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창] 이승철만 지우면 전경련 거듭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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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7-03-23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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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 조준영 기자= 두 사람은 나란히 새 일을 맡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승철 전 전경련 부회장은 모두 2013년 2월 취임했다. 물러난 시점도 비슷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이달 10일 파면됐다. 이승철 전 부회장이 퇴임한 날은 이보다 보름쯤 빨랐다. 시작은 모르겠다. 끝은 무관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같은 이유로 물러났다.

이승철 전 부회장이 4년 전 취임사에서 강조한 것은 신뢰다. "우리 비전이 소수집단이 아닌 국가와 국민을 위한 것이라는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신뢰는 동반자라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잘사는 나라, 행복한 국민을 만드는 데 기업이 앞장서야 한다." 재계만 일방적으로 대변하지 않겠다는 약속도 담았다. "모든 국민이 전경련 회원사다. 국가와 국민을 생각하는 기업모임으로 거듭나겠다. 모든 국민이 미소 지을 수 있는 희망찬 경제, 따뜻한 미래를 만들자."

신뢰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승철 전 부회장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청문회에 출석했다. 정경유착에 앞장섰고, 국정농단에 공모한 혐의가 드러났다. 그는 전경련을 존폐 위기에 빠뜨렸다. 4대 그룹인 삼성·현대차·SK·LG그룹이 모두 전경련을 탈퇴했다. 전경련은 4대 그룹에서 연간 회비 수입 가운데 70%를 충당해왔다.

이승철 전 부회장은 욕심을 여전히 못 버렸다. 그는 물러나면서 퇴직금으로 20억원을 받았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상근고문 자리와 격려금까지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경련은 과거 부회장 출신에게 상근고문으로 예우해 주기도 했다. 상근고문은 재직 시절에 비해 큰 차이 없는 급여를 받을 수 있다. 사무실과 개인비서, 차량과 운전기사도 주어진다. 격려금은 최대 10억원에 이른다.

전경련이 올해 예산을 40% 삭감했다. 4대 그룹이 탈퇴하는 바람에 허리띠를 졸라맬 수밖에 없다. 전경련 임직원이 이승철 전 부회장에게 느끼는 배신감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전경련은 예산뿐 아니라 직원도 크게 줄여야 할 위기에 몰렸다. 이승철 전 부회장은 아랑곳없다. 그는 전경련 허창수 회장과 권태신 신임 부회장에게 끈질기게 상근고문 자리와 격려금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정신인지 모르겠다." 불만이 전경련 안에서도 터져나왔다. 결국 이승철 전 부회장이 제시한 요구는 모두 거부됐다.

전경련은 혁신위원회를 만들었다. 혁신위원장은 허창수 회장이다. 혁신위원으로는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과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 김기영 전 광운대 총장을 비롯한 인사가 재계 안팎에서 참여했다. 3대 혁신방향도 나왔다. 정경유착 근절과 투명성 제고, 싱크탱크 기능 강화가 언급됐다.

하지만 허창수 회장과 권태신 부회장은 과거 책임을 모두 밖으로 돌렸다. 허창수 회장은 얼마 전 연임을 수락하면서 말했다. "앞으로 부당한 외부 압력에 단호하게 대처할 것이다." 권태신 부회장은 한술 더 떴다. "정치·사회 상황이 독특해 어쩔 수 없이 일어난 문제다. 문제는 전경련만 있는 게 아니다. 사회 전체가 관행적으로 해왔다. 전경련은 진심으로 사과했다." 비난이 들끓었다. 문재인 대선캠프에 합류한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피해자 코스프레'라고 꼬집었다.

이승철 전 부회장은 스스로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 어처구니없는 요구로 전경련 해체론에 더욱 힘을 실어줬다. 박상인 서울대 교수는 "정경유착을 끊으려면 전경련이 해산하는 수밖에 없다"고 단언했다.

전경련을 없애지 말자는 목소리도 분명히 있다. 혁신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것이다. 민간외교와 정책공조 면에서 다른 단체로 대체하기 힘들다는 이유도 댄다. 그런데 아직 혁신이 안 보인다. 말만 요란하다. 결정적인 인적 쇄신은 기미조차 없다. 연임한 허창수 회장만 그런 게 아니다. 권태신 부회장도 재벌을 대변해 온 한국경제연구원을 이끌던 인물이다. 외부 혁신위원도 마찬가지다. 정부나 대학에 몸담았을 때 재계에 이렇다 할 쓴소리를 한 적이 없다.

전경련이 4대 그룹 복귀를 자신한다는 얘기가 들린다. 시간은 흐른다. 논란이 잦아들기만 기다리는 것 같다. 언제 그랬냐는 듯 과거로 돌아갈지 모른다. 전경련은 이승철만 지워서는 거듭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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