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와이드 사설] 기술 강국을 넘어 목적 강국으로…테슬라의 묘기가 대한민국에 던지는 질문

  • 기술을 잘 만드는 나라에서 기술을 어디에 써야 하는지 아는 나라로

테슬라 차량이 아래로 추진력을 내뿜으며 공중에 떠 있다사진주영섭 교수 제공
테슬라 차량이 아래로 추진력을 내뿜으며 공중에 떠 있다[사진=주영섭 교수 제공]

기술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세계 최초의 기술을 개발하고, 불가능해 보이던 일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만으로 기술의 가치를 증명할 수 있는가. 인공지능(AI)과 로봇, 반도체와 바이오 기술이 인류 문명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는 지금, 우리는 이 근본적인 질문을 다시 던져야 한다. 기술의 우수성을 넘어 기술의 목적과 사명을 묻는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최근 화제가 된 테슬라의 차세대 로드스터 시연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자동차가 벽을 타듯 움직이고 공중에서 회전하며 다른 차량을 뛰어넘는 장면은 경이롭다. 고도의 추진·제어·균형 기술이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광경이다. 그러나 환호가 끝난 자리에는 하나의 질문이 남는다. 도대체 이 기술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자동차가 하늘을 날아 교통체증을 해결하고, 응급환자를 신속히 이송하며, 도서·산간지역의 이동권을 넓힌다면 그 목적은 분명하다. 자율주행 기술이 교통사고를 줄이고 고령자와 장애인의 자유로운 이동을 돕는다면 그것 역시 인류의 삶을 바꾸는 혁신이다. 그러나 자동차가 공중제비를 돌고 다른 자동차를 뛰어넘는 기술은 어떤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가.

물론 시연 과정에서 축적한 기술이 훗날 안전성과 주행 성능을 높이는 데 활용될 수 있다. 기초연구와 실험의 가치를 부정해서도 안 된다. 문제는 기술적 가능성 자체를 최종적인 성취로 착각하는 데 있다. 화려한 시연은 기술의 출발점일 수 있어도 기술의 존재 이유를 대신할 수 없다. 기술은 쇼가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그 가치를 입증해야 한다.
 
테슬라 차량들이 늘어선 무대 위로 한 대가 공중에 떠올라 있다사진주영섭 교수 제공
테슬라 차량들이 늘어선 무대 위로 한 대가 공중에 떠올라 있다[사진=주영섭 교수 제공]

테슬라의 주가 움직임을 이번 시연 하나로 설명할 수는 없다. 주가는 실적과 수익성, 경쟁 환경, 미래 성장성 등 복합적인 요인에 따라 움직인다. 다만 투자자들이 기술적 경이로움과 지속 가능한 사업 가치를 구별한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아무리 놀라운 기술이라도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경제적·사회적 가치를 창출하지 못한다면 지속 가능한 혁신으로 평가받기 어렵다.

이제 대한민국도 기술을 바라보는 관점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첫째, 국가 연구개발(R&D) 정책의 중심을 기술 확보에서 국가적 난제 해결로 전환해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세계 최초, 세계 최고, 특허 건수, 논문 실적, 기술성숙도 등을 중요한 성과 지표로 삼아왔다. 이러한 지표는 필요하지만 충분하지 않다. 앞으로는 개발된 기술이 국민의 삶을 얼마나 개선했는지, 산업현장의 문제를 얼마나 해결했는지, 사회적 비용을 얼마나 줄였는지를 함께 평가해야 한다. 저출생과 고령화, 지역소멸, 기후위기, 에너지 부족, 산업재해와 같은 국가적 난제를 중심에 놓고 연구개발의 목표를 재설계할 필요가 있다.

둘째, 기업의 기술전략도 공급자 중심에서 문제 해결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 기업이 보유한 기술로 무엇을 만들 수 있는지를 묻기 전에 고객과 사회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를 물어야 한다. 기술이 시장을 창출하는 경우도 있지만 시장과 사회의 요구를 외면한 기술은 연구실의 성과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기업의 경쟁력은 기술을 얼마나 많이 보유했느냐보다 그 기술을 실제 제품과 서비스, 생산성과 삶의 질 향상으로 얼마나 연결하느냐에 달려 있다.

