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가 혁신, 교사 '헌신' 대신 '시스템'으로"…서·논술형 확대, '한국형 AI 보조·인간 중심 채점'이 답이다

  • 서·논술형 확대 방안 모색 위한 국회 토론회 열려…'선택형 정답 맞히기' 넘어 '논증·사고 역량' 평가로

  • 박종임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연구위원 "서논술형 평가 문항 타당성·채점 기준 정렬 우선"

  • 정성윤 에듀리프트 부대표 "AI는 '단독 채점자' 아닌 '인간 보조(HITL) 도구'로"

  • 초·중·고 교사들 "교실선 이미 실천 중…교사 개인 부담 덜어줄 공동 책임제·공공 인프라 절실"

  • 플로어에선 "단순 문항 추가 아닌 지필평가 체제 전환 필요…교사 헌신 기댄 정책은 한계" 목소리

‘서·논술형 평가 확대 방안 모색을 위한 국회 토론회’가 8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 제7간담회실에서 열린 가운데 교육계 관계자들이 의견을 주고 받고 있다 사진김준환 기자
‘서·논술형 평가 확대 방안 모색을 위한 국회 토론회’가 8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 제7간담회실에서 열린 가운데, 교육계 관계자들이 의견을 주고 받고 있다. [사진=김준환 기자]
“이제는 교사 개인의 헌신에 기댈 때가 아니다. 서·논술형 평가가 교육 현장에 제대로 안착하려면 무엇보다 국가와 교육청 차원의 정교한 제도와 공공 시스템이 선행되어야 한다.”

8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 제7간담회실에서 열린 ‘서·논술형 평가 확대 방안 모색을 위한 국회 토론회’ 현장에서 교육 정책 관계자와 일선 교사들이 머리를 맞댔다. 이들은 학생들의 창의적·비판적 사고력을 기르기 위한 평가 패러다임 전환의 필요성에 깊이 공감하면서도, 이를 뒷받침할 구체적인 출제·채점 체계와 한국형 인공지능(AI) 보조 시스템 구축이 시급하다는 정책 제언을 쏟아냈다.

특히 최근 국가교육위원회가 2028~2037 중장기 국가교육 발전계획 시안 발표를 앞두고 ‘수능 서·논술형 도입’과 ‘수능·내신 절대평가 전환’을 핵심 공론화 의제로 다루면서 교육계와 학부모의 찬반 격론이 뜨겁게 달아오른 상황이다. 이 같은 중차대한 시점에 열린 이번 토론회는 단순한 시험 기술 논의를 넘어 대한민국 대입과 공교육의 미래를 가를 정책 분수령으로 꼽히며, 뜨거운 사회적 관심을 모았다. 

이날 행사는 강득구·김문수 국회의원실을 비롯해 교육정책디자인연구소 등 교육시민단체들이 공동 주최하고 서울·경기·대전시교육청이 후원했다.

김경희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수업·평가혁신연구본부장이 좌장을 맡아 진행된 토론회에서는 ‘사교육 조장’이나 ‘채점 불공정’이라는 기존의 이분법적 찬반 프레임을 넘어, 초·중·고 교실에서 축적된 현장 실천 경험과 AI·에듀테크의 현실적 접목 방안에 대한 실효성 높은 대안들이 집중 논의됐다.
“문항 정교화 없는 공정성은 허상…AI는 채점기 아닌 ‘신뢰도 증폭기’ 돼야”
첫 번째 발제자로 나선 박종임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연구위원은 서·논술형 평가의 공정성이 단순히 '채점자 간 점수 일치율'에만 매몰돼서는 안 된다고 못 박았다. 

