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공효진 "'싱글라이더'로 뿌려놓은 씨앗, 언젠가는 거둘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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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7-03-02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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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싱글라이더'에서 수진 역을 맡은 배우 공효진[사진=워너브라더스 코리아(주) 제공]

아주경제 최송희 기자 = 어떤 의미로는 신선했다. 영화 ‘싱글라이더’ 속, 배우 공효진(37)의 얼굴은 지난 작품들과는 판이했으니 말이다.

영화 ‘싱글라이더’(감독 이주영·제작 ㈜퍼펙트스톰필름·배급 워너브러더스 코리아㈜)는 증권회사 지점장으로서 안정된 삶을 살아가던 가장 재훈(이병헌 분)이 부실 채권사건 이후 가족을 찾아 호주로 사라지면서 충격적인 진실과 마주하게 되는 내용을 담은 작품이다.

이번 작품에서 공효진은 재훈의 아내 수진 역을 맡았다. 영화 ‘여고괴담2’를 시작으로 ‘미쓰 홍당무’, ‘미씽: 사라진 여자’ 등에 이르기까지 늘 강렬하고 예리한 캐릭터를 연기했던 공효진은 이번 작품을 통해 지극히 평범한 얼굴을 그려냈다. 하지만 공효진은 이에 대한 어떤 변명이나 미련도 없었다. 오로지 “맡은 바 임무를 다 하려” 노력했을 뿐이었다.

“사실 저도 수진 캐릭터에 공감이 잘 안 갔어요. 오히려 재훈에게 감정이 이입됐죠. 하지만 수진이를 연기하면서, 수진이의 용도를 다할 수 있도록 노력했어요. 그가 새로운 삶을 꿈꾸고 자아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것들도 있었지만 어쩌면 그런 건 수진을 미화하기 위한 수단인 것 같아요. 그는 재훈의 쓸쓸함을 부각하기 위한 캐릭터였고 수진을 미화할 필요 없지 내가 맡은 롤에 최선을 다하고자 했죠.”

영화 '싱글라이더'에서 수진 역을 맡은 배우 공효진[사진=워너브라더스 코리아(주) 제공]


수진은 남편 재훈의 권유로 호주 시드니에서 아들 진우의 조기 유학생활을 뒷바라지하고 있는 인물. 타지 생활에 외로움을 느낀 수진은 다정한 이웃 크리스와 도움을 주고받으며 조금씩 가까워진다. 평화로운 호주의 생활이 익숙해질 무렵, 결혼 후 잊고 지내던 바이올린 연주를 시작하고 새로운 삶을 꿈꾸게 된다.

“제가 생각했을 때 수진이는 어릴 때부터 바이올린을 해왔을 거예요. 엄마가 이것저것 시켜봤는데 그나마 잘하는 게 바이올린이었던 거죠. 그렇게 바이올린을 배우고 예고까지 진학해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재훈을 만나 결혼을 했다고 생각했어요. 감독님이 수진이에 대해 ‘강남 일대에서 살고, 아이를 차로 픽업해 가는 여자’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 말에 제 생각이 딱 맞아떨어지더라고요. 그런 반복적인 생활로 즐거움이 없는 인물이라고 생각해서 건조하고 보수적인 느낌들을 계속 그려왔어요.”

단조로운 한국 생활과는 달리, 호주에서의 수진은 밝고 경쾌하다. 영화가 공개된 후 수진에 대한 여론이 갈린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재훈을 방치했다며 수진을 야속하다 여기는 관객들이 있었고, 수진의 외로움을 깊이 이해한다는 반응들도 적지 않았다.

“오히려 결혼하신 분들은 수진이가 백번 이해가 간다고 하시는 거예요. 하하하. ‘크리스 좀 보라고 얼마나 다정하냐’고 하시면서요. 오죽하면 ‘그냥 호주에서 크리스랑 살았으면 좋겠다’고까지 하시겠어요. 저는 사실 결혼을 하지 않아서 수진이가 잘 이해가 안 갔던 것 같아요. 크리스와의 관계도 그랬고요.”

공효진의 우려와는 달리 크리스와의 관계는 라이트하고 감성적으로 그려졌다. 때문에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한 관객들의 반응도 우호적이었을지 몰랐다.

