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국감에 출석한 국립대 병원장들은 극심한 필수의료 인력난과 수백억 원대 만성적자, 노후화된 인프라 등으로 인한 어려움을 호소했다. 여야 의원들은 국립대병원의 허술한 관리 체계와 방만한 운영을 질타하면서도, 정부를 향해 획기적인 재정 지원과 낡은 규제 철폐를 촉구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8일 보건복지부 산하 9개 거점 국립대병원과 3개 국립대 치과병원을 대상으로 2026년도 국정감사를 실시했다. 이날 감사에는 각 병원장들이 피감 기관 증인으로 출석해 의정 사태 장기화로 인한 경영 악화와 필수의료 인력 이탈 실태를 토로하며, 복지부와 국회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을 요청했다.
필수과 충원율 '바닥'·임금 격차 3배…"공공기관 지정 해제로 족쇄 풀어야"
이날 국감의 최대 화두는 심각한 '필수의료 인력 이탈'이었다.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9개 거점 국립대병원의 필수과 전공의 충원율이 약 43%에 불과하다"며, 전문의 공백으로 신생아 중환자실이 비상 체제로 돌아가야 했던 전북대병원 사태를 설명했다.김태호 국민의힘 의원 역시 "필수의료 전문의 채용이 10%대에 그친 곳도 있다"며 의사 구인난의 심각성을 지적했다. 김윤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경상국립대병원 신생아 중환자실 전문의의 경우 주 최대 150시간, 최대 연속 6일 근무라는 살인적인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며 환자 안전과 직결된 인력난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병원장들은 사립대 병원 및 개원가와의 극심한 '임금 격차'와 '경직된 정부 규제'를 근본 원인으로 지목했다. 김원섭 충북대병원장은 "의정 사태 이후 필수의료 전문의 이탈이 심각하다"며 "사립대병원이나 1, 2차 병원과 비교해 보수가 최소 3배 이상 차이나 국립대병원 여건으로는 의사를 도저히 잡을 수가 없다"고 토로했다.
화정석 경상국립대병원장도 "응급의료센터를 24시간 정상 운영하려면 22~24명의 전문의가 필요하지만, 현재 교수는 단 2명뿐이라 계약직 촉탁의로 겨우 공백을 메우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총액 인건비 통제를 받는 기타 공공기관 규제 탓에 시장 가격에 맞는 임금을 지급하지 못해 벌어지는 촌극"이라며 조속한 제도 개선을 촉구했다.
손영래 복지부 지역필수공공의료실장은 "내년 상반기까지 국립대병원을 기타 공공기관에서 제외해 자율적으로 인력을 뽑을 수 있도록 기재부와 논의 중"이라며 "신규 전문의 충원 및 기존 필수 인력의 인건비를 보조하는 예산도 한시적으로 편성할 계획"이라고 답했다.
상경 진료 100만 명 시대…"지역 암센터 확충·진료시설 국고 보조율 상향 절실"
지방 환자들의 수도권 쏠림 현상인 '원정 진료' 문제도 비중 있게 다뤄졌다. 허종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서울로 진료나 수술을 받으러 가는 원정 환자가 연간 100만 명 시대에 접어들었고, 이에 따른 진료비와 교통·숙박비만 1조 7500억 원 이상이 유출되고 있다"고 비판하며 근본적인 대책을 물었다.지역 내 최종 치료 완결성을 높이기 위해 지역 암센터 등 첨단 인프라 확충이 시급하다는 제언이 이어졌다. 박용갑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중부권 암병원 건립의 당위성과 함께 정책 금융 지원을 역설했고, 이달희 국민의힘 의원은 매년 20만 명의 환자가 유출되는 대구·경북 지역의 현실을 짚으며 칠곡경북대병원의 양성자 치료기 등 고가 첨단 장비 도입을 위한 적극적인 국비 지원을 강력히 건의했다.
의대 정원 대폭 증원에 따른 교육·실습 공간 부족과 열악한 국고 지원 체계에 대한 성토도 이어졌다. 백선희 조국혁신당 의원은 "증원된 학생들의 임상 실습이 본격화되는 2029년에는 강의실 수용 능력이 초과돼 복도에서 수업을 들어야 할 판"이라며 임상 대란을 우려했다.
전진숙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국립대 병원장들은 "현재 교육 시설은 75%의 국고 보조를 받지만, 진료 시설 지원은 25%에 불과해 병원들이 막대한 자부담과 수천억 원대 부채에 시달리고 있다"며 "진료 중심의 복지부로 이관된 만큼 진료 시설에 대한 국고 보조율을 상향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손영래 실장은 "지방 국립대병원의 진료 시설 영역만큼은 다른 복지부 사업과 유사한 수준까지 국고 보조율을 올릴 수 있도록 예산처와 적극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비급여 깜깜이 고지·환자 개인정보 유출…방만 경영·허술한 관리망 도마
막대한 세금이 투입되는 국립대병원의 방만한 운영과 허술한 시스템에 대한 매서운 질타도 피할 수 없었다.박지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동일한 비급여 항목(노바콜 피브릴라 등)임에도 부산대병원과 서울대병원 간 가격이 2.7배, 경북대병원과 경상국립대병원 간 4배 가까이 차이 나는 불투명한 가격 산정 기준을 지적했다.
특히, 충북대병원과 경상국립대병원이 특정 비급여 항목을 수백 건씩 처방하면서도 정작 홈페이지에는 가격을 검색조차 할 수 없게 방치한 '깜깜이 운영'을 질타하며 전수 조사를 요구했다.
이소희 국민의힘 의원은 경북대병원과 충남대병원 등에서 자체 감사 보고서를 공공 감사 포털에 공개하는 과정에서 비식별 처리를 부실하게 한 점을 꼬집었다. 검게 가려진 부분을 복사해 다른 곳에 붙여넣으면 환자의 민감한 진료 기록과 실명이 그대로 노출되는 초유의 개인정보 유출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이 의원은 "유방암 수술 내역부터 직원 감면 내역까지 경북대병원 한 곳에서만 543명의 정보가 무방비로 새어 나갔다"며 즉각적인 당사자 통지 및 재발 방지 대책을 촉구했다.
이 밖에도 소병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정원을 5분의 1도 채우지 못하고 유명무실해진 '공공 임상 교수제'의 실패 원인 분석을 요구했고, 서미화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4년 내내 2%대에 머물며 수십억 원의 고용 부담금을 납부하고 있는 국립대병원의 부끄러운 '장애인 의무 고용률' 실태를 지적했다.
권칠승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충남대병원이 위탁 운영하는 대전 공공어린이재활병원 내 언어치료사의 장기간 치료 방치 논란 및 병원 측의 모니터링 부실 문제를 질타하며 공공의료기관으로서의 엄격한 책무를 주문했다.
마지막으로 김윤 의원은 국립대병원 단독 육성을 넘어선 지역 연계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김 의원은 "국립대 병원이 나홀로 고군분투할 것이 아니라, 지역 내 다른 병원들과 강력한 네트워크를 구축해 필수 의료를 분담하는 시스템으로 전환해야 한다"며 복지부와 국립대 병원의 구체적인 지역 필수 의료 네트워크 청사진 마련을 촉구했다.
이만희 보건복지위원장은 "국립대병원이 명실상부한 지역 거점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 국회 차원의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며 종합감사 전까지 정부의 실효성 있는 대책 보고를 지시하며 감사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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