 류빈은 자신의 첫 번째 ‘사옌(沙燕) 연(제비연)’을 만들었다. 그것을 본 류빈의 부모는 류빈이 연 설계와 제작에 남다른 영감과 소질을 갖고 있는 것을 발견했고, 그를 연 제작기법 계승자로 키우기로 결심했다.
13살 때 류빈은 미술에 입문해 중국 전통미술과 서양미술을 체계적으로 배우기 시작했다. 그는 중국 런민(人民)대학교 쉬베이훙(徐悲鴻)미술학원에 입학해 평면미술을 전공했다.
 

고궁 각루 앞에서 날리는 ‘제비연’[사진=류빈 제공]

청화발레[사진=인민화보사 ]

제비연[사진=인민화보사]

보상화 잠자리[사진=인민화보사]

금붕어[사진=인민화보사]


‘연’이 가져다 준 행운
베이징 디안먼(地安門) 거리에 위치한 류빈의 산스자이 연 가게에는 각양각색의 연이 진열되어 있다. 그의 연은 대부분 수작업으로 제작된 것으로, 평균 판매가가 200위안 이상이며 가장 비싼 것 중에는 1만 위안에 달하는 것도 있다. 이 같은 가격에 대해 류빈은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별 것 아닌 수제 연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중국 전통문화와 장인의 지혜가 응축되어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2005년부터 류빈의 연 사업은 상승가도를 달리기 시작한다. 그 해 베이징올림픽 마스코트가 발표되었는데, ‘푸와(福娃)’ 중 하나인 ‘니니(妮妮)’의 이미지가 바로 산스자이의 ‘제비연’에서 유래한 것이었다. 제비가 집에 둥지를 틀면 행운이 찾아온다는 중국의 민간전설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연은 실제로 류빈에게 행운을 가져다 주었다. 2008년 그의 연 가게 매출액은 10만 위안에 달했고, 그 해 8월 산스자이는 연 구매를 원하던 네덜란드 왕세자를 맞이하기도 했다. 그 즈음 몇 년 간 류빈은 그야말로 중국의 문화대사로서 해외의 각종 교류행사에 초청되어 연 제작기법을 선보였다.
2011년에는 중앙발레단이 그에게 해외 귀빈에게 선물할 연 제작을 요청했다. 중앙발레단의 <호두까기 인형> 공연을 기념하기 위한 연을 제작하기 위해 그는 1년 여의 시간을 들여 십 여 가지의 도안을 구상했고, 최종적으로 ‘청화(靑花)발레’가 선택됐다. ‘청화발레’는 제비연 모양을 토대로 도안과 채색에 청화자기의 색을 응용한 것으로, ‘제비’의 꼬리 부분은 발레 무용수가 발끝을 세우고 있는 모양을 하고 있다.
이후 류빈은 다양한 전통문화 요소를 그의 연 작품에 녹여내는 노력을 기울였다. 둔황(敦煌)의 ‘페이톈(飛天)’·벽화·목판화를 연에 재현했고, 티베트의 탕카예술도 그의 소재가 되었다.
그는 또 전통공예와 현대기술의 결합을 추진하고 있다. 매장에 최신 터치스크린과 3D 프린터·스캐너 등 디지털 기기를 도입했을 뿐만 아니라 유행하는 소프트웨어 기술을 연 도안 제작에 응용하고 있다. 선대가 남긴 작품과 비교하면서 류빈은 한가지 사실을 발견하고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전통적 수공예 기술과 현대 과학기술의 결합은 매우 훌륭하다. 더욱 정교하고 효율적이며 원하는 대로 연을 제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류빈은 그러나 15년 전보다 더 큰 외로움을 느낀다. 한 매체는 그를 “베이징 최후의 수제 연 장인”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실제로 날로 거세지는 도시화 물결 속에서 수제 연 제작기법은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과거에는 베이징이나 톈진(天津) 주변의 농촌지역을 가면 가가호호 연을 만들곤 했다. 그러나 지금은 농촌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기 위해 도시로 몰려들면서 연을 찾는 사람들이 줄어들었다. 게다가 비용을 낮추기 위해 품질이 떨어지는 재료와 기계를 사용해 연을 만들고 있는 것도 시장의 연 가격을 끌어내리고 있다.” 류빈의 말이다.
수제 연을 제작하는 사람들이 갈수록 줄어들면서 연의 생산량은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류빈은 적시에 ‘변화’를 모색했다. 연 판매가 ‘중심’이고 문화 전파는 ‘보조’적 위치에 놓여있던 전략을 문화 전파를 ‘중심’으로, 연 판매를 ‘보조’로 수정한 것이다.
최근 류빈은 대부분의 시간을 매장에서의 연 제작 강의에 할애하고 있다. 강의를 통해 수입을 높임과 동시에 보다 많은 사람에게 연 만들기의 즐거움을 알려줄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작은 연이지만 그 안에는 심오한 문화가, 그리고 류씨 가문의 꿈이 깃들어 있다. 비록 수 천 미터 상공을 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산스자이의 연에는 진한 정이 녹아들어 있다. “수제 연 제작의 맥을 이어온 지 15년이 되었다. 나는 내 손에 쥔 연의 끈을 절대 놓치지 않을 것이다.” 그에게 있어 수제 연 제작은 목숨만큼 사랑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 본 기사는 중국 국무원 산하 중국외문국 인민화보사가 제공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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