박 연구위원은 “서·논술형 평가 논의에서 흔히 채점 가능성만 따지지만, 문항의 타당성이 무너지면 채점의 공정성도 성립할 수 없다”며 “국가수준 성취기준-평가목표(AO)-반응지시어(Command Terms)-채점기준이 긴밀히 정렬되는 문항 설계가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단순히 ‘설명하시오’, ‘작성하시오’라는 모호한 발문에서 벗어나 학생이 발휘해야 할 인지적 사고 수준을 명확히 유도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영국 A-Level과 독일 아비투어, 미국 ETS의 사례를 들며 “대단위 평가일수록 AI 완전 자동채점보다는 기준 응답(시드 답안)과 다중 채점을 활용한 '인간 채점 프로세스'를 먼저 설계하고, AI는 이상치 검증 등 점검 도구로 활용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두 번째 발제자인 정성윤 에듀리프트 부대표(전북대 객원교수·교육부 AI인재양성추진위원)는 수능 등 대입 평가에서의 서·논술형 도입 로드맵과 AI 자동채점(AES)의 글로벌 기준을 짚었다. 

정 부대표는 “해외 대규모 평가 어디에서도 AI를 '단독 채점자'로 쓰지 않는다. 중국 가오카오도 주관식은 인간이 전량 채점하고 AI는 채점자의 편향을 실시간 감시하는 ‘품질검사’로 쓴다”며 ‘인간 참여형(Human-in-the-Loop, HITL)’ 혼합 설계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그는 “한국형 수능 도입 시에도 AI가 초벌과 검증을 맡고, 현직 교사로 구성된 공인 채점단이 최종 판정하는 구조(인간 검수율 최소 25% 법제화)를 갖춰야 한다”며 “컴퓨터 기반 평가(CBT) 전환, 절대평가 전환, 손글씨 OCR 오류 보완 등 충격을 흡수할 제도적 완충 장치가 병행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초·중·고 교실은 이미 ‘실천 중’…“교사 혼자 방어하게 두지 않는 시스템 절실”
8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 제7간담회실에서 열린 ‘서·논술형 평가 확대 방안 모색을 위한 국회 토론회’에선 초·중·고 교실에서 축적된 현장 실천 경험과 AI·에듀테크의 현실적 접목 방안에 대한 실효성 높은 대안들이 집중 논의됐다 사진김준환 기자
8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 제7간담회실에서 열린 ‘서·논술형 평가 확대 방안 모색을 위한 국회 토론회’에선 초·중·고 교실에서 축적된 현장 실천 경험과 AI·에듀테크의 현실적 접목 방안에 대한 실효성 높은 대안들이 집중 논의됐다. [사진=김준환 기자]
이어 진행된 지정토론에서는 초·중·고 현장에서 서·논술형 평가를 직접 운영해 온 교사들과 시·도교육청 정책 담당자가 생생한 현장 경험과 정책 과제를 공유했다.

김지영 서울특별시교육청 장학관은 “학교 현장의 HITL은 기술적 안전장치를 넘어 교사의 전문성을 보장하는 교육적 원칙이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김 장학관은 “교사가 AI 판단을 무비판적으로 따라가지 않도록 서울시교육청 평가지원시스템 ‘채움AI’는 교사가 먼저 학생 답안을 읽고 기준을 세우는 ‘사전 채점’을 전제로 설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서울시교육청이 개발한 ‘K-DOT(사고의 깊이 기반 문항 프레임워크)’을 소개하며 “평가 결과에 대한 민원을 교사 개인이 혼자 감당하도록 방치하지 말고, 학교 교과협의회와 교육지원청 평가협의체 등 ‘공동 책임체계’를 정착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고교 현장 사례를 발표한 박상욱 대구 경북대사범대부설고 교사(영어)는 “수능 영어의 간접 쓰기 문항은 학생이 실제로 글을 구성하는 역량을 재지 못한다”고 지적하며 지난 2년간 학교 단위 백워드 설계 및 ‘대구형 서·논술형 평가’ 선임채점관으로 참여한 경험을 소개했다. 