셋째, AI와 피지컬 AI의 발전 방향을 분명히 해야 한다. 로봇이 사람처럼 춤추고 공중제비를 도는 모습은 놀랍다. 그러나 대한민국에 더욱 절실한 것은 위험한 산업현장에서 노동자를 보호하는 로봇, 고령자를 돌보는 로봇, 농촌의 일손 부족을 해결하는 로봇이다. 제조업과 의료·돌봄·농업·물류를 혁신하는 피지컬 AI야말로 우리가 집중해야 할 전략 분야다. 기술 시연의 화려함이 아니라 현장의 문제 해결 능력이 경쟁력의 기준이 돼야 한다.

넷째, 반도체와 에너지, 바이오 산업에도 목적 중심 혁신을 적용해야 한다. 반도체 강국의 목표는 단순히 더 빠르고 더 많은 반도체를 생산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적은 전력으로 더 많은 연산을 수행하는 AI 반도체,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전력반도체, 의료와 산업의 혁신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 부품으로 발전해야 한다. 바이오 기술 역시 논문과 특허를 넘어 질병 예방과 치료, 건강수명 연장이라는 인간적 목적을 향해야 한다. 기술의 최종 수혜자는 인간이어야 한다.

다섯째, 국가 R&D의 예산 배분과 평가 체계를 혁신해야 한다. 정부는 부처별·기술별로 분산된 연구개발 사업을 국가적 임무 중심으로 연계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 기업과 대학, 연구기관, 지방정부가 협력하도록 해야 한다. 연구개발의 성공 여부도 단기적인 성과 수치만이 아니라 현장 실증, 사업화, 공공서비스 개선, 장기적인 사회적 편익을 종합해 판단해야 한다. 특히 지역을 단순한 연구시설 유치 경쟁의 장이 아니라 국가적 난제를 해결하는 실증과 혁신의 현장으로 만들어야 한다.

여섯째, 목적 중심 혁신이 기초과학의 자유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 당장 쓸모를 설명하기 어려운 연구에서 인류의 미래를 바꾸는 발견이 탄생하기도 한다. 따라서 호기심에 기반한 기초연구는 장기적이고 안정적으로 지원하되, 응용연구와 산업기술은 해결해야 할 문제와 성과를 더욱 명확히 해야 한다. 탐구의 자유와 사회적 책임은 대립하는 가치가 아니다. 두 가치를 조화시키는 것이 성숙한 과학기술 국가의 책무다.

일곱째, 기술정책의 최상위 목표를 인간과 문화와 자연의 공존에 두어야 한다. AI가 인간의 일자리를 무조건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창의성과 존엄을 높이고, 디지털 기술이 문화를 획일화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성을 확장하며, 산업혁신이 자연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생태계를 만드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기술의 진보가 곧 문명의 진보는 아니다. 기술이 인간과 사회를 위해 작동할 때 비로소 문명의 진보가 된다.

대한민국은 반도체와 자동차, 조선과 배터리, 정보통신 분야에서 세계적인 기술 역량을 축적했다. 이제 필요한 것은 기술력의 축적을 넘어 그 기술을 활용할 국가적 목적과 비전을 정립하는 일이다. 정부는 국가적 난제를 제시하고, 기업은 시장과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며, 대학과 연구기관은 미래의 가능성을 개척하는 새로운 혁신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미국과 유럽을 비롯한 주요 선진국에서도 사회적 과제를 중심으로 연구개발과 산업정책을 설계하려는 움직임이 확산하고 있다. 대한민국 역시 기술 패권 경쟁에 뒤처지지 않는 것을 넘어 어떤 기술문명을 만들어갈 것인지 스스로 답해야 한다. 기술의 속도만큼 중요한 것은 기술이 향하는 방향이다.

테슬라의 자동차가 공중제비를 도는 장면에 감탄할 수는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미래를 그런 장면에 대한 환호만으로 설계할 수는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묘기를 위한 기술이 아니라 국민의 삶을 바꾸는 기술, 인류의 난제를 해결하는 기술, 다음 세대에 더 나은 세상을 물려주는 기술이다.

기술 강국은 기술을 잘 만드는 나라다. 그러나 진정한 선진국은 그 기술을 어디에 써야 하는지 아는 나라다.

대한민국은 이제 기술 강국을 넘어 목적 강국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AI 시대의 실용주의이며, 지속 가능한 번영을 실현하는 길이다. 기술을 위한 기술의 시대를 넘어 인간을 위한 기술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 이것이 대한민국 과학기술 정책과 기업 경영이 함께 추구해야 할 새로운 국가적 사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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