“처음엔 조금 더 끈적했어요. 감독님, 제작사 대표님, PD님까지 수진이를 두고 고민했었죠. 크리스와 격한 키스신이 있었는데 이런 게 너무 강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걱정했었어요. 사실 영화가 ‘해피엔드’ 같은 톤 앤 매너를 가졌다면 더 강렬하고 집요해도 좋지만, 우리 영화는 그런 톤이 아니잖아요. ‘둘이 진짜 그랬단 말이야?’라고 수군거릴 정도로 직접적이라서 수진이 빠져나갈 구멍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더 라이트한 관계로 그려지도록 만들었죠.”

영화 '싱글라이더'에서 수진 역을 맡은 배우 공효진[사진=워너브라더스 코리아(주) 제공]


이쯤 되니 궁금해졌다. 그토록 수진을 이해할 수 없었던 공효진이 ‘싱글라이더’ 속, 수진을 연기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시나리오가 너무 좋았어요. 단편소설을 읽는 것처럼 재밌고, 여운도 많이 남았죠. ‘미씽’이 그랬던 것처럼 후유증이 깊었어요. 슬픈 드라마를 보고 왠지 모르게 우울한 느낌이 남고, 자고 일어나도 그런 감정에 취할 때가 있잖아요. 이 작품도 마찬가지였어요. 재훈이나 진아의 모습이 제 쓸쓸한 감정을 자극했어요.”

보통의 배우들이 단순한 캐릭터보다는 “숙제 같은 캐릭터에 도전 의식”을 느끼는 것이 사실이지만, 공효진의 경우는 반대였다. 그는 ‘행복’ 속 수연이나 ‘싱글라이더’의 수진을 ‘숙제’처럼 느꼈다.

“제가 연기한 캐릭터 또는 공효진이라는 배우는 강하고 진한 농도를 가진 것 같아요. 희석한다고 완전히 희석되지는 않더라고요. 젤리가 물이 돼버렸다고, 더는 젤리가 아닌 건 아니잖아요? ‘미씽’ 인터뷰 때, 어떤 분은 ‘더는 공블리 같은 캐릭터는 안 할 거냐’고 하셨는데 떠나보냈다고 끝나는 건 아니잖아요. 재훈의 아내 역할을 두고 제 색을 희석시키기 위한 찬스라고 생각하고 이 작품을 선택했어요. 더 많은 이야기나 전사를 담을 필요도 없었죠. 수진은 이 이야기의 중점이 아니고, 캐릭터를 부풀릴 필요도 없어요. 할 일을 정확히 해내면 되는 거예요.”

영화 '싱글라이더'에서 수진 역을 맡은 배우 공효진[사진=워너브라더스 코리아(주) 제공]


물론 공효진에게도 “밋밋한 역을 살려내고 싶은 열망”은 있었다. 하지만 “경력에 맞게 한그루의 나무를 보기보다는 숲을 보려는 시도”를 끊임없이 해내고 있다.

“그런 시기가 있어요. 관객에게 저를 각인시키고 싶을 때가요. 물론 지금 이 시점에 그런 게 필요 없다는 건 아니고 그 시기를 넘어섰다고 할까요? 관객들이 영화를 보고 ‘공효진이 출연했는데도 특이점이 없네? 실망스럽다’고 하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이야기에 맞게 희석될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그런 이유로 공효진은 눈에 띄는 캐릭터가 아닌 영화, 그 자체로 남는 것을 택했다. 어느덧 데뷔 19년 차. 그는 “매년 쉬지 않고 작품을 해왔으니 여러모로 변화하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다.

“‘싱글라이더’는 제가 성장하고 발전하는 것에 적절한 작품인 것 같아요. 롤이 적더라도 이렇게 한 번씩 워밍업을 하는 거죠. 예전에 ‘행복’을 찍을 때도 그랬어요. 당시 와일드한 캐릭터만 연기했던 제가, ‘행복’ 이후 섹시하고 요염한 롤까지 확장할 수 있었거든요. 심지어 노희경 작가님은 ‘행복’을 보고, ‘괜찮아 사랑이야’를 제게 주셨다고 했어요. 뿌려놓은 씨앗은 거두게 마련이에요. 수진으로 뿌려놓은 씨앗이 언젠가 활짝 필 수 있길 기대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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