박 교사는 “표본 채점, 세부 채점기준 합의, 기준 답안(시드)을 통한 지속적 모니터링이 가동되면 사회적으로 납득 가능한 신뢰도를 확보할 수 있다”며 “문제는 교사의 역량 부족이 아니라 역량을 지원하는 시스템의 부재다. ‘평가하기 쉬운 것’만 재려 하지 말고 ‘교육적으로 중요한 역량’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국가 차원의 문항 풀과 채점 모니터링 체제가 구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학교 현장을 대변한 임성은 화성 푸른중 수석교사(수학)는 “중학교는 이미 2022 개정 교육과정과 성취평가제에 발맞춰 서·논술형 평가가 교실의 일상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며 “단순 암기나 모범 답안 주입식 사교육은 깊이 있는 사고를 요구하는 서·논술형 평가 앞에서 힘을 쓰지 못한다”고 잘라 말했다. 

임 수석교사는 “정작 심각한 문제는 중학교에서 애써 키운 탐구 역량이 고등학교 진학 후 5지선다형 정답 맞히기식 수능 대비로 단절되는 ‘학교급 간의 괴리’에 있다”고 꼬집으며 “탐구 질문 중심의 수업-평가 일체화, 피드백을 통한 고쳐쓰기 루틴, 그리고 지역 간 격차를 줄일 공공 AI 평가 지원망 구축이 시급하다”고 제언했다.

초등 현장 실태를 발표한 정나라 수원 효천초 교사는 “초등 현장에서도 1~2학년부터 그림일기, 도덕, 사회, 수학 등 전 학년에 걸쳐 서·논술형 평가를 시도하고 있지만, 양적 확대에 비해 질적 진보는 고민이 깊다”고 토로했다. 

정 교사는 “수학에서 생각은 맞았는데 표현이 부족해 감점되거나, 채점 기준이 ‘바르게’, ‘자세히’ 등 모호한 부사어로 되어 있어 채점자마다 편차가 생기는 한계가 있다”며 “저학년(말과 그림)-중학년(설명과 이유)-고학년(논리적 표현과 관점 수용)으로 이어지는 발달 단계별 평가 지침과 함께, AI 도구 도입으로 교사의 업무가 이중으로 늘어나지 않도록 세심한 가이드라인과 공공 지원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단순 문항 추가 아닌 지필평가 체제 개혁을…교사의 ‘헌신’ 대신 ‘시스템’ 마련해야”
​​​​​​​지정토론 이후 이어진 종합 토론 및 청중 질의응답 시간에도 현장 교사와 교육 관계자들의 날카로운 질문과 제언이 쏟아졌다.

김연 국가교육위원회 위원은 “서·논술형 평가 경험이 부족한 전입 교사가 동료 교사와 협업해 출제·채점할 수 있기까지 걸리는 적응 시간과, 객관식 평가 대비 늘어나는 교사의 실제 업무 소요 시간”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이에 대해 박상욱 교사는 “동료 교사와 함께 협업하며 수업과 평가를 안착시키는 데 최소 한 학기 이상의 집중적인 시간이 필요했고, 학생 1인당 510분의 세밀한 피드백을 주는 등 초기 업무 부담은 매우 컸다”면서도 “이후 형성평가 단계에서 AI를 활용해 언어적 피드백을 보조받고 내용 피드백에 집중하면서 시간이 크게 단축됐다. 무엇보다 학생의 성장이 눈에 보였기에 감내할 수 있었다”고 답했다. 

