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열의 디지털 콘서트 4] 봉준호의 옥자와 황소개구리의 공간 생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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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7-06-1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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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김홍열]



김홍열 (초빙 논설위원 · 정보사회학 박사)

1970년대 새마을 운동이 본격화되면서 농촌 소득 증대의 일환으로 미국과 일본에서 황소개구리를 수입했다. 식용으로 키워 판매하면 돈이 된다고 선전했고 여러 농가에서 분양받아 키웠지만 수지가 맞지 않았다. 버려진 황소개구리는 생태계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일단 천적이 없었고 무게가 최대 800g까지 나가는 황소개구리는 작은 뱀까지 잡아먹었다. 온 국토가 황소개구리로 난리가 났다. 문제가 커지자 정부가 포획 상금을 내걸었고 여러 사람들이 황소개구리 포획에 나섰다. 많이 잡은 사람들은 TV 뉴스에 출연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세월이 흘렀고 살아남은 황소개구리는 우리 생태계의 일원이 되었다. 우리나라 양서류 목록에 올라온 우리 개구리가 되었다.

황소개구리 말고 생태계에 영향을 미칠 또 다른 외래종이 최근 나타났다. 미국 온라인 스트리밍업체 넷플릭스가 만든 슈퍼돼지 옥자가 그 주인공이다. 약 600억원을 투자해 만든 새로운 종이다. 옥자가 수입되면서 한국 영화 생태계가 혼란스럽게 되었다는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다. 기존의 투자-제작-배급-상영-온라인 배급의 생태계가 옥자 때문에 무너질 가능성이 커졌으니 생태계 유지를 위해 옥자의 상륙을 저지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커지고 있다. 이런 주장들은 주로 3대 멀티 플렉스 영화관 중심으로 나오고 있다. 한국 영화 시장의 절대적 주도권을 갖고 있는 3대 영화관은 결국 옥자의 상영을 불허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이제 봉준호의 옥자는 어떻게 될까. 뛰어놀 스크린이 없으니 외롭게 죽어갈까 아니면 꿋꿋하게 살아 남아 황소개구리처럼 우리 생태계의 당당한 일원이 될까. 우선 옥자가 뛰어놀 수 있는 스크린이 최대 몇 개나 되는지 알아보자. 영화진흥위원회에서 펴낸 2016년 통계 자료에 의하면 2016년 말 전국 스크린 수는 총 2575개이고 이 중 3대 영화관의 스크린 수는 2379개로 92.4 %의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최대 196개의 스크린이 옥자의 놀이터가 될 수 있는데 6월 19일 현재 보도에 의하면 100여개의 스크린에서 옥자를 상영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나마 대부분 영화관 선택 1순위에서 비교적 멀리 떨어져 있는 소규모 동네 극장들이다. 600억원짜리 옥자가 생존하기에는 너무 빈약한 규모다. 옥자의 생존이 위태로워 보인다.

그러나 황소개구리와 달리 옥자는 두 개의 생태계를 가지고 있다. 하나는 2575개의 스크린으로 이루어진 물리적 공간이고 다른 하나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 존재하는 온라인 속 공간이다. 옥자는 이 두 개의 공간에 동시에 속하고 있다. 두 개의 공간 중 어느 하나의 공간에서만 살아남으면 된다. 옥자를 만든 넷플릭스는 이 점을 분명히 알고 옥자를 만들어 한국 시장으로 보냈다. 온라인 공간에서 옥자는 살아남을 것이고 중장기적으로 오프라인 공간의 생태계를 바꿀 것으로 보인다. 극장에서의 상영과 온라인 배급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영화가 점차 늘면서 3대 영화관의 영향력도 어느 정도 축소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고 축소된 영향력의 일부를 넷플릭스가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넷플릭스의 전략은 사실 새로운 것이 아니다. 넷플릭스는 막강한 재력을 바탕으로 양질의 온라인용 콘텐츠를 만들어 미국 방송사들의 기존 고객을 빼앗아 갔다. 이미 미국에서는 케이블 가입자 수를 넘어섰다. 넷플릭스는 계속 가입자를 늘리고 있지만 케이블 시청자는 계속 줄어들고 있다. 넷플릭스의 다음 행보는 당연히 극장으로 향할 수밖에 없고 극장의 입장에서는 반대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한국적 상황이다. 넷플릭스의 옥자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대답은 비교적 간단하다. 누구의 관점에서 옥자를 보느냐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이다.

우선 극장의 입장에서 본다면 불행할 수밖에 없다. 한국처럼 제작·배급·상영 모두 맡고 있는 멀티 플렉스 영화관 입장에서는 영화와 온라인 동시 상영이 치명적이다. 매출 감소가 분명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비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영화를 볼 수 있는 플랫폼이 많은 것이 좋다. 영화관, IPTV, 케이블, 모바일, 온라인 등 선택할 매체가 많으면 당연히 콘텐츠 접근성이 더 좋아진다. 이렇게 되면 영화는 여러 동영상 콘텐츠 중의 하나가 된다. 영화가 가져다주는 대형 화면의 영화적 서사는 영화관을 찾는 일부 사람들에게만 의미가 있게 된다.

다시 황소개구리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처음 좋은 목적으로 수입되었다가 이내 포획의 대상으로 전락했지만 결국 살아남아 자연 생태계의 일원이 되었다. 생태계는 속성상 늘 유동적이기 마련이다. 고정적인 규칙은 없다. TV가 처음 등장할 때 영화산업의 몰락을 예견한 사람이 많았지만 현실은 다르게 전개됐다. 영화는 살아남았고 사람들은 더 다양하게 영화와 콘텐츠를 즐기고 있다. 음악의 경우에도 LP, 테이프, CD에서 음원으로 생태계가 재구성됐다. 현재의 영화 생태계 역시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계속 바뀔 수 있다. 필요한 것은 좋은 영화지 좋은 영화관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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