임성은 수석교사 역시 “경기도 등에서 운영하는 6시간1박 2일 단위의 실습형·합숙형 연수가 큰 도움이 됐다”며 “채점의 수고로움은 크지만, 학생들의 백지 답안이 사라지고 수업 몰입도가 높아지는 교육적 효과를 체감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일선 교육 현장의 제도적 모순을 짚는 직언도 나왔다. 이수경 용인교육지원청 장학사는 “학교폭력 진술서를 받는 과정만 봐도 아이들이 사실을 논리적으로 기술하는 기초적 문해력조차 부족한 실정”이라며 “학부모와 학생은 1년 내내 지필평가와 수행평가에 시달리고 교사도 과중한 업무로 탈진해 있다. 기존 지필평가를 그대로 둔 채 서·논술형 평가를 또 얹는 방식은 반발만 부를 뿐”이라며 “평가를 ‘더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평가를 과감히 없애고 ‘바꾸는’ 평가 체제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서울 강서고 김성대 교사는 “한 학급 28명의 학생에게 50분 수업 시간 안에 질 높은 서·논술 피드백을 제공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며 “교사들의 헌신에만 기대어 방침과 지침으로 밀어붙여서는 고교학점제처럼 현장의 혼란만 초래한다. 교사들이 안심하고 학생의 성장을 도울 수 있도록 따뜻하고 탄탄한 행정·기술적 시스템을 먼저 설계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김경희 평가원 본부장은 “교사 개인의 헌신이 아닌 시스템으로 뒷받침해야 한다는 지적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정책 당국의 신중하고 타당한 제도 설계를 약속했다.

행사를 주관한 정미라 교육정책디자인연구소 소장(국교위 위원)은 마무리 발언을 통해 “현재 대입 수능 1등급의 60% 이상이 N수생인 현실은 기존 정답 맞히기식 5지선다 평가의 한계를 극명히 보여준다”며 “서·논술형 평가 확대를 두고 사교육 조장 여부 등 소모적인 찬반 이분법에 갇힐 것이 아니라, 학생들의 미래 사고력을 키우기 위해 어떤 시스템과 기술적 보완책을 마련해 갈 것인지 집단지성을 모아야 할 때”라고 토론회의 의미를 짚었다.
토론회에 앞서 좌장을 비롯해 발표자 토론자 등 참석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김준환 기자
토론회에 앞서 좌장을 비롯해 발표자, 토론자 등 참석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김준환 기자]
“AI 시대 ‘생각하는 힘’ 키워야…평가와 대입 혁신에 한목소리”
​​​​​​​한편, 이날 토론회를 공동 주최한 국회의원들과 교육감들도 서·논술형 평가 확대를 위한 정책적 뒷받침을 약속했다.

강득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서면 인사말을 통해 “자료를 읽고 생각을 세워 근거를 들어 표현하는 힘을 평가하려면 문항과 채점 기준이 명확해야 하고, 학생이 학교에서 충분히 배우고 연습할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며 “평가를 준비할 여건의 차이가 교육격차로 이어지지 않도록 학교와 교사를 지원하는 체계를 함께 설계하겠다. AI는 평가의 효율과 일관성을 높이되 최종 결과에 누가 책임질 것인가에 대한 신뢰도 함께 구축해야 한다”고 밝혔다.

국회 교육위원회 김문수 더불어민주당 의원 역시 “AI에게 모든 생각을 맡기는 시대에 학생들이 정보를 능동적으로 해석하고 자신의 판단을 설명하는 힘을 길러주는 방향으로 평가를 재검토해야 한다”며 “서울, 경기, 강원, 대전 등 여러 교육청이 서·논술형 확대를 추진하고 있는 만큼 채점 신뢰도, 교사 업무 부담, 시스템 안정성까지 종합적으로 아우르는 국가적 해법을 모으겠다”고 강조했다.

안민석 경기도교육감은 서면축사를 통해 “수능이 시작된 지 30년이 넘었지만 아이들은 여전히 정답 하나를 고르는 연습에 머물러 있고, 단순 암기와 계산은 이미 AI가 인간을 앞서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선생님이 소신껏 전문적 판단을 내리고 채점할 수 있도록 교육청이 든든한 방패막이가 되겠다”며 “AI는 선생님의 수고를 덜어주는 도구일 뿐 학생의 생각을 읽어내는 본질은 끝까지 교사의 몫이어야 한다. 교실 평가와 함께 대학 입시의 문도 함께 바뀌어야 교육 대전환이 